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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10월 : 벼수확

10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벼수확철이 왔다. 모내기할 때는 언제 이걸 다 심나 싶어서 심난한데, 수확할 때는 어디 더 밸 때 없나? 하고 신난다.



볍씨 판매방법

벼농사에서 수익창출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나라에 팔거나, 개별로 방앗간이나 농협 RPC(미곡종합처리장)에 팔거나. 판매형태에 따라 또 2가지로 나뉜다. 수확하자마자 볍씨를 바로 판매하거나 볍씨를 건조기로 말려서 판매하는 것이다. 젖은 벼를 물벼, 말린 벼를 산물벼(톤백으로 말린 벼)라고 하는데 어디에선 산물벼를 물벼처럼 말하기도 한다. 난 쉽게 물벼, 건벼(건조벼)라고 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웠다.


나라에 쌀을 판매하는 것을 '공공비축미 수매'라고 한다. 공공비축미는 건조벼만 받는다. 우리는 집에 볍씨건조기가 있어서 집에서 건조시켜 보관해 두었다가 볍씨의 일부는 공공비축미로 수매하고 남은 물량은 방앗간에서 도정 후 쌀로 나온 만큼 돈으로 환산하여 판매한다.



수분과 수확시기

10월 초부터 여기저기에서 콤바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도 벼수확하는 논들이 보였다. 물벼로 판매하는 농가는 볍씨 수분이 높아도 크게 개의치 않고 수확을 한다. 그리고 수확한 즉시 농협 RPC나 방앗간에 갖다 준다. 


물벼로 판매할 경우 건조비를 제외시켜 정산하기 때문에 건조벼에 비해 값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건조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니까 쉽고 빠르고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농사량이 많지 않다면 대부분 물벼로 판매한다. 반대로 우리가 건조벼를 판매하는 이유는 수고롭긴 하지만 값을 훨씬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건조벼로 판매하는 농가는 10월 날씨가 무척 중요하다. 건조기에 돌려서 볍씨를 말려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날씨가 좋고 볍씨 수분이 적게 나올 때를 기다린다. 보통 첫서리가 내리면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볍씨 수분이 낮아진다고 한다.


2023년 올해도 첫서리가 지나가고 비소식 없는 날을 기다렸다. 물벼로 판매하는 이웃에게 요즘 볍씨수분이 얼마 정도 나오냐고 물어보니 20%쯤 나온다고 했다. 벼를 수확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10월 중순 이후에 벼수확을 시작했다. 첫 수확한 볍씨 수분을 측정해 보니  18% 정도가 나왔다. 적당했다.



벼수확 출발준비

콤바인은 크기가 크고 속도가 느리다. 때문에 이동할 때는 트랙터에 추레라를 달아서 그 위에 싣고 다닌다. 남편이 콤바인 실은 트랙터를 운전하고 가면, 나는 트럭에 톤백거치대와 톤백자루를 싣고 따라간다. 추수할 때는 준비작업도 챙겨갈 것도 간단해서 좋다.


아침엔 이슬이 많아서 볍씨가 젖어있다. 햇볕에 이슬이 마를 때를 기다렸다가 오전 10시쯤 벼수확을 시작한다. 출발하기 전에 남편은 콤바인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칼날을 정비하고 기름칠을 한다. 주유를 하고 트랙터 추레라에 싣고 출발할 준비를 마친다. 나는 볍씨 담을 톤백자루만 챙기면 출발 준비 끝! 전날 밤 볍씨건조기를 돌리고 갔다면, 밤중에 건조가 마쳐진 볍씨를 건조기에서 빼고, 새로운 볍씨를 건조기에 넣고 작동시킨 후 논으로 출동한다.




벼수확에서 가장 힘든 점

논에 도착하면 콤바인을 트랙터 추레라에서 내리고 논으로 들어가 추수를 시작한다. 그동안 트럭에 실려 있는 톤백거치대에 톤백자루를 걸어서 볍씨 받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콤바인이 가득 볍씨를 탈곡해 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린다. 모내기는 논밖에서도 쉴 틈 없이 할 일이 넘쳤는데 그에 반해 벼수확은 여유가 넘친다. 


대신 벼수확에서 가장 힘든 점은 볍씨가루의 공격이다. 벼에서 볍씨를 탈곡할 때 볍씨에 붙은 고운 털들이 엄청 날린다. 볍씨를 밸 때, 털 때, 쏟아낼 때 모두 이 볍씨가루가 사방으로 날려서 들러붙는다. 피부에 붙으면 엄청 따갑고 간지럽다. 때문에 수확철엔 마스크, 목수건, 모자, 장갑이 필수다. 완전 빈틈없이 무장을 해도 틈사이로 들어가서 온몸을 간지럽게 한다. 피부가 약한 편이라 저녁에 씻고 나면 온몸이 간지럽고 부어오른다. 농사철에는 집에 알레르기약 구비가 필수다.




볍씨톤백 옮기기

물벼로 판매하는 농가는 콤바인으로 벼수확하는 동안 트럭 톤백을 나른다. 방앗간이나 RPC에는 싣고만 가면 지게차로 내려주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다. 트럭이 2대면 더 빨라진다. 


우리는 올해 둘이서 모내기, 둘이서 벼수확을 해서 속도가 많이 더뎠다. 볍씨건조기에 말려야 하기 때문에 톤백을 집으로 날라야 한다. 트럭에 실은 톤백이 가득 차면 집으로 돌아가서 톤백을 내려놓는다. 지게차를 이용해 톤백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남편이 콤바인을 멈추고 집으로 함께 이동해야 했다. 다시 논으로 돌아갈 때는 빈 톤백자루를 싣고 트럭 2대를 나눠 타고 왔다. 이렇게 해야 콤바인이 조금 더 연속해서 작업할 수 있고 한 번에 톤백을 더 많이 옮길 수 있었다. 


하루에 20마지기씩 추수한다면 톤백이 약 10개 정도 나온다. 트럭 1대로 옮기면 5번 왔다 갔다 했을 텐데, 트럭 2대로 옮기면 3번만 왔다 갔다 하면 된다. 벼수확을 할 때 톤백 옮기는 시간만 단축시켜도 작업효율이 높아진다. 논과 논 사이의 이동경로도 최단으로 계획하는 것이 좋다.



볍씨건조기 돌리기

공공비축미로 수매를 할 경우, 볍씨의 수분은 13~15%가 되어야 한다. 더 낮아도 안되고 더 높아도 안된다. 수확한 볍씨의 수분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건조를 오래 해야 한다는 뜻이다. 건조를 오래 하면 건조기의 석유사용량이 많아진다. 유가가 올라서 트랙터, 콤바인, 트럭, 건조기에 사용되는 기름값도 큰 부담이다. 기계를 적게 사용하는 것도 농사에서 돈을 아끼는 방법 중 하나이다. 


볍씨수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논 2마지기당 약 1000kg(톤백 1자루)의 볍씨가 나온다. 하루에 약 20마지기씩 수확을 한다면 수확량은 톤백으로 10개 정도 나온다. 우리 집 건조기는 4.5톤짜리다. 한 번에 톤백 4개 정도양을 넣고 말린다. 볍씨에 수분이 많아 건조를 오래 하면 수확해 온 볍씨를 빨리빨리 건조할 수 없다. 수분이 많은 볍씨를 톤백에 장시간 담아두면 아침엔 이슬맞고 낮엔 햇빛을 받아 푹푹 찐다. 볍씨가 쪄지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수분이 많은 볍씨는 빨리 건조시켜 창고에 보관해야 한다. 둘이서 하루 20마지기 수확이 최선이지만 더 빨리 후다닥 해치우고 싶어도 건조 때문에 서두를 수 없다.


벼수확은 보통 오후 6시쯤 작업을 마무리한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 수확한 볍씨를 건조기에 넣고 돌린다. 아이들 저녁 챙기러 먼저 집에 갈 때도 있고, 배달음식 시켜주고 남편과 마무리까지 하고 갈 때도 있다. 일이 늦어지면 아이들에게 젤 미안하다. 


볍씨건조는 1차로 수확 직후에 15.5%로 말리고, 수매 직전에 2차로 14%로 말린다. 수매날까지 보관 중에 수분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2번에 나눠 건조한다. 수분이 약 18%인 볍씨를 15% 정도로 말리는데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저녁에 건조기를 돌리면 아침에 볍씨를 꺼낸다. 그리고 전날 수확하고 남은 톤백볍씨를 한번 더 넣고 건조기를 작동시킨 후 논으로 간다.


벼수확기엔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8시쯤 퇴근한다. 콤바인으로 추수가 끝나고, 볍씨까지 1차 건조를 다 끝내면 10월에 할 일이 대충 끝난다. 벼농사의 90%쯤 완료되었다. 



수매신청 수매준비

10월 중순쯤 행정복지센터 산업개발팀은 이장님을 통해 마을단위로 공공비축미 수량신청을 받는다. 농업은 마을단위 사업이 많고 이장님을 통한 행정처리가 많은데, 젊은 농업인으로서 불편한 점이 많다. 올해도 이장님 연락만 기다리다가 수매를 놓칠 뻔했다. 산업개발팀에 직접 수매신청을 했고, 겨우 수량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11월 초에 각 농가의 신청수량 중 수매 가능한 수량을 확정 통보해 준다. 올해는 수매 참가 농가가 많아서 대부분 신청수량보다 배정수량이 줄었다고 한다. 작년 쌀값이 많이 떨어져서 올해 수매로 많이 집중된 것 같다. 수량이 확정된 후 11월 초부터 마을단위로 수매 일정을 맞추고 순차적으로 수매를 진행한다. 


수매수량이 확정되면 수매전용 톤백을 미리 구입해야 한다. 작년에 수매톤백이 몇 장 부족했는데 재고 남은 곳이 없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느라 고생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미리 판매처에 문의하고 10월 말에 수량 확보를 했다. 진천에도 수매용 톤백을 판매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기업에 방문하여 구입한다.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볍씨는 다 돈이 된다. 그래서인지 가을추수는 힘들어도 일할 맛이 난다. 수매날이 확정되면 수매날 일주일 전쯤부터 2차 건조를 시작한다. 이제 진짜 벼농사의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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