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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이탈리아 파도바 사람보다 구글맵이 더 좋은 이유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17)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친절한 이탈리아 사람보다 구글맵이 더 좋은 이유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친절한 이탈리아 사람보다 구글맵이 더 좋은 이유

구글 말 안 듣고 친절한 이탈리아 아저씨 말 듣고 개고생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을 가기 위해 그냥 지도 보고 쿡 찍어 간 곳 중에 하나인 파도바. 여행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그냥 무작정 벗어나야 했기에 파도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숙소를 예약했던 곳이다. 이곳에 호텔을 예약했던 이유는 호텔 바로 앞에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어서였다. 그리고 파도바 기차역에서 내가 예약했던 호텔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그래서 파도바를 이탈리아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것이었다.


파도바에 대한 별다른 기대와 생각도 없이 페라라에서 기차를 타고 파도바에 도착을 했다. 파도바 기차역을 보니 이때까지 보았던 이탈리아 작은 도시들과는 달리 기차역부터 사람들이 북적이고 기차역 밖을 나오니 광장에 버스터미널이 바로 연결되어 여행객들은 버스표를 구입하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파도바 기차역과 광장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버스터미널도 있고, 사람들도 북적이고 나의 여행 친구 구글맵에서는 버스 노선을 안내해 주면서 15분 안에 그 버스를 타라고 안내해 준다. 그런데 이 친절한 나침반 같은 구글지도가 알려준 방향을 쳐다보니 그 버스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구글맵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으로 가서 그냥 물어봤다. 호텔주소를 보여주며 여기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봤다. 일단 버스표부터 구입하라고 한다. 그래서 구입했더니 친절한 이탈리아 버스표 판매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질문을 이탈리아로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어느 친절한 이탈리아 아저씨가 나에게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면 된다는 것 알고는 있었지만 어깨에는 무거운 배낭, 그리고 한 손에는 캐리어가 있어 손이 자유롭지도 않고 귀찮아서 그냥 그 친절한 아저씨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과도할 정도로 친절한 이탈리아 아저씨는 아무 말도 못 알아듣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답답해서인지 나에게 딱 한마디!

Come!

그리고 나의 불편한 캐리어를 그분이 끌어주면서 반대편 버스로 나를 안내해 주고 버스 운전기사님에게도 뭐라고 이탈리아어로 말을 한다. 너무나 친절한 이탈리아 아저씨. 나는 땡큐라고 한 마디 인사하고 버스에 올랐다. 오르면서도 다시 한번 호텔주소를 보여주면서 버스기사에게 확인했다. 운전기사는 고개만 끄덕끄덕. 아무런 걱정 없이 그냥 버스를 타고 나의 몸과 짐을 버스에 맡겼다.

이탈리아 파도바 버스 안에서

너무 내가 나 자신을 버스 안에 맡겼는지 버스 출발하고 20분이 넘었는데도 눈으로 주시하던 구글맵에서 안내해 주는 도착예정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간다. 좀 이상했다. 그래서 또다시 기사에게 물어봤다. 기다리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던 도착시간과 너무나 달랐다. 분명 구글맵에서는 파도바 기차역에서 호텔 숙소까지 버스로 20분이면 간다. 그런데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내가 예약했던 호텔은 보이지 않고 고속도로 같은 곳만 보인다. 버스에 탔던 사람들도 거의 다 내리고 버스 안에는 나 혼자 남아있었다. 그러더니 버스기사님이 다 왔다고 내리라고 한다.


기가 막혔다. 집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도로. 사람이 다니는 인도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 도로가 종점이라고 나보고 내리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려 황량한 도로에서 다시 구글지도를 보았다. 도보로 2.7 km 걸어서 한 시간 반. 구글맵에 대중교통도 알려주는데 버스도, 택시도 이용할 수 없는 그런 도로 위에 내가 버려진 것이다.


호텔까지 가는 방법은 딱 하나. 그냥 배낭 메고 캐리어 끌고 이 길을 무작정 걷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걸었다. 뚜벅뚜벅. 씩씩거리며 걸었다. 걸으면서 이러한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내 신세가 꼭 거지 같았다.

파도바 도로 위에 버려진 나, 캐리어 끌고 뚜벅뚜벅

그런데 신세한탄만 할 수는 없었다. 구글에서 알려주는 대로 나는 차들이 씽씽거리며 달리는 이 도로에서 안전하게 호텔까지 무조건 도착해야 했다. 마치 살아남기 위해서 버티는 것처럼. 그래서 힘들다는 생각보다 무조건 어떻게든 호텔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렇게 두 시간 가까이 배낭 메고 캐리어 끌면서 호텔까지 도착했다. 호텔이 있는 지역도 시내는 아니고 공항 가는 도중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단지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이 호텔 문 앞에 있다는 이유로 선택한 나의 작은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이 날 개고생한 기억에 호텔 앞에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는지 그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 작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로비에서 호텔 사장님께 물어봤다. 호텔 바로 앞에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있나고 물었다. 이 사장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없다고 한다. 시내로 가는 버스는 있는데 공항은 없다고 한다. 그것도 모른다가 아니라 없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공항 가는 버스 때문에 이 호텔을 예약한 것이다 공항버스가 없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안 나왔다. 그렇다고 다시 파도바 시내에 호텔을 예약할 수도 없었고 파도바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방법도 몰랐다. 일단 호텔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일단 파도바에서 베네치아까지 가는 기차표를 알아보았다. 기차표가 있지만 베네치아에서 다시 호텔을 잡기에는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나는 다음날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에서 독일로 이동해야 했는데 호텔을 예약하기에는 너무 늦은 타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나는 내가 예약했던 이 호텔에서 머물기로 하고 다시 구글맵을 보았다. 분명히 공항으로 가는 버스도 있었고, 파도바에서 이 호텔까지 오는 버스도 같은 버스 노선이었다는 것 그때 알았다. 확인이 필요했기에 구글맵에서 알려주는 그 시간에 베네치아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오는지 확인이 필요했기에 호텔 문밖에 나와 둘러보았다. 도로 건너편에 버스정류장이 보여 길을 건넜다. 버스정류장에는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있다. 이제 구글이 알려주는 시간에 이 버스가 오는지 눈으로 보면 된다.


파도바 호텔앞 버스 정류장

기다려서 보니 구글이 알려준 제시간에 버스 한 대가 이쪽으로 온다. 나는 그 시간에 공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기에 버스가 내 눈앞에 왔을 때 그냥 무작정 올라가서 버스기사에게 물어봤다. 내일 오전에도 공항으로 가는지. 이 친절한 버스기사는 내일 아침 그 시간에 여기에 온다고 친절하게 웃으면서 말을 해준다. 그 때야 안심이 되어 나는 긴장이 풀렸다. 나는 "땡큐"라는 말을 하고 다시 내려 반대편에 있는 정류장에서 파도바 시내를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맞다! 구글은 정확했다. 이때까지 뭐를 내가 잘못했는지 몰랐다. 몇 시간 전에 개고생 하던 것은 잊어버리고 이탈리아 마지막 여행지 파도바를 그냥 둘러보기로 했다. 파도바 시내에 내려걸으니 역시 유럽 도시 같았다. 건물들도 보이고 사람들도 북적북적 이고.

파도바 시내

걷다 보니 길거리 버스킷 공연도 눈에 띄었다.

파도바 시내 길거리 버스킹

이 날은 이탈리아 마지막 여행이었기에 그냥 나는 목적지 없이 파도바 시내를 걸어 다녔다. 걷다 보니 우연히 내가 좋아했던 마우이쪼 폴리니 이름이 쓰여있는 음악원도 보였다.

폴리니 음악원

잘은 모르겠지만 피아니스트 폴리니가 파도바에서 활동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러니 폴리니 음악원이 있는 것 보니. 안을 잠깐 들여다보니 사람들 목소리와 피아노 연습 소리가 들린다.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몇 시간 전 아무도 없는 황량한 도로 위에 버려졌을 때는 살기 위해 무작정 짐을 끌며 다녔지만 이 문 앞에서는 그냥 나도 여기 사는 사람같이 편안했다. 피아노 연습소리를 멍하니 듣고 나는 다시 파도바 기차역까지 걸어가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내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대신 기차역으로 가서 다시 구글이 알려준 대로 해보았다. 진짜 구글이 알려준 그 위치에 버스가 있었다. 번호도 정확했고.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구글이 알려준 그 위치와 시간에는 버스가 있었다. 단지 버스터미널에 길게 선 여행객들과 버스들을 보고 내가 구글 대신에 사람들한테 의지한 것이다. 너무나도 친절한 이탈리아 사람들. 힘들게 여행하는 여행객에게 짐을 들어주며 버스까지 안내해 준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끝까지 구글맵을 믿지 않고 감성에 휘달려 이 날 개고생을 한 것이었다. 감성보다는 데이터가 정확하다는 것 이때 알았다.


1년 후 오늘 나는 여전히 혼자이기에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의지하기보다 나 혼자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많이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냥 노트북과 스마트폰이다. 이제는 이 노트북이 나의 밥줄이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의지할 수밖에.


나의 의지가 조금씩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아 요즘 내가 하는 것이 산책과 도서관이다. 올해는 집에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었는데 자꾸 나의 맘도 의지력도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30년 전 독일에서 공부할 때처럼 공부와 강의 준비는 집이 아닌 도서관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도서관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남에게 의지하지는 않지만 도서관에서 꿈틀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의지한다. 왜냐하면 나의 의지를 붙잡아 주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꿈틀거림이 최고의 약이었기에. 마치 30년 전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처럼.


추운 날 아침 도서관 가기 전  여행 대신 내가 선택한 집 앞 공원에서 멍하니 걷는다. 1년 전에는 황량한 도로 위에 버려져 걸었지만 지금은 짐도 없이 홀가분하게 걸으면서 나의 머리를 식힌다.

 

안성맞춤랜드

아마 소확행이란 말이 이것과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냥 일상에서 머리를 비우며 예쁜 풍경에 감동하는 집 앞 풍경. 이것도 나의 여행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일상여행 그다지 나쁘지 않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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