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직장생활 중이던 20대 때,월급만으로 갚을 수 없는 큰 대출을 갑작스럽게 상속받았다. 농사를 이어받아 유지하는 것이 대출을 갚을 유일한 방법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직장생활과 병행하여 농업에 뛰어들었다.
농사 지을 준비가 다 되어있는 상태에서 시작했고, 농사지어서 대출만 갚으면 되니까. 임대계약이 남은 토지가있었고 농기계가 종류별로 있었다. 남편은 어렸을 적부터 아버님을 도와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었고, 기계정비를 잘해서 낡고 고장 난 농기계를 스스로 고칠 수 있었다. 농사짓는 이웃주민들을 다 알고 있어서 농사에 필요한 정보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은 운이 좋았다. 하지만 모두가 이와 같은 조건으로 시작할 수 없다. 농업을 시작하려면 고민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농사가 잘 되면 분명 돈이 된다. 하지만 돈을 벌려면 먼저 더 큰돈이 필요하다. 돈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최소 농가소득 계산하기
농사소득은 후불제이고, 직장생활 없이 농사만으로 생활 및 농업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면 부담이 커진다. 농사소득을 안정화시키려면 일정한 농사량이 확보되어야 한다.
1년에 얼마를 벌어야 생활이 될까? 먼저, 한 달 동안 우리 가족의 총생활비는 평균 얼마나 필요한지 따져보고 1년 치 생활비를 계산해 본다. 그리고 1년 농사자금으론 무엇에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해서 1년 예산을 따져본다. 경제적 자유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예를 들어 1년 최소 생활비가 2400만 원, 1년 농사자금이 약 1000만 원 필요하다면 1년에 최소 3400만 원은 벌어야 저축 없이 겨우 생활이 유지될 수 있다.
벼농사를 예로 들면 1마지기의 논에서 대략 4가마의 쌀이 생산된다. 임대한 논이라면 4가마 중에서 1가마는 도지로 주고 3가마가 실 소득으로 남는다. 쌀 시세가 1가마에 약 18만 원 정도라면, 1마지기 논을 농사지어서 벌 수 있는 돈은 54만 원이 된다. 3400만 원의 농사소득을 창출하려면 약 63마지기를 농사지어야 된다. 물론 쌀값이 변동될 수 있고, 수확량이 달라질 수도 있는 변수를 염두에 두면 더 많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토지확보는 어떻게?
자, 그럼 63마지기 땅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농사에서 젤 중요한 것은 토지확보. 농사지을 땅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토지를 확보하려면 직접 매매하거나 농어촌진흥공사를 통해 임대하는 방법이 있다.
땅을 사는 게 젤 빠른 방법이지만 토지 매매는 해마다 올라가는 땅값 때문에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현금부자가 아닌 이상 대출을 받아야 하고 이자부담이 생긴다. 귀농귀촌, 창업농, 후계농 등에게 토지매입 대출을 지원해 주는 사업을 잘 활용해서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농어촌진흥공사를 통해 토지를 매매하는 방법도 있다.
토지 임대는 농어촌진흥공사에서 경쟁입찰을 통해 낙찰받아야 하는데 이 또한 경쟁이 치열하다. 즉, 벼농사를 처음 도전한다면 토지확보가 될 때까지 소득보다 지출이 많을 수 있다. 그때 어떻게 버틸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되어야 한다.
농기계는 어떻게?
벼농사에는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가 기본으로 필요하다. 그 외 작업마다 다양한 트랙터 보조장치(?)들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구입해서 쓸 것인가, 임대해서 쓸 것인가, 영업을 맡길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구입하려면 목돈이 필요해서 부담이 크다. 물론 중고농기계를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중고농기계를 구입한다면 고장 나거나 부품을 교체할 때 수리비도 고민해 봐야 한다.
임대해서 쓰면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하지만 내가 필요할 때, 내가 필요한 만큼 맘대로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농기계 영업만 하는 전문으로 하는 업체나 농업인에게 작업을 맡길 수도 있다. 아주 편하긴 하지만 비용 부담이 매우 크다. 농사량이 많다면 영업비용 줄 돈으로 내 기계를 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목표 농사량을 고려하여 농기계를 어떻게 운용하는 것이 더 유익할지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
인력은 어떻게?
농사는 혼자서 해내기 힘든 부분이 많다. 대부분의 농가들을 보면 부부가 같이 하던지, 가족이 함께 하던지, 인력을 돈 주고 쓴다. 함께 도와줄 인력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필요할 때마다 사람을 돈 주고 불러야 한다면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인건비도 인건비이지만, 인력사무소에서 사람을 데려오고 일이 끝나면 사람을 데려다주는 것이 꽤나 번거롭다.
인건비를 줄이려면 내가 직접 밤낮으로 고생하는 방법과 초기 투자자본은 비싸지만 자동화 기계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돈을 줄이려면 돈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투자가치가 있다면 자동화 기계를 추가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도와주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농사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면 1년 농사를 시작할 수 있다. 농사는 후불제이다. 1년 치 농사에 쓸 현금을 들고 농사를 시작한다. 이렇게 들고 있는 돈을 얼마큼 알뜰하게 잘 쓰면서 12월 수익이 날 때까지 버티는지가 참 중요하다. 1월부터 12월까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무엇에 돈을 쓰고 어떻게 절약할 수 있는지 정리해 보았다. 농사에 도전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