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18
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18 _ 마음에 피는 꽃
**
그대 안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흔들리는 듯 보이는 것이
가장 강하고 확실한 것이다.
__<예언자> p.133
아이들의 에너지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은
아무 꺼리낌 없이
"나 이걸 연습해 보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엄마, 오늘 축구 시간에 코치 님이 말해주신 거 말야,
왼발로 툭, 오른발로 툭, 다시 공을 뒤로 빼서 한 템포 쉬고 슈팅.
이거, 나 이거 조금만 더 연습하면 잘 될 것 같아."
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면 놀라워요.
어젯밤에도 저는 오전에 써둔 글을 읽으면서
'아, 단번에 좀 술술 나오면 좋겠다'라고
안달을 냈거든요.
사실 안달의 수준이 아니라 자학일지도 몰라요.
'왜 이렇게 밖에 못쓰지?
이건 너무 진부해. 결국, 이게 한계인가?'
생각이 속단으로 치닫죠.
고백하자면 이것은 어제만의 일은 아니에요.
그 전에도 자주 그랬고
어쩌면 아마 오늘 밤에도 똑같은 생각 곁을 맴돌지도 모릅니다.
분명 쓸 때는 무언가 반짝하여 썼는데
써 놓고 보면 그 빛이 사라진 것만 같은 기분.
이게 비단 '글'만의 일은 아닐거예요.
이 작디작은 필사도 가끔은
'이거 써서 뭐하지?' 싶은 생각이 들잖아요.
그뿐인가요, 운동도.
'오늘 하루 해서 뭐해'
이 생각에 좀 더 명확한 이름을 붙이자면
의심.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의심하고,
나의 과정과 에너지를 의심하며 살아가곤 하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여러분도 그러시죠?)
나도 모르게 집어 먹은 두려움이
마음 피는 꽃, 의심.
반면, 아이들은 늘 올곧아요.
'내가 이걸 해서 뭐하지?'라는 의심 없이
'즐거우니까 해야지'로만 가득한 마음으로 해맑죠.
아이들은 '단순'하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기에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단순하지 않잖아요 :)
그래서 감탄하게 되고, 배우고 싶어져요.
나는 이걸 연습할 거야.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나는 연습할 거야.
땀이 뻘뻘 나면 물을 마실거야.
나는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어.
연습하다보면 언젠가는 익숙해 질테니까.
이따가 개운하게 샤워를 해야지.
아이들의 순수함이 빚어내는 단단한 사유란
언제나 이런 모양이에요.
의심이 끼어들 여지없이
촘촘하게 이어가는 자기 긍정들!
이 마음을 언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내 손에도 있었을 풍선일텐데 말이죠 :)
이런 날에는 필사하는 손아귀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가요.
오늘처럼.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라 그런지
요 며칠 마음을 사로잡았던 게 있었어요.
책을 읽다가 이런 질문을 마주했거든요.
'만약 늦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보자마자 금방 물음표에 대한 답을 끄적였어요. 쉽잖아요.
'만약'이라는 건 늘 언제나 우리를 들뜨게 해서
어쩐지 신난 손으로 연필을 쥐게 되고,
'늦은 것' 찾기란 매우 쉽고요!
그런데 다음 장에 같은 질문이 또 있었어요.
'만약 늦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이번에도 쉬웠죠.
'늦은 것'은 언제나 한 개로 끝나지 않으니까!
영리하게도 이 질문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는데,
이 단순하고 시시한 질문이
제게 오래 남아 긴 자극을 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인 것 같아요.
같은 질문을 다섯번 마주했거든요!
그리고 다섯번을 반복해 이 질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적어보고 나니까,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 문득,
'늦은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라구요!
내가 늦었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것들 모두가
빨리 해치우지 않아도 좋은 것들,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어도 좋은 것들로
그 모습을 탈바꿈하여 새로이 마음에 다가오는 기분!
늦은 건 없고 그냥 지금 오늘 여기에서부터
'그냥' 하면 되는 것들 뿐이라는 생각이
내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퍼지는 느낌들!
막연하고 또 당연하게 '늦었어'라고 여겼던 것들,
그것들의 높이와 두께가 낮아지고 얕아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어쩐지 모든 게 단순해져서
아이들의 마음처럼 그냥 ‘해 보려고!’만 남더라구요.
두려움은 언제나 마주하고 보면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도 더 작디 작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다만 그것이 내게 중요하고 소중하다보니,
마음의 프리즘을 통과할 때마다
의심이라는 옷을 입고 커다랗게 굴곡져 보일 뿐이죠.
어쩌면 한 걸음 나아간다는 것은
그것을 '바로보며', 작은 것을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요?
**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구하려 든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가치가 될 뿐이다.
__<행복한 이기주의자> P.44
오늘도 나답게 나아가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리추얼 필사, 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