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러 갈래?
군에 간 작은 아이가 휴가를 나왔어요. 한참 전에, 사람보다 먼저 택배 박스가 6개가 도착했어요. 휴가를 확정 짓지도 못하면서 택배만 열심히 시키더라고요. 그랬는데도, 이번에는 어쩐 일로 외출을 많이 안 합니다.
"그냥 쉬다 가려고요."
그래서인지 열흘의 휴가 중에 절반정도는 집에 있는 일정을 알려주더라고요.
"그럼, 엄마랑 브런치 먹으러 갈래? 새로 생긴 곳이 있거든. 괜찮은 것 같더라고."
강원도 바닷가에서 군 생활을 하는 아이는 바다는 실컷 보았을 거예요. 여름휴가철에 많은 사람이 찾는 바닷가에 근무지가 있습니다. 남들은 노는데 군에서 근무하는 마음, 물론 저는 모르지요. 어렵게 나온 휴가인데도 쉬고 가겠다고 할 만큼의 심드렁한 기분이겠지요. 군인의 마음까지 헤아랴 줘야 하나 싶지만,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준 것입니다. '요란한 쇼핑몰에는 가고 싶겠지.'
그런데 아들은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엄마가 혼자 심심하신가 보네, 같이 가 드려야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내가 가주었다'라고 생각하는 시간이지만, 뭐 그래도 좋지요.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너의 부대 취사병은 음식 잘하냐?",
"우리 부대에는 민간 조리원이 오세요. 그리고 완제품을 많이 쓰는 것 같던데... 그래서 맛이 없진 않아요.", "그래? 괜찮네!"
'그래도 연어 샌드위치는 못 먹잖아?' 속으로만 생색을 냅니다.
"이것 다 먹으면, 오늘 뭐 할 거야?",
"딱히 일정은 없어요. 나가기로 한 것 취소해서요."
"그래? 그럼 영화 보러 갈래? 부대에서 제대로 뭘 보기도 어렵지?"
"우리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TV 볼 수 있어요."
"그래봤자, 공영방송이겠지!"
"우리, 올레 TV에요."
"우리 집이랑 똑같네!"
"오펜하이머 보자! 여기까지 나왔는데! 영화는 이렇게 즉흥적인 마음이 들 때 봐야지!"
"엄마가 원하시면, 봐요. 저도 보고 싶기는 했어요."
'응? 아니, 나는 네가 원할 것 같아서... 좋아! 이번에도 엄마가 원한 것으로 하지...'
그리고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나름 고등시절에 물리 공부를 부족하지 않게 한 아이라 이해를 잘할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역시 공대생이라 그런가요. 역사는 맥락이 없더라고요. 온갖 유명 물리학자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아이의 상식은 시간 순서가 엉킨 모양이었어요.
"엄마, 아까 그 부분에서 오펜하이머가 한 이야기가 이해가 돼요?"
"그 얘기? 그건 아인슈타인이 한 얘기지!"
"아.. 어쩐지! 이해가 안 가서 한참 고민했네!"
"벌걸 다 헷갈리네! 어쨌든, 너무 재밌었지? 엄마는 진짜 재밌었는데."
"저도 재밌었어요. 보길 잘한 것 같네."
고등학교부터 기숙사에 나가 있던 아들이라 집에서 살갑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방학에 오면 학원 다니며 공부하라 내보냈고, 대학에 가서도 방학 때조차 집에는 잠깐만 다녀갔어요.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으니까요. 안 그러는 것도 이상합니다. 얼굴 보기 힘든 것이 잘 지낸다는 의미일 거예요. 집에는 쉬러 오는 것이니,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 24시간을 보냈거든요. 역시 그러라 했습니다. 고등 때부터 나가 산 아들은 사실 조금 서먹함도 있어요.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느낌도 들고요. 그렇게 서운하게 시간이 가는 줄 알았는데요.
뜻밖에 군 휴가 기간에 엄마와 시간을 보냅니다. 엄마는 쉬러 온 아들을 위해서, 아들은 심심해 보이는 엄마를 위해서. 사실, 엄마는 하나도 안 심심한데요. 어쩌면 아들도 굳이 나가길 원하진 않았을지도요. 그럼에도 이제야 사분사분 여유 있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생긴 느낌이에요.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며 시간을 내어줍니다.
엄마는 돈도 내어주고요.
그리고, 저에겐 아직 시간과 돈을 내어주어야 하는 아들이 둘이 더 있습니다.
아직도 육아 중입니다.
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