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트에서는 두 가지를 한다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아주 간략하게 소개한다.
변화에 대한 몸과 마음의 유연성을 나타내는 해빗 바디(Habit body)란 개념을 소개한다.
이 포스트는 읽기 쉽고, 중요하다.
*‘유튜브 중독 탈출기’는 유튜브에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시리즈 초반에 중독 상태 묘사, 중독의 정의와 해법을 소개했다. 시리즈 중반에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기본기를 설명한다. 그리고 유튜브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한 일들, 뭐가 통했고, 뭐가 잘 안됬는지, 구체적인 행동과 일지를 공유한다.
유튜브 중독에서 벗어난 방법을 소개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어린 시절을 방탕하고 우울하게 보냈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많이 마셨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서 술만 마시면 몸이 달마시안처럼 빨갛고 하얗게 알록달록해지는 데도 술을 열심히 마셨다. 20대 내내 우울증을 앓았고, 죽을 뻔도 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끊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후에도 여전히 20대였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 다양한 시도를 해봤더랬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에게 맞는 명상을 찾았다.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 겉으로는 큰 기대가 없었지만 속으로는 절망한 상태였다. 시도하고 별 효과가 없어도 잃을 게 없었다. 그런데 계속 하다보니까, 그 명상이 맞았다.
참고로, 가만히 앉아서 숨쉬는 명상은 아니었다.
사람 안에 있는 에너지, 생기를 직접 북돋는 뜨거운 종류의 명상이다.
표현하지 못하고 막힌 것이 있으면, 그저 참으라, 누그러트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시원하게 표현하라고 했다. 필요와 욕구를 억누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각과 감정들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느끼고 긍정하는 자세를 길렀다.
그러니까, 살 것 같았다.
명상 시작한지 2년이 안되어서 담배를 끊었다. 수월하게 끊었다.
몸을 분명하게 느끼기 시작하면서, 담배를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몸이 민감해지면서 주량도 줄고, 술을 마시는 빈도도 줄었다.
4년 후에는 핫 요가를 시작했고, 언젠가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먹는 음식도 달라졌다.
야채, 과일, 가벼운 음식을 주로 먹고 카페인 섭취량도 확연히 줄었다.
명상 접하고 3년 쯤 후에 개인 코칭과 명상 지도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한다.
유튜브 중독 이야기를 하다가 내 과거사를 길게 꺼낸 이유는 사람마다 관성의 무게와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깊이 앓고, 명상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겪으며 내 몸과 마음은 전보다 많이 유연해졌다. 우울증은 무겁고, 움직이지 않아 막혀있고, 밑으로 끌어잡아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상태에서 가볍고, 유연하고(flexible), 유동적(fluid)인 상태로 바꾸는 게 가능하다.
마치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는 것과 비슷하다. 딱딱하게 굳은 몸과 마음에 수분을 더하고, 잘 주물러서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빵반죽을 만드는 과정!
지금 나의 상태를 밀가루 반죽이라고 생각해보자.
나에게 지금 수분이 필요한가? 어떤 영양분이 모자라고, 어느 부분에 마사지가 필요한가?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새싹 같은 사람이 있고,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 돌덩어리 같은 사람이 있다.
이 밀가루 반죽같은 한 사람의 상태를 해빗 바디(Habit body)라고 부르겠다.
자기가 현재 사는 모습 그대로, 아무 것도 바꾸지 않고, 죽을 때까지 똑같이 살다가 죽겠다는 사람도 있다. 나쁜 습관을 버릴 생각도 없고, 굳이 좋은 습관을 만들 의지도 없다.
하지만 똑같은 상태에 머무른다는 건 환상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점점 굳는 것처럼,
밀가루 반죽을 그대로 두면, 반죽이 점점 굳어 딱딱해지는 것처럼,
해빗 바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사람이 점점 굳어서 딱딱해진다.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반죽을 해줘야 몸과 마음에 생기를 유지할 수 있다.
뻣뻣한 사람과 반대로, 유연한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좋은 습관을 보고 배우는 사람.
새로운 습관을 시도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울 만큼 몸과 마음이 유연한 사람.
해로운 습관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계속 노력해서 바꿀 만큼 의지가 강한 사람.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해보면, 다들 뭐가 좋은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실천해야 하는 순간에는 마음을 못 정하고 맴맴 겉돌기 시작한다.
A: ‘어떤 습관을 기르고 싶으세요?’
B: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요.’
A: ‘아침에 잘 일어나는 방법으로는 이런 게 있습니다.’ …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어플이나, 알람 시계를 소개한다.)
B: ‘문제는 저녁에 일찍 못자는 것 같아요.’
A: ‘저녁에 자기 전에 뭘 하세요?’
B: ‘자기 전에 폰을 계속 봐요.’
A: ‘저녁에 폰을 안 보는 방법으로는 이런 게 있습니다.’ … (저녁에 폰을 보기가 어려워지는 방법을 열 개 쯤 이야기한다.)
B: ‘정말 도움이 되는 방법 같아요.’
A: ‘그럼 지금 얘기한 것 중에 어느 습관을 당장 오늘 부터 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B: ‘글쎄요 …’
그리고 B는 정말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몰라서 헤매기 시작한다.
내 말은, 사람들이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 방법이야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보면 나온다.
사람들이 쉽게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변화를 향한 기본 유연성, 기본 근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 체력만 기르면, 어떤 운동이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기본적인 해빗 바디를 단련하면 어떤 변화든 상대적으로 가볍게 일으킬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 새싹과 돌덩어리 사이 스펙트럼 어딘가에 존재한다. 변화를 대하는 나의 유연성이 누구보다는 뻣뻣하고, 누구보다는 유연할 것이다. 몸을 유연하게 만들려면, 당장 오늘 부터 스트레칭을 하면 되는 것처럼, 해빗 바디를 유연하게 만들려면, 당장 오늘부터 새로운 습관을 시작하면 된다.
내가 지금 돌덩어리 같다고 느껴도, 한 번 새로운 습관을 시작하면 다음 부터는 몸이 빨리 변한다.
명상을 하면 주의력이 향상되고, 몸이 더 민감해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나쁜 일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한 번, 두 번 해로운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경험을 하고 나면, 그 다음 부터는 자신감이 붙어서, 변화가 더 쉬워진다.
삶의 다른 영역마다 해빗 바디의 근력이 다르다.
몸, 운동, 인간 관계, 직업적 성취, 금전 운용 등 사람마다 잘 바뀌는 영역이 있고, 잘 안되는 영역이 있다. 내가 어느 분야에 강하고, 어느 분야에 약한지, 한번 객관적으로 정리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포스트에서 해빗 바디를 유연하게 가꾸는 출발점으로 명상을 언급했다. 다음 포스트에서 해빗 바디를 기르는 데 방해가 되는 생각들을 점검하고, 그 다음 포스트에서 해빗 바디 함양에 도움이 되는 기본 습관, 노트 적기와 트래킹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