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F라고?

엄마가 F라고요?

by 부키

휴가 나와 빈둥거리는 녀석, 모처럼 여유라고 침대에 붙어 있는 녀석, 그리고 코젤 다크가 당기는 엄마.


"집 앞에 맥주 마시러 나갈까?"

다 큰 아들들에게 물어봅니다. 사실 요청입니다.


"네! 좋아요!" 워낙, 흔쾌히 반갑게 대답하는 녀석들은 아닙니다.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짧은 답을 날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언제나 집에서 호들갑은 엄마 몫이에요. 아들만 있는 집은 그렇습니다. 게다가 셋이나 있고요. 게다가 이제 다 커서 엄마에게 잘 보이려 할 본능은 사라진 지 오래거든요.


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거품이 풍성하고, 게다가 컵 입구에 묻어 있는 달달한 설탕까지. 도저히 집에서 먹을 수 없는 맥주예요. 가끔 생각이 납니다. 엄마는 고민도 없이 바로 결정해요. 왜냐하면 그것을 먹는 것이 계획이었으니까요.


매주 좀 먹어 본 큰 아이는 이래저래 고민을 합니다. 이미 아는 맛에 대해 얼마나 더 좋을지 가늠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같은 에일 계열에서 신중하게 고르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나 결정합니다. "저는 카스 생맥주요." "응? 진짜? 다른 것 안 마시고?", "그냥 생맥이 마시고 싶네!"


무척이나 신중한 작은 아이는 안 마셔 본 것을 고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연신 검색을 해요. 그렇게 하나를 고릅니다. "나는 허그 미." 그런 맥주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 가게의 시그니처인가?' 암튼, 맥주를 선택하는 모습도 제각각입니다. 성격이 나오는 게지요.


"엄마는 MBTI가 뭐예요?" 뜬금없이 작은 아이가 묻습니다. MBTI는 여전히 화젯거리인가 봐요. "엄마는 잇프제!" 철자 하나하나 말하기도 번거롭고 말하려면 꼭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한 단어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사실 검사도 한번 정도 해본 것 같아요. 워낙 많이 물어보기도 하시고, 내심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계속 써먹는 중입니다.


"엄마가 F라고요?"

"어! 엄마 F야! 너는?"

"나도 F 100인데?"


서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동그래졌어요. "엥? F 100이라고? 설마~~~" 당연히 T 일거라 생각했어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는 공대생이거든요. 그럼 T 아닌가요?


"어머. 그래?"

"그럼 너는?" 큰 아이에게 물었어요.

"나는 ENFP"

"네가?" 이건 더 놀랠일이었어요.

저랑 가장 비슷한 성향이라고 생각한 아들이 첫째였거든요.


"이게 변하더라고." 큰 아이의 설명입니다. 원래 I였는데, I에 가까운 E로 바뀌고, 주위에 워낙 T만 있으니까, F라고 느껴진다는 거였어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니, 주위 사람에 따라 상대적인 느낌만 있게 된다고요. 맞아요. 그럴 거라 생각이 듭니다. 주관적인 느낌으로 측정되니까요.


'온통 T에 둘러 쌓여 사는구나!'

"그럼 너, 지금 공부가 적성에 안 맞는 거 아니야?"

농담 반, 진담 반, 작은 아이에게 물어봤어요.


"그래서 조금 고민이에요. 그냥 융합전공으로 다시 설계를 할까 하는..."

"아.. 그래?"

"개발자보다는 매니저가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기획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서 전역하고 복학 전에 선배 회사에 나가서 기획일을 한 번 배울까 생각해요."


28sq1xwl.png 출처 pinterst, by Amanda Barylski




과학고를 졸업하고 2년 만에 대학에 진학한 작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재는 이과네!"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이 그랬을까 싶어요. 당연히 이공계열로 진학해서 매우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도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으니까요. 공부를 한 것 같지는 않고요. 다양한 활동을 하며 배운 것 같아요. 너무 잘하는 친구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자질이 작아 보이기도 했을 거고요.


적성에 대한 고민 없이 진학한 경우, 대학에 다니면서 한 번쯤은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찌어찌 이곳까지 왔는데, 과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 잘하는 것이 맞는지는 진짜 공부를 해봐야 아니까요. 아마 벽을 느끼기도 했을 거고, 또 다른 나의 장점을 봤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게 무엇이든 고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시기에 군에 간 것 같았어요.


'무기한 휴학'이 가능해지면서, 학부 중에도 창업하여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키우는 선배들이 더러 있답니다. 처음 개발자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기획에 CEO를 겸하는 선배를 롤모델로 삼는 것 같아요. 피할 수 있어서 좋아 보인건지, 진짜 열정이 솟고 있는 건지, 역시 겪어봐야 알겠지요.


요즘 대학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다양하게 전공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하나만 잘하는 것도 좋고요. 두루두루 제너럴리스트가 되도록 길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시도하고, 결정해 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여전히 스페셜리스트를 최고의 가치로 아는 우리 집 남편은,

당연히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서,

AI 대학원에 진학하여,

누구라도 부러워할,

IT계열의 인재가 되기를 원하는 눈치예요.

그보다 더 다양한 가능성과 기회가 있음을 함께 이야기해야겠어요.


과연 MBTI가 뭘까 싶어요. 요즘 세대는 뭐든 이렇게 유형으로 그룹 짓기를 좋아하나 봐요. 즐거운 상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기회에 적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니까요.


내년 초, 전역을 하고 인턴을 하면서 다시 MBTI 검사를 해보면 다르게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나 T가 맞나 봐요."

아님, 말고요.

그래도 좋고요.


어디에든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좀 더 F가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그런데 T이길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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