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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5월 : 모내기

5월. 본격 모내기달이다. 모내기 전 준비할 것들도 많고, 논상태도 적절해야 하고, 모내기도 잘해야 한다. 앞서 모내기 준비단계는 남편 혼자 기계로 전담했다면 모내기부턴 나도 본격 투입된다.



비료 및 제초제 구입

모내기 전에 이앙기에 넣고 사용할 비료와 제초제, 살균살충제를 구입한다. 우리는 이앙기 측조시비기를 달아서 모내기와 동시에 비료와 중기제초제를 살포한다. 논에 3번 갈 일이 1번으로 줄어들었다.


농기계 업그레이드로 농사가 꽤나 수월해졌다. 그만큼 투자금도 많이 들었다. 측조시비기용 비료와 제초제는 일반 비료, 제초제보다 가격이 조금 더 비싸다. 인력을 아끼는 만큼 기계값, 설비값, 농자재값이 늘어났다. 그래도 투자한 보람 있다며 남편은 대만족 하고 있다. 


측조시비기는 전용 비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작년에 비료양이 부족할 뻔했다. 올해는 농협경제계에 선주문으로 미리 수량을 확보해 사용했다. 역시 경험이 배움이다. 


농사를 짓다 보면 기계욕심이 끝도 없다. 더 좋은 기계로 더 편리한 기계로 농사지으면 그만큼 수월해진다. 그리고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 주변에 대농인 분들을 보면 돈 벌어서 기계 구입하는데 대부분을 재투자한다. 돈 벌어서 대출 갚고, 대출 다 갚으면 또 새 기계 사고를 무한 반복. 농사를 지으려고 기계를 사는 건지, 기계를 살려고 농사를 짓는 건지 잘 모르겠다.


비싼 기계는 부품교체비용이나 수리비도 꽤 많이 든다. 고치는 비용이 비싸면 차라리 중고로 팔고 새 기계를 사는 분들이 참 많다. 남편은 예전부터 자동차, 기계를 잘 다뤄서 웬만한 건 다 직접 고쳐서 사용 중이다. 기왕 하는 거 작년에 자동차정비자격증도 땄고, 올해는 농기계정비자격증도 땄다. 덕분에 다른 집들보다 기계에 투자하는 비용을 많이 절감했다.


기계구입 및 운영이 어려운 분들은 기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영업을 맡긴다. 농사량이 크면 직접 기계를 구입해서 농사짓는 게 이득이고, 농사가 적으면 영업을 맡기는 것이 더 낫다. 요즘은 농기계 영업을 개인뿐만 아니라 농협에서도 해준다. 그리고 고령의 어르신들의 경우 농기계 영업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덕분에 내 땅만 있으면 노후에도 작게나마 농사지으며 소득창출 가능하다. 역시 노후대비는 땅인가.




물고 보기 모터달기

4월에 로터리를 친 논에 물을 받아야 번지를 칠 수 있다. 논에 물을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다. 보통 농지정리가 된 절대농지의 경우 수로를 인접하고 있어서 물 받기가 쉽다. 수로 쪽 통로만 열어주면 끝.


지역마다 수로물 내려오는 시기와 요일, 시간대가 다를 수 있다. 가뭄이 심한 때라면 수로에 물 내리는 요일을 지정해서 수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일반적으로 각 마을 이장들에게 이런 정보를 미리 공지하고 마을주민들에게 공유하라고 하지만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건 아니다.


귀농귀촌이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텃세와 배척이라고 생각된다. 하물며 잘 아는 이장님인데도 정보공유가 늦을 때가 많다. 이웃마을 지인에게 농사정보를 전해 들을 때도 많다. 농사에도 정보는 참 중요하다. 주변이웃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정보 공유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


수로가 인근에 없는 논은 가까운 수로의 물을 끌어오거나, 논에 샘을 파서 지하수를 퍼는 방법이 있다. 멀리 있는 수로, 하천의 물을 끌어오려면 호수연결 및 모터설치가 필요하다. 논에 샘을 팔 때도 모터설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농사짓는 논의 대부분은 수로가 없는 곳이다. 이런 논에 물을 받으려면 하루는 날 잡아서 모터 설치하러 다닌다.


참고로 논에 설치해 둔 모터를 훔쳐가는 경우도 많다. 시골이라고 다 인심이 좋은 건 아니다. 너무 기대하면 실망이 크다. 우리도 유독 반복적으로 모터를 훔쳐가는 논이 있었다. 말뚝 박아서 모터에 자물쇠를 채우고 나서야 모터를 지킬 수 있었다. 


모터의 경우도 구입비용, 수리비용이 든다. 모터도 남편이 직접 수리해서 사용한다. 고장 나지 않게 잘 관리해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모든 논에 샘을 팔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비용적인 측면도 있고,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논만 설치가 가능하다. 주변 다른 논에 이미 샘이 있다면 샘을 파도 물양이 부족할 수 있다. 특히 임대한 논의 경우, 샘 파는 비용을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샘을 팔 수 없거나, 파지 않기로 했다면 가까운 물을 끌어와서 논에 물을 받는다. 땅 속으로 관을 묻어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건 포크레인 작업 또는 직접 삽질을 해야 돼서 힘들다. 나 좋자고 설치했지만 임대계약이 끝나면 관설치비용을 보상받진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 모터에 호스를 길게 연결해서 물을 끌어오는 방법을 쓴다. 우리가 농사짓는 논 중에 맹지이고 물이 가까이 없어서 호스를 500m 정도 연결한 곳도 있다. 비닐호수는 햇빛에 잘 삭는다. 짧은 거리는 괜찮지만 여기처럼 긴 거리는 PE 농수관을 연결해 사용한다. 농수관 구입에도 꽤 돈이 든다.


아무튼 이렇게 논마다 특색에 맞게 물을 연결해서 논에 물이 고일 때까지 받는다. 논에 물이 잘 고일 수 있도록 물고 높이를 조절하면 끝!




로타리 써레작업 번지치기

논에 물이 가득 받아지면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며 써레작업을 한다. 번지치기라고도 한다. 물이 받아진 상태에서 논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논이 평평해야 모심기도 쉽고, 모를 심고 나서 물 받기도 좋다. 높이가 들쑥날쑥하면 어떤 모는 물에 너무 잠기고 어떤 모는 물 밖으로 나오는 불상사가 생긴다.


물을 이용하여 흙을 밀어내고 모으고 로타리로 갈아내며 넓게 퍼트린다. 써레질, 번지치기를 하려면 물이 넉넉히 있어야 해서 모내기철엔 물 쟁탈전으로 농부들끼리 기싸움이 장난아니다. 수로의 물을 먼저 끌어다 논에 데려고 하는 유치하고 치사한 물싸움이 종종 목격된다. 남의 논에 들어가는 물을 맘대로 막어버리고 자기 논에 물대기를 하는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씁쓸하다.


번지치기를 한 논은 흙이 가라앉을 수 있게 3일쯤 기다렸다가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가 가능한 날을 기점으로 미리 번지치기를 해두어야 한다.




모판 키우기

모판을 하우스에 쭉 펼쳐서 깔은 날부터 하루에 1번 모판에 물을 준다. 초반에 모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차광막을 쳐둔다. 모가 적당히 크고 나면 모내기 날에 맞춰 알맞게 자라도록 차광막을 벗긴다. 그늘에 오래 두면 모가 키만 커지고 약해져서 모내기하기 힘들다. 5월 초면 날씨가 제법 뜨겁다. 그때부터는 하루에 2번 오전, 오후에 물을 준다.


대형물통에 모터를 달아 하우스 배관까지 연결시켰다. 처음 하우스 못자리 하려고 시설설치 비용도 꽤 많이 들었다. 이것도 남편이 하우스농자재만 구입해서 직접 설치했기에 비용절감을 할 수 있었다. 농사꾼은 만능이 되어야 한다.


모터만 키면 하우스 3개를 동시에 물 줄 수 있다. 모가 살짝 노란빛이 보일 땐 영양제를 섞어서 물을 주었더니 다시 푸릇하게 잘 자랐다. 올해 물바래기 하나 없이 모가 잘 자라서 모내기까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모판이 죽은 것 없이 대부분 잘 자랐다. 수량을 넉넉히 했더니 많이 남았다. 물바래기가 나거나 모판 부족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그래도 남은 건 폐기했다.




본격 모내기

올해는 하루에 20마지기 정도씩 심어서 5일 만에 모내기를 끝냈다. 모내기는 대체로 수월하게 끝났다. 5일 중 이틀은 사람을 1명 샀고, 나머지 3일은 남편과 단둘이서 모내기를 했다. 사실 인건비도 무시 못 한다. 그리고 사람을 쓰면 평소 일하는 방식이 잘 안 맞을 경우 오히려 같이 일하기 번거롭다. 밥, 간식 챙기는 것도 은근히 신경 쓰인다.


사람 쓰고 했을 때랑 둘이서 했을 때를 비교하면 둘이서 맘 편하게 일하는 게 더 좋았다. 물론 남편이 이앙기 운전하랴 무거운 거 나를 때 도와주랴 몇 배로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데에는 큰 무리없이 둘이서도 충분했다.


'논못자리'를 할 땐 이앙기를 트럭으로 옮기고 트랙터에 모판운반기를 달아서 모판을 옮겼다. 논에 깔아 둔 모판을 떼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하우스못자리'로 바꾸고 처음엔 원래 쓰던 거니 당연히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모판운반기를 사용했다. 모판운반기는 모판을 틀에 꽂기도 힘들었고, 빼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트랙터 이동속도가 느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논으로 이동할 때 속도가 느렸다.


이제는 모판을 트럭으로 옮긴다. 4륜구동 트럭은 하우스 안으로도 들어갈 수 있어서 트럭에 직접 쌓아 올려 운반한다. 싣기도 편하고 내릴 때도 편하고 모내기가 끝나고 모판이랑 쓰레기 등을 정리해 올 때도 편했다.


트럭 2대를 남편과 내가 하나씩 몰고 논으로 가서 모내기를 했다. 나는 모판에 살균살충제를 뿌려서 준비하고, 남편은 이앙기 비료와 제초제를 넣는다. 이앙기에 모판을 가득히 싣고 논에 가서 남편이 모를 심으면, 나는 농약봉투, 비료봉투, 모판을 정리하고 다시 싣고 갈 모를 준비했다.


여자 혼자 모판 나르기, 비료 나르기가 힘들 때도 있지만 일꾼을 쓰면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이 불편하다. 다른 집 모내기보다 모판이동을 간소화시켰다. 이앙기가 논 밖으로 나와서 모판을 옮겨가는 방법으로 진행한 덕분에 나 혼자서도 충분히 서포터 할 수 있었다. 손발이 잘 맞아서 낭비하는 시간 없이 착착착 일이 진행됐다.


1주는 금토일 연달아 심고, 그다음 주는 토일 심었는데 비가 엄청 왔다. 5월이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날씨가 부쩍 더웠는데 주말 내내 비가 온 덕분에 덥지 않아서 나름 좋았다. 비를 안 맞으려고 용쓰면 힘든데, 비 맞을 각오로 일하면 덜 힘들다. 그렇게 5일간 모내기를 끝으로 일 년 벼농사의 반 이상이 끝냈다.


모내기하는 주말 동안 아이들은 집에만 갇혀 있어야 했다. 더 어렸을 적엔 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유튜브 보여주며 달래 가며 데리고 다녔다. 사실 일하면서 아이들 신경 쓰느라 그땐 너무 힘들었다. 이제 좀 컸다고 둘이서 집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그래 밖에서 따라다니느니, 화장실 있고 티비 있고 먹을 것 있는 집이 더 낫겠다 싶었다.


아침밥 주고 논에 갔다가 점심 챙겨주러 다시 집에 갔다. 밥 먹고 다시 논에 나가서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왔다. 냉큼 씻고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엄마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힘든 내색도 못 했다. 아이들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말 내내 지들 맘대로 실컷 놀았다고 신났다. 모내기 끝나면 애들 데리고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자며 남편이랑 맥주 한 잔 마시며 놀러 갈 계획을 잔뜩 세웠다. 그렇게 모내기를 끝냈다.






모내기가 다 끝나고 다시 월요일 시작. 평일엔 아픈 줄도 모르고 잘 지나갔는데 다시 돌아온 주말엔 몸살이 났다. 몸도 쉴 때를 기다렸다가 아픈 건가 싶어서 신기했다. 벼농사 중에 젤 큰 일을 무사히 끝내서 마음이 편안했다. 물론 아직 남편의 일거리는 남았지만 ㅜㅜ


벼농사의 5월. 남편은 한 달 동안 5kg이 빠졌다. 잠이 부족한 달이다. 새벽에 일어나 논에 갔다가 뛰어들어와 씻고 회사출근. 회사 퇴근과 동시에 논으로 가서 깜깜한 밤에 귀가한다. 맥주 한 잔 마시고 쓰러지듯 잠들면 새벽에 어김없이 일어나 논에 나가길 반복했다. 덕분에 나도 5월 한정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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