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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냥이 Mar 12. 2024

20대 D 이야기, 세 번째

퇴사를 지르기 2년 전으로 돌아가서,

당시 나는 친구와 살다가 친구 어머니와의 마찰로 갖고 있던 돈 백만 원만 갖고 원룸하나를 잡아 살던 때였다.


마찰이라고 해봤자, 나랑 친구는 투룸에서 잘 살고 있었던 터에 친구의 어머니가 굳이 굳이 마을버스 없이는 집에 가지도 못할 언덕배기 빌라로 이사하라고 몇 번이고 권유인지 강요인지 모를 권유를 했고

그 집은 언덕배기 꼭대기에 위치한 허름한 빌라의 반지하였는데 거길 매매하였으니 들어오라는 말이었다.


친구는 내심 어머니와 가까운데 살면 편하고 좋을 테니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사를 갔는데,

친구는 킹사이즈 침대가 들어가고도 몇 명은 더 바닥에 누울 수 있는 방을 차지하고,

나는 그 방의 반절하고도 조금 더 작은 방(고시원처럼)을 차지했다.


그럼 월세는 다르게 받았을까?

그 시절 기준으로 반지하에, 마을버스 타고 올라갈 수만 있는 허름한 언덕배기 빌라에, 고시원처럼 작은 방인 것 치고는 아주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45만 원)


반지하인 데다가 습기가 있어서 곱등이가 나오고 빨래도 설거지도 본인들 기준으로 몇 번 버튼을 어떻게 누르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거 맞춰주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고 단 한 번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 후 빚이 생긴 데다가 월급도 최저시급에 준하는 월급이라 본인들 피셜 밥값이 포함된 월세였으니 밥을 안 먹는 대신 밥값을 제외해 달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더니, 다음날 친구는 내게 언제 들어오냐며 뜬금없는 문자를 보냈고,

20시 도착 예정이라 하니 내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는지

친구의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서는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더 편한 곳이 있으면 나가”라고 하더라,


기분이 상한 나 역시, "혹시나 해서 그냥 여쭤본 것뿐인데 그걸로 기분이 상하셨다면, 알겠습니다. 이번주 내로 나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친구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엄마랑 너랑 둘 다 잘못한 거라서 누구 편을 들 수가 없어. 엄마가 요즘 마음고생이 심해서 좀 더 예민하긴 했던 거 같아" 친구가 아니라 AI 판사라도 되는 듯했다. 딱히 대꾸하고 싶지 않았기에 별 얘기 없이 그렇게 이사를 나오고 이 친구와도 자연스럽게 절교를 하게 되었다.


이사를 나오고 100/35이며 원룸에 평지에 1층인 집으로 이사를 오니 이런 집이어도 너무 행복했다.



몇 달이 지나고 빚을 다 갚게 된 찰나에 타 팀 팀장이 본인이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던 나에게 입양을 권했다.


내가 생명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세 번 정도 거절했으나 애기가 눈에 밟혀서 강경한 거절은 아니었던 걸 눈치챘는지 한 번 더 권유할 때에는 수락하게 되었다.


너무 예쁜 장모 터키시앙고라였다. 살면서 가족으로 고통받던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나의 가족이었고 내가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는 존재가 생겼기에 견딜 수 없었다.

동물과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내게는 그랬다.


고양이가 창 밖을 보는 걸 좋아한다기에 전세 오피스텔로 이사를 갔다.

14층.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당시 나는 회사 일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3명이 나눠서 쓰는 보고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혼자 독박쓰며 매 월 보고서를 써냈고, 야근은 기본이었다.


와중에 다른 우리 팀원들은 아직 믿을 수 없다며 신설하는 부서로 나를 배치하였고 신규 부서 셋업으로 인해 머리를 감지 못하고 출근하는 날도 다반사였다.


동시에 팀원 양성까지 했어야 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과민한 성향에 불안장애, 그리고 PTSD를 앓고 있는 나에게 한계치가 오고 있었다.


집은 엉망진창이었고 쓰레기 투성이었다. 그래서 어플을 통해 청소도우미를 불렀다. 네 번째 불렀던 날이었을까? 연차가 없었기에 내가 집에 없는 날 부르게 되었고 어플에서도 고양이 있는 집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배정된다고 했으니 약간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 것이 왔다.

전화가 울리고 우리 집 옆의 동물병원에서 우리 아기로 추정되는 고양이가 추락사해서 오피스텔 주민이 울면서 데려다줬다고 한다.


귀에 이명이 들리고 숨이 막혔다. 바로 동물병원으로 가니 우리 아기가 맞았다.

청소 도우미분은 그때까지도 고양이가 없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덥다고 창문을 방충망도 없이 활짝 연채로 청소를 해서 애가 거기로 떨어진 것이었다.


고양이의 수명은 인간보다 짧다는 것을 알았다. 쉽게 신장계 질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고양이를 키우려고 유튜브로, 네이버 카페로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근데 두 살도 안된 이 애를 어떻게 이렇게 보내라는 걸까?


일말의 노력할 여지도 없이 14층에서 추락하자마자 죽었기 때문에 잘 보내주는 방법뿐이라고 한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보다 더 큰 죄책감과 자살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행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했었다.


그런데 겁쟁이인 나는 죽지 못했다. 내 수명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딱 반으로 나눠서 나와 우리 고양이에게 주었을 텐데.

한 날 한시에 같이 갈 수 있도록.


그렇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아무리 억울하고 떼를 쓰고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애원해 봐도

안 되는 일은 안된다는 것을..


그 애는 내 가족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가족이고 내 자식이었다.

몇 년이 지나 사진만 봐도 그때 그 분위기, 풍경, 울음소리만 떠올려도 울컥하는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그래서 정신과를 바꾸고 바꾸고 바꾸며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다녔다.

 

적어도 5살, 6살이라도 됐었다면... 2살도 못 채우고 보내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원망해 봐도

이 모든 게 내 탓일 뿐이었다. 그저 펫로스가 아니라 가족을 잃은 죄책감. 죄책감이다.


그 애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 데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길고양이들이나 구조된 고양이들을 보호해 주는 곳에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매월 후원을 하고 항상 가방에는 작은 고양이 습식을 챙겨 다닌다.


나중에 나중에 오래오래 살다가 고양이 별에서 우리 아기를 만나게 되면 친하게 지내달라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비는 마음으로.


나는 지난 몇 년간 그날부터 하루도 반나절도 잠자기 직전까지 너를 떠올리지 않는 시간이 없다. 잠조차도 수면제와 불안장애약을 같이 먹어야만 잘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꿈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를 않는다. ‘내가 너무 미워서겠지?’라는 슬픈 생각만 떠오르게 되는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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