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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페라라에서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16)

듣도 보도 못한 이탈리아 페라라


이탈리아 페라라 처음 듣는 도시니 당연히 보는 것도 처음이다. 이탈리아 친퀘테레에서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을 가기 위해 들린 도시, 공항 가는 날까지 여정이 남아 있어 그냥 구글 지도에서 찍은 도시다. 그때 지도에서 찍은 도시가 페라라와 파도바인데, 1년 전 오늘 이때 어쩌다 듣도 보도 못한 페라라를 둘러보게 되었다. 


지중해 해안 절벽 마을 친퀘테레의 작은 마을과는 달리 페라라는 내륙에 있고 작은 도시여서 걸어서 여행하기에 충분했다. 이 날 아침도 호텔에서 천천히 구글지도 내비게이션으로 페라라 구시가지를 걸어 돌아다녔다. 마치 여기에 사는 사람처럼.


페라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도시라고 한다. 에스테 가문의 에스테 성과 성당이 유명하다. 친퀘테레의 알록달록 했던 지붕들과는 달리 여기는 붉은 벽돌의 건축물이 눈에 많이 띄었다.


페라라 구시가지 거리

페라라 거리는 친퀘테레와는 달리 날씨도 겨울 날씨였다. 그리고 길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겨울의 시작이다. 사람들의 옷도 어두운 색이고 겨울 옷차림이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출발했기에 구시가지 에스터 성과 성당이 있는 곳에는 전통시장이 열리기도 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이 날 개막된다고 한창 준비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장! 진짜 오랜만에 듣는 용어다. 그런데 울컥해진다. 코로나 이후 몇 년간 아무것도 못하고 여행이라는 것은 꿈도 못 꾸었는데, 하필 여행이 퇴사 후 도망치듯이 나온 도피 여행. 코로나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유럽 그것도 이탈리아에서 느끼는 크리스마스 시장. 코로나 이후 유럽은 이때 처음으로 다시 크리스마스 시장을 연다. 점점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 여기로 도망쳐 온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에 여행할 때 모든 것이 여름에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휴가시즌 7월 말에서 8월 첫째 주에 항상 나는 독일을 거쳐 독일 인근 나라로 여름 여행을 떠났다. 또는 추석이나 연휴가 긴 5월에 가끔씩 동남아로. 그러니 유럽에서 맛보는 크리스마스 시장은 20년 전 이후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때 아무도 모르는 페라라 거리를 걸으면서 크리스마스 시장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내 감정은 아마 반가움보다 그냥 착잡함이 더 컸다. 왜냐하면 나는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시장을 준비하는 광장 맞은편에 북적이는 사람들이 있는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페라라 에스테 성 인근 광장과 전통시장

페라라 전통시장도 한국 시골에 있는 전통시장과 비슷하다. 옷도 팔고. 독일과는 달리 이탈리아 옷들은 아기자기한 것이 많다. 그래서 이탈리아 패션이 유명한 듯하다. 시장에서 파는 옷들도 예쁜 것이 많았다. 하지만 난 여기서 저렴하지만 예쁜 옷을 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퇴사자여서 돈도 없지만 배낭여행을 하면서 짐을 늘여가며 여행을 하기에는 무거운 짐이 진짜 짐덩어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때 나한테 가장 좋은 것은 그냥 걷고 눈으로만 담는 것. 거리의 풍경을 보면서 그냥 무작정 걷는 것이 배낭여행에서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책이었다.

페라라 구시자지 거리

이렇게 걷고 걸어서 에스테 궁전과 박물관 앞까지 내 발걸음은 와있었다. 아기자기한 것은 찾아볼 수 없는 붉은 벽돌의 궁전과 그 궁전을 조용하게 감싸고 있는 실개천. 

페라라 에스테 성과 내부

페라라에는 르네상스의 건축물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을 보면 그냥 고딕양식 같았다. 왠지 르네상스라고 하면 화려한 대리석이 떠오는데 여기 페라라에서 화려한 대리석은 볼 수 없었고 에스터 성 내부 정원에 그냥 회색 돌덩이만 조형물처럼 아니 소원을 비는 돌탑처럼 쌓여 있었다. 그 앞에 어느 꼬마아이만 눈에 띄었다. 화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냥 이 꼬맹이처럼 조그맣고 귀여운 귀족의 저택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장을 둘러보고 싶은데 오전에 너무 일찍 나와 크리스마스 시장 개장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춥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그래서 구글지도에서 인근에 걸어서 가볼 만한 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찍은 곳이 페라라 도서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무작정 걸어간 곳. 여행객보다 학생들이 많은 도서관. 

페라라 도서관 외부와 내부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니 나도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열심히 공부해서 무엇인가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 무엇에 해당하는 것을 그런데 나는 찾지 못하고 그냥 길 잃은 어린양처럼 헤매고 있다. 추위를 피하려 들어간 도서관에서 나는 그냥 멀뚱멀뚱 그러다 와이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나왔다.

페라라 도서관 열람실에서 내려가는 사람

도서관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은 마치 도서관에서 짐을 양어깨에 잔뜩 메고 나오는 이 사람의 모양과 비슷하다. 마치 무엇인가 공부는 해야 하는 데 풀리지 않는 해답을 가지고 고민의 짐만 잔뜩 들고 나오는 사람처럼.

이렇게 다시 나는 페라라 길거리를 걸으며 크리스마스 시장을 둘러본다.

페라라 크리스마스 시장

20년 만에 다시 보는 크리스마스 시장인데 그렇게 즐겁지가 않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에는 고민과 걱정이 많은데 기쁜 성탄이 아니라 우울한 성탄이 될 것 같아서이다.


그때 이후 1년 후 오늘 나는 지금도 그때 작년에 했던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직장인이란 삶은 고정적인 급여가 통장에 매월 나오지만 그 '급여'라는 문자는 이미 1년 전에 끊겼다. 지금 간간히 디지털배움터에서 나오는 '급여'라고 나오는 문지는 있지만 그것은 잠시 내가 경험을 쌓으려고 들르는 곳. 이곳을 직장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돈'의 노예로 살고 싶지는 아프지만 '돈' 없이 궁색하고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문제가 풀려야 한다. 


1년 전 오늘과 지금의 오늘을 비교하면 이제는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용어 '선생님'이란 호칭을 들으면서 강의를 하고 또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 이것이 달라졌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선생님 소리를 들을 것이란 것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부족하다. 무엇인가 더 공부해서 그것을 다시 나의 무기로 삼아 누군가를 도우면서 또 나의 새로운 수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 날도 나는 몸은 피곤했지만 도서관으로 여행을 떠났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내 안에 무엇인가가 꿈틀꿈틀 거리는 것을 느낀다. 이 느낌이 싫지가 않다. 그러다 창 밖에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1년 전에 크리스마스 시장을 보면서 울컥했던 마음이 지금 다시 울컥한다. 창 밖에서 해지는 모습 도서관 창가 테이블엔 썰렁한 크리스마스 나무 장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썰렁한 나무장식. 꼭 나의 마음 같았다.


보개도서관 창 밖에서 보는 일몰

1년 전에 회사에 큰소리를 치고 나왔지만 아직 떳떳한 모습이 아닌 초췌한 모습이 1년 후인 오늘까지 남아서일까? 그래도 지금의 이 울컥함은 1년 후 오늘이 되는 그날에는 감동으로 변할 수 있기에 나는 이 조그마한 도서관에서 다시 꿈틀꿈틀 할 것이다. 1년 후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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