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 Hana Aug 21. 2024

자기비판과 완벽주의라는 덫

이 포스트에서는 세 가지를 한다   

     해빗 바디 (Habit body)가 왜 중요한지 설명한다.    

     해빗 바디를 유연하게 가꾸는 데 방해가 되는 생각들을 소개한다.    

자기비판과 완벽주의가 어떻게 변화를 가로막는 덫이 되는지 설명한다.    


이 포스트는 읽기 쉽고, 중요하다. 


*‘유튜브 중독 탈출기’는 유튜브에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시리즈 초반에 중독 상태 묘사, 중독의 정의와 해법을 소개했다. 시리즈 중반에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기본기를 설명한다. 그리고 유튜브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한 일들, 뭐가 통했고, 뭐가 잘 안 되었는지, 구체적인 행동과 일지를 공유한다. 




유튜브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기비판’까지 왔으니까, 전반적인 전개 맥락을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도 좋겠다. 


첫 포스트에서 ‘도파민 중독’으로 표현되는 현대의 중독은 끊을 수 없고, 관리되어야 하는 중독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중독이 뭐가 나쁜지, 원인은 뭐고 궁극적인 해법은 뭔지 간단하게 정리했다. 여기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면 되는데, 바로 넘어가지 않고 ‘해빗 바디’(habit body)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해빗 바디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변화할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백 번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정말 놀라울 만큼, 소용이 전혀 없다. 

겉으로는 변하고 싶다고 말하고,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지식이 빠르게 공유되고 전파되는 시대, 모든 정보가 검색 한 번으로 접근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을 사는데 필요한 지식도 말 그대로 널려있다. 하지만 그 지식을 받아들여서 정말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소수다. 

접근 가능한 지식의 양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소수다. 


왜? 

해빗 바디가 굳어서 그렇다. 

해빗 바디가 너무 굳어서, 좋은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어도 흡수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해빗 바디가 일단 유연해져야, 좋은 습관, 도움이 되는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다. 콘크리트 바닥에 아무리 물을 뿌려봤자, 콘크리트가 말랑말랑 해지지는 않는다. 해빗 바디에 어느 정도 수용성이 있어야 새로운 습관을 시도라도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굳게 하는 건 주로 생각의 장벽이다. 몸의 반응에 한 번 깨어나면,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즉각적으로 알게 된다. 주로 생각이 개입해서 변화를 막는다. 

변화하기에 가장 어려운 마음 자세는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마음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더 바라는 게 있지만) 지금 이 정도로 괜찮아’라든가, ‘나는 지금 변화를 생각할 여력이 없어’라든가, 뭐든지 이유를 대서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태도다. 


물론 자기 인생 어떻게 살든, 그거야 자기 마음이지만 - 

많은 경우 ‘인생’ 이 그저 현 상태에 안주하도록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인생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게임이라 너무 굳은 사람은 어느 단계에서 깨어진다. 


좋은 습관이나, 필요한 조언을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뭔가 바꾸고는 싶지만, 실패하는 건 좀 두려워’ 정도의 단계까지는 와 있어야 한다. 내면에 변화를 향한 갈증이 있고,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걸 조금이라도 믿는 단계에 있어야 의미 있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해빗 바디를 유연하게 풀어주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생각’이 ‘자기비판과 완벽주의’다. 자기비판은 머릿속에서 스스로를 윽박지르는 목소리다. 실수를 했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 꼬투리를 잡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면의 목소리다. 완벽주의는 영감이나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완벽주의가 불완전한 현실을 회피하는 방어기제로 쓰일 때,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시도를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면, 완벽주의는 헤어날 수 없는 덫이 된다.  


학교에 다니면서 시험을 볼 때는 어느 정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게 가능하다. 교재가 있고, 예상문제가 있고, 정답이 있으니까. 각자가 생각하는 ‘완벽’이 뭐든지 간에, 준비하는 데로 거기에 맞는 점수가 나온다. 

그런데,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지점,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이 순간에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강한 사람은 실패가 두려워서 새로운 시도를 못하고, 옴짝달싹 과거에 묶이게 된다. 


자기비판이 강한 사람들은 뭘 배워도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나,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를 윽박지르는데 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비난하고 처벌하는데 지쳐서, 새로운 것이 들어올 통로를 막아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서, 몇 년 전에 내가 한글로 글을 지금보다 잘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쓴 글을 다시 읽으면, 내가 요즘 쓴 글이 쓰레기 같아서 기분이 상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쓰는 글은 쓰레기야’ 생각하면서, 글쓰기를 멈춰버리면, 나는 평생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내가 어떤 시기에 글을 잘 썼기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자기비판적 목소리’에 끌려가면 일어난다. 현재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완벽하거나 좋아 보이는 어떤 환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벽에 가로막힌 사람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완벽하게’ 잘 해내지 못한다는 수치심에 가로막혀,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병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실패하는 경험에서 하나씩 배우며 앞으로 나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잘 들어보면, 처음부터 실수 없이 잘하고 갑자기 엄청나게  잘 되길 바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한 발 씩 나아가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에서, 어떤 실수를 하든, 어떤 결점을 발견하든 자기 자신을 혼내고 괴롭히는 핑계로 쓴다.  


유튜브 중독이든, 스마트폰 중독이든, 나쁜 습관을 끊는 과정에서 자기비판적 목소리가 너무 강한 사람은 자기비판에 질려 중간에 그만두기 쉽다. 다음 포스트들에서 보겠지만,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일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이다. 바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 좋아졌다, 나빠졌다, 다시 좋아지는 사이클이 있다. 이 과정에서 자기비판이 스스로를 너무 괴롭힌다면, 새로운 걸 시도했다가 계속 자기 자신에게 시달리느니, 차라리 원래 살던 데로 돌아가는 쪽을 택한다.


자기비판은 주로 이런 어조의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못하니? (그것 조차 못하면 나가 죽으라는 어조.)      

     한다고 해놓고 안 하고, 왜 안 한다던 짓을 하니?    

     이것 조차 못해서 뭘 할래?    

     그전에는 참 잘했는데, 지금 넌 참 똥 됐다.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잘하는데, 니 꼴은 그게 뭐니.    

내용이 뭐든지 간에, 그냥 스스로를 괴롭히는 목소리다. 


자기비판과 완벽주의는 두뇌 오작동이다. 우리 생각 속에서는 (그리고 오직, 우리의 생각 속에서만) 결점 없이 완벽한 ‘이상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의 다양한 상황을 이상형과 계속 비교하는 일종의 프로그램 버그다. 완벽주의에 빠지면, 자기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 휘둘려 살게 된다. 자기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건 현실에서 행동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그럼 계속 자기 테두리에 갇혀서 생활하게 된다. 자기 생각이라는, 철창 없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자기비판적 목소리는 생각의 과잉이기 때문에, 몸으로 하는 일을 하면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몸을 움직이는 건 뭐든지 해보길 권한다. 주변에 정원이나 텃밭이 있다면 땅을 가꾸고 식물을 길러도 좋다. 운동, 댄스, 명상 등 생각에서 벗어나 몸을 깨우는 활동을 꾸준히 해야 된다.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춤을 추거나, 강렬한 운동을 하면 기분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몸을 깨워 생각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통해 내 생각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걸 경험하게 되면, 자신을 비판하느라 생을 살지 못하는 터무니없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해빗 바디를 유연하게 가꾸는 도구로 트래킹과 노트 쓰기를 소개한다. 노트 쓰기를 통해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이전 04화 습관에 대한 습관, 삶의 기본 근력 기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