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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Jul 13. 2022

한밤의 잠복근무

애잔하고 아련한


사랑하는 마음은 집에 두고

나는 집밖도 집안도 나가지도 들어갈 수도 없어

입에는 거친 말을 묻히고 

동네를 배회하며 후회반 한탄반

끝내는 현관문 앞 계단에 앉아있다

아직 성이 덜 풀린 그의 숨소리를 느끼며 조용해질 때 쯤

복도의 센서등도 조용해지며 꺼졌다가 내 긴 한숨에 놀라 다시 켜진다


달이 서서히 차오를 때 즈음

아이의 울음소리가 가슴에 사무쳐 눈물이 차올라


아무렇게나 신고나온 신발은

주머니 속에서 언제 샀는지도 모르게 구겨져버린 영수증처럼 구겨져 있다

분유 한통 물휴지 하나 생수를 계산한 빛바랜 글씨가

이렇게 아무렇게나 구겨져 앉은 나처럼 쓰여 있다


누구에게도 숨지 않았지만 그냥 숨어있는 비참한 기분이 들 때 즈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센서등이 다시 켜지며

옆 집 아줌마가 구겨진 검정영수증을 보며 화들짝 놀란다

누구도 쫓지 않았으나 요상히 쫓겨 다시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후회반 한탄반


팔자인듯 아닌듯 한밤의 잠복근무



**

아이들이 아주 어린시절 살던 4층의 빌라는, 나도 그도 참 힘겨운 시절이였습니다. 그 시절을 쓰는 건 그 공간이 이미 시간이 지나 기억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때는 애잔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련한 정도라 다행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참겠다고 아무리 결심을 하고 퇴근을 해도, 몇 년의 휴직기간 내내 육아에 시달린 아내의 계속된 날 선 반응에 잠깐의 결심은 한순간에 버럭으로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뛰쳐나온 집밖의 배회에 대한 심경을 옮겨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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