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가치를 이끌고 있다

기술을 이끄는 가치, 가치를 이끄는 기술, <먼저 온 미래>

by 부키

‘AI가 이기고 싶은 두 사람‘ 유튜브 썸네일에서 본 문장이다. 배경에는 이세돌 바둑기사와 페이커 게이머의 얼굴이 등장한다. 며칠 전 방영된 ’MBC 손석희의 질문들‘ 방송이야기다.


방송에 초대된 두 명의 '천재'들은 AI의 도전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 그록5의 일론 머스크가 페이거팀과 게임 대결을 희망한다고 한다. 페이커는 받아들였고, 언제 진행될지는 미정이다. 이세돌 기사는 우리 모두가 아는바, 알파고와 대국을 해서 1승 4패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후, 그는 은퇴했다.


이세돌 기사는 자신이 더 이상 바둑의 예술적 발전에 기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은퇴했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AI를 넘어설 수 없음을 누구보다 일찍 직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페이커는 아직 자신 있어 보인다. 게임의 특성상 AI는 인간의 직관을 흉내 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를 옆에서 듣는 이세돌 기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면서도 회한이 어린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결과는 바둑계에 많은 파장을 낳았다. 이를 취재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었다. 장강명 작가가 그의 기자 본성을 발휘하여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여 정리한 책이다. 바둑계에서 먼저 겪은 일을 서술하지만, 작가가 활동하는 문학계에 닥쳐 올 미래의 염려도 함께 담고 있다.


이세돌은 그의 바둑을 '기풍'과 '예술'의 경지에서 이야기한다. 알파고를 이긴 4국의 78수는 사실, 그 이전의 68수에서 '암수'를 두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한다. 달리 말해 '꼼수'였으며, 다른 대국에서는 써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아 보인다.


최근 바둑계는 AI와 그럭저럭 지내는 듯하다. 세계 최강 신진서 9단은 AI로 바둑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이제 누구나 노력만 하면 바둑을 공부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최근의 바둑 대국은 AI가 두는 초반을 그대로 암기하여 둔다고 책은 전한다. 기존의 바둑계는 도제식 교육과 그들만의 단단한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였다. 그들의 조직에 입단할 수 없다면 프로기사로 성장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하지만,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AI로 바둑을 공부하고, 자신의 바둑 실력을 키울 수 있다며 환호하는 변방의 기사들도 있다. 모든 기술의 발전이 그렇듯, 명암이 교차한다. 그 경계에는 이전 기득권들의 긴장이 존재한다.


장강명은 문학에서 AI의 도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물론, 반기지는 않는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소설을 쓴다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도 근미래에 AI의 잘 쓴 소설과 경쟁해야 할 것임을 알고 있다. 이제 작가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하물며, 황석영 작가조차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최근작 <할매>를 완성하지 않았나.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일을 수행하는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 장강명 작가의 책이 출간된 지 일 년 여가 지난 지금은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작가는 책에서 반복적으로 “기술이 가치를 이끄는 게 아니라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이 가치를 이끌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인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술을 이끄는 가치를 위해 인문학이 나서야 함을, 그 가치로 기술을 이끌기를 기원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토론에서는 이런 외침이 단지 기술이 이끄는 사회에서 인문학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미 기술이 이끌고 있다. 기술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기술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블랙홀이 생겼다. 기술의 밖에서 가치를 논하기에는 그 괴리가 너무 커졌다. 인공지능을 사용한 결과물을 배척하는 것으로 기술을 논할 시점인가? 기술 속에서 가치를 봐야 한다. 기술과 가치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속의 가치와 가치 속의 기술을 살펴야 한다. 과학 기술자만의 일도 아니고, 인문학자만의 일도 아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누가 더 잘 사용하는지를 묻는 사회다. 기술을 이끄는 가치는 우리 모두의 질문이 되었다. 장강명 작가의 책 <먼저 온 미래>는 이제 우리 곁에 있는 현재의 이야기가 되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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