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가 없다. 즉, 모든 요리에 내공이 느껴지는 곳.
신혼집이 약수이다 보니, 근처에 있는 맛집들은 더 정감 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중 제일 내가 사랑하게 된 곳, 키친오늘을 소개하려 한다. 이곳은 SNS의 사진들을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어마어마한 비쥬얼을 갖고 있는 디쉬들 때문에 혹했는데, 예약을 하려다 보니 상당히 고난 도였다는 걸 알게 되며 더욱더 이곳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월 마지막 주 주말 즈음에, 사장님께서 인스타그램에 예약 관련 게시글을 올리신다. 그 후 바로 예약 공지에 따라 DM을 보내면 예약 성공 여부가 결정이 된다. 처음 시도했던 1월, 1초 만에 보낸 것 같았는데 결과는 실패 .. 아쉬움과 동시에 내가 여기는 꼭 가고 만다는 생각이 들어 이 악물고 2월에 바로 도전하여 성공하였다. 날짜는 와이프 생일 전 날, 여러 명이 가서 이것저것 시켜먹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부모님까지 해서 4명 예약 성공하였다.
생각보다 상당히 외진 곳에 있었다. 금호역 도보 10분 거리, 금호시장에서 금호터널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아파트 단지 앞에 3,4 테이블 남짓의 작은 공간이 나온다. 주문 메뉴 중 반 정도는 예약을 해야만 가능한 메뉴로, 이 메뉴 또한 한 달에 한 번 20% 정도만 남기고 변경된다. 그 메뉴 또한 예약 시기 즈음해서 공지가 되고, 그 메뉴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예약 전 날, 사장님께서 알아서 문자로 물어봐주신다. 그러면 사전예약 메뉴 중 원하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면 된다. 예약 대란의 수많은 식당들 중에서 꽤나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식당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예약 대란, 인스타그램 확인 필수
키친오늘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많이 봤을 비쥬얼의 숙성모듬회 사진이다. 시그니처 메뉴이면서, 처음 방문 시 거의 무조건 시키게 되는 대표 메뉴이다. 그런 만큼 매달 바뀌는 메뉴판 속에서도 절대 바뀌지 않는 메뉴이다. 여러 종류의 흰 살 사시미를 수준급 숙성 후 두께감 있게 썰어 내준다. 특히 사이드에 주는 단새우와 우니 소량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감태와 함께 먹으면 그 자체로도 새로운 요리가 된 것 같고, 특히나 다른 사시미들 먹을 때 같이 곁들여 먹으면 정말 고급스러워지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은, 간장도 맛있다. 달큼하고 찐득하다. 입에 정말 촥 감겨서, 초반부터 강하게 맞고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시기가 잘 맞으면 어란도 함께 제공된다. 이 퀄리티에 이 가격에 이 양에 어란까지 제공되니, 더할 나위가 없다.
사장님 남아요 ?
철이 잔뜩 오른 봄 나물 위에 육회와 우니를 얹어주는 우니육회. 비쥬얼만 봐도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었다. 게다가 우리집 어마마마는 우니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계시기에 이 또한 사전주문으로 미리 말씀드려놨다. 나물은 봄 나물 중에 어떤 것이 올라갈지는 그 날 그 날 다른 것 같았다. 이 날 나물은 새발 나물?로 예상이 된다.
우니가 철이 아님에도 녹진해서 놀랐다. 적당한 들기름에 젖은 육회와 녹진한 우니,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가는 노른자가 내 손으로 하여금 화요 한 잔 더 따르게 하였다.
또 하나의 시그니처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우니어란파스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우니의 시장 가격이 합리적이었나 보다. 메뉴 3개 연속 우니가 주/조연을 맡고 있으니. 뭐 이런 메뉴를 시킨 것은 결국 우리가 직접 시킨 거고, 그만큼 우니를 사랑하기에 절대 질리거나 물리거나 하지 않았다. 파와 마늘 위주로 맛을 낸 오일에 큼직한 우니와 어란 가루가 묵직하게 스며들어갔다. 좋은 재료들이 좋은 요리법을 만나니 그 풍미가 확대되어 입 안을 자극하였다.
우니의 향연, 녹진한 맛 그 자체
이 이후로도 키친오늘에서 튀긴 요리를 몇 번 먹었는데 참 사장님 다재다능하신 것 같다. 잘 튀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각 튀김의 반죽이나 스타일이 다를 텐데 그에 따라 바뀌는 양념의 변주 또한 상당히 유연하시다. 슬슬 배가 부를 때가 된 시점, 맥주를 무한정으로 부르는 메뉴가 나왔다. 오징어튀김은 현장 주문 가능 메뉴이다. 튀김도 퀄리티가 상당하지만 내가 엄지를 치켜세우고 싶은 점은 저 타르타르와 아이올리 중간 즈음되는 소스이다. 나중에 남은 소스 어떻게든 먹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마도 이날의 베스트였던 우삼겹 토스트. 듣기론 우삼겹이 거의 400g 가까이 들어갔다고 사장님이 그러셨다. 매달 바뀌는 메뉴 속에서 토스트는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여 키친오늘의 팬이라고 하면 그 토스트가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날씨와 철에 비례하여 탄생되는 토스트는 들어가는 재료도, 요리 방식도, 빵의 종류까지도 조화롭게 변화한다. 사실 이 즈음이면 천하의 나도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인데 이 타이밍에 이런 메뉴를 주면 그걸 움켜잡고도 쿰척되며 먹게 된다. 정말 입에 들어가 나의 미식 돌기들을 자기들 마음껏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는데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고, 사장님의 요리실력이 우수한 것 이상으로 교묘하고 영악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메뉴였다.
반근이 넘게 들어간 우삼겹. 이 곳을 설명해주는 그런 메뉴.
사장님은 정말 남자답게 잘 생긴 훈남이시다. 이런 분이 요리까지 잘하고 접객력까지 갖추셔서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키친오늘은 최대한 많은 인원이 갈수록 좋은 곳이다. 6명이서 가서 메뉴 7개는 시켜야 속이 좀 시원해질 만할 것이다. 2명이서 가면 메뉴 선택에 너무 애를 먹는다. 4명이서 가도 부족하니 꼭 참고하시길. 양도 정말 정말 많이 준다. 페이스 조절 잘하는 것이 키친오늘에서 성공하는 비법이다. 금호를 넘어 중구의 빛, 키친오늘 꼭 한 번 가보시길.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