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귀찮지 않으세요?

귀찮다고 말했어야 한다

by 부키

주말에 하는 일 중 하나가 야채 손질이 있어요. 이번주에는 오이와 당근, 파프리카, 컬러 방울토마토. 냉장고에 양배추와 로메인 등의 잎채소도 있지만, 당장은 이 정도만 합니다. 잘 씻어 물기를 털고, 먹기 좋게, 또는 담기 좋게 잘 준비해 놓아요. 이유는 매일 도시락을 싸는 아들 때문이죠. 일전에도 도시락 싸는 이야기를 써봤는데요. 여전히 싸고 있습니다. 이뿐인가요. 고구마도 작게 잘라 구워놓고, 닭가슴살도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 넣고요.


"엄마, 귀찮지 않으세요?"


황금 같은 휴일 오후 주방에 서서 일하는 엄마 옆에 서며 물어보네요. 답은 정해져 있어요. 엄마의 답이니까요. "귀찮기는~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그렇게 아들을 안심시키고 여전히 씻고 썰고 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귀찮은 일 맞잖아요?

'가만있어봐... 귀찮다고 말했어야 하는 거였네. 귀찮지만 기꺼이 한다.'

그렇다고 다시 불러서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엄마로서 모양 빠지게... 라며 넘어갔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어차피 우리 인생은 귀찮은 일을 해 나가는 과정 아닐까 하는. 귀찮은 일이어도 해야 하는 거라면 기꺼이 좋은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 좋았다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아이도 알고 있을 겁니다. 겉으로 괜찮다 말해도 사실은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요. 그럼에도 엄마가 '괜찮다' 이야기해 주니 좋았을 거예요. 엄마가 귀찮다 한다고 본인이 직접 하기는 싫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더 말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귀찮은 일을 대신해 주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된 것도 있고요. '그러니 너도 너의 귀찮은 일을 기꺼이 즐겁게 해야 한다' 하는 메시지를 줄 수 있었으니까요.




저녁에 쭈볏쭈볏 봉투를 하나 들고 나옵니다. 어버이날이라 준비했다고 하면서요. "봉투가 하나라 두 분 드릴 것을 같이 넣었어요." 확실히 디테일은 떨어지는 아들입니다. "그래? 이야기하지~ 여기 봉투 더 있는데!"

기쁘게 받았습니다. 나름 아르바이트도 하고 이래저래 돈을 모아놓고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작년까지는 작은 선물을 준비하더니 이젠 현실적으로(또는 편하게) 준비했더라고요.


생각보다 훨씬 큰 액수의 돈이었어요. 남편이 얼른 이야기합니다. "너무 많다. 마음은 받았으니, 다시 가져가라"며 한 장씩만 빼서 챙기고 다시 돌려주라고요. 아이방에 들어가서 돌려주니 물론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한 장씩 더 뺐어요. 그리고 더 뺐죠. "이 정도는 받을게. 나머지는 가지고 있다가 더 좋은 일에 써라. 받은 것 돌려주는 게 아니라, 용돈 주는 거니 넣어 둬."


그리고 다시 남편에게 물었어요. "이왕 준비해서 주는 데 받지 그랬어요?", "그럼 내년에는? 처음 마련한 봉투가 기준이 될 건데 계속 너무 부담될 거라... 기준을 낮춰야지."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귀찮다'라고 말하지 못해 생긴 엄마 노릇의 기준과 말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기준을 정해 준 아빠의 노릇이 사뭇 달랐던 휴일이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는 믿음과 몰라서 안 할까 봐 하는 우려가 언제나 공존합니다.


모를까 하는 우려에서 반복하는 이야기는 어느 순간 잔소리가 되고요.

알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마음은 핑곗거리를 주더라고요.

그 경계를 지켜야 하는 엄마 노릇은 쉽지 않아요.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어요.


귀찮다고 말할걸,

하지만, 기쁘게 하고 있다고,

그러니 너도 너의 귀찮은 일을

기꺼이 하라고


예를 들면, 방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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