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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퀘테레에서 페라라로: 이탈리아 시골에서 도시로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15)

친퀘테레에서 페라라로: 이탈리아 시골에서 도시로 

내림막길도 힘든 배낭여행


1년 전 오늘 이 날은 5일 동안 꿈같이 지냈던 이탈리아 지중해 해안 절벽마을, 불편했던 이 작은 시골마을 친퀘테레에서 도시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페라라로 이동하는 날이다. 솔직히 나는 '페라라'라는 도시를 잘 모른다. 오래전에 독일에서 10여 년 넘게 살았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한 적은 없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를 이탈리아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페라라'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이탈리아에서 다시 독일로 가려면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을 이용해야 했기에 베네치아에서 친퀘테레로 왔던 그 여정을 다시 반복하기엔 돈이 아까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루트로 정한 도시가 '페라라'랑 그리고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과 가까운 또 하나의 도시 두 개를 그냥 지도를 보고 찍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멍청하게 급하게 선택한 결정이었다. 퇴사 후에 그냥 도망치듯이 여행을 떠났기에 이것저것 알아보는 대신에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표부터 구입한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라이언에어 저가항공사를 이용하여 비행기표를 싸게 구입한 것은 잘했지만 굳이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을 거점으로 도착지와 출발지를 할 필요는 없었다. 베네치아에 도착했으면 로마로 가서 거기서 다시 독일로도 갈 수 있었는데 이것저것 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무튼 이 날 아침 짐을 꾸려 캐리어와 배낭을 가지고 그동안 정들었던 숙소를 떠나야 했는데 짐을 가지고 내려가는 길도 힘들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내리막도 힘들다는 것 다시 깨달은 아침이었다. 무거운 캐리어와 배낭을 가지고 계단을 내려가는 길. 근육도 없는 나에게 진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는 것은 지옥으로 내려가는 길과 같았다. 캐리어 들고 계단을 내리다 내가 다칠 수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이겠지만 그래도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하기에 계단 하나 내리고 쉬고 내리고 쉬고 이렇게 반복하면서 내려갔다.


마날롤라 숙소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내리막 지옥계단


내려가면서도 내가 고생하면서 여행하는 나의 힘든 모습을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남겨두었다. 여행작가는 아니지만 퇴사하고 돈 없는 상태에서 비싼 여행을 했으니 언젠가는 이 여행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서 돈을 벌어보자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에서도 나의 모습을 남겨두었다.


마날롤라 기차역으로 가는 길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거지 같았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남들은 왜 개고생을 하냐고 하지만 나는 나 혼자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도 좋다. 싱글라이프 자체가 좋다.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기에 나는 아직까진 이런 싱글라이프가 좋다. 다만 돈이 없다는 것이 좀 불안하다.

마나롤라 기차역으로 가기 위한 내리막 계단길

기차역으로 내려가면서 언제 다시 이 불편하고 예쁜 마을을 올 수 있는지 몰라 눈으로도 이 풍경을 담고 사진으로 담았다. 내려가는 길에 담벼락에 열려있는 오렌지 나무도 내 마음에 꾹꾹 담았다.


마나롤라 길목에서

힘들게 내려와 페라라로 가는 기차에서도 나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았다. 원래 혼자 여행을 하면 나의 모습대신에 풍경을 많이 찍는다. 그런데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나의 거지 같은 모습을 보고 웃는다.

마나롤라에서 페라라로 가는 기차

진짜 반백살에 도망치듯이 떠나온 여행 하면서 진짜 거지같이 하고 다녔다. 짐을 많이 챙길 수가 없어 같은 옷으로 만 계속 입고 다녔다. 얇은 옷을 몇 겹 씩 끼어 입고 돌아다니다 더우면 하나씩 하나씩 벗으면서 다녔다. 원래 나는 귀찮은 것 딱 질색이기에 손빨래한다는 것도 여행하면서 고역이었다. 설거지도 하기 싫어 식기세척기에 맡기는데 여행하면서는 손빨래를 해야 했다. 특히 짐을 많이 가져갈 수도 없었지만 친퀘테레 작은 마을에서는 호텔이 아니고 그냥 다 작은집에 있는 방을 빌리는 개념이어 세탁기를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손빨래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속옷은 손빨래하기 쉬었지만 11월 겨울이어 외투나 겉옷을 빨기에는 너무 힘들어 그냥 거지처럼 겉옷은 세탁도 못하고 며칠씩 입고 다녔다. 


페라라로 가면서 페라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부킹닷컴에 나온 호텔 사진에는 왠지 세탁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대감으로 페라라를 향했다. 페라라 기차역에서 호텔까지 걸어서 10분 거리. 그다지 멀지도 않고, 오르막 내리막 길도 없어 대중교통 없이 그냥 걸어갔다. 버스를 이용하려면 또 표를 사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짐을 가지고 올리는 것도 힘들어서 그냥 나는 무식하게 걸었다. 절벽 계단마을 친퀘테레에 비해 페라라는 반듯한 보행자 길이 있어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천국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역시 도시 안에 있는 호텔같이 정갈하고 깨끗하고 호텔 로비에 사람이 보였다. 내가 머물렀던 친퀘테레 마나롤라에서는 숙소에 사람이 없어 숙소에 들어가지 못해 개고생을 했는데 페라라 호텔에는 사람이 있다. 너무 반가웠다. 

페라라에 묵었던 호텔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을 못 봤는데 페라라 호텔 직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만큼 위행에도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이 호텔이 맘에 들었다. 아마 이 호텔은 내가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시설이 가장 깨끗하고 좋았던 호텔로 기억이 된다. 방도 깨끗하고 외관도 깨끗하고 그리고 도시 안에 있는 호텔. 


페라라 호텔의 깨끗한 방과 발코니 풍경

이 깔끔한 호텔에서 나는 2박 3일 동안 나의 지친 몸을 맡기고 거지가 아닌 사람처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페라라에 대해선 모르지만 일단 나에게 달콤한 잠을 먼저 취하기로 하고 페라라에 대해서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이렇게 달콤한 잠을 들던 날 그 이후 1년 뒤 오늘 나는 디지털배움터에 수업이 없어 평상시와 비슷하게 도서관에서 밀린 일을 정리하러 갔다. 이 날은 아침에 눈이 온다고 전날부터 안전문자가 계속 날아왔다. 출발할 때는 다행히 눈이 오지 않아 도서관으로 가기 전에 집 앞 공원 안성맞춤랜드 한 바퀴를 돌았다. 눈오기 전이어서인지 칼바람이 불었다. 걷다 보니 은행잎은 다 떨어졌지만 아직까진 가을의 색깔을 남아있다. 눈이 온다던데 하늘도 파랗고 노란색의 나뭇잎이 싱그럽다. 걷다가 화장실 유리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1년 전에 기차 유리창에서 나의 모습을 남긴 것처럼 또 나를 저장한다.

안성맞춤랜드 가로수길과 화장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나의 늙어가는 모습도 사진으로 많이 남기려고 한다. 아직까진 셀카가 불편하고 귀찮기는 하지만 나는 나름 나의 방식대로 이렇게 거울이나 그림자에 비친 나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왜 그런지는 그 이유는 아직 모른다. 언제 가는 알겠지만 그 이유를 알려고 지금부터 고민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공원 한 바퀴를 걷고 도서관에 도착하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이 싫었지만 도서관 창밖에서 보는 눈은 나름 낭만적이다.

보개도서관 주차장 앞에 있는 안성객사에 내리는 눈

도서관에서 나는 월요일 새벽과 밤에 있는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밀린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즘 나는 왕초보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도서관과 많이 친해졌다. 모든 것을 도서관에서 하고 있다. 일도 공부도 도서관. 이 작은 도서관이 나에게 주는 것이 너무 많았다. 따뜻함 그냥 집처럼 따뜻하고 그리고 저녁때 내가 운동하는 수영장 바로 앞이어서 그것이 더 좋았다. 이 도서관에서 나는 또 다른 꿈을 꾼다. 마치 25년 전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에서 나의 작은 꿈을 꾸었던 것처럼 지금은 반백살이 넘었지만 이 시골 작은 도서관에서 또 다른 꿈을 꾼다. 그리고 지쳐있는 나를 다독인다. 마치 도서관에 벽에 있는 글처럼.

안성 보개도서관 3층 다락방 카페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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