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다움 Jan 20. 2024

기생충 유발 간식을 아시나요?

생라면이라 부릅니다.

부모님이 잠에 든 걸 확인하면 슬그머니 가슴팍에 최애 간식을 숨겨 내 방으로 간다.

문 닫히는 소리조차 나면 안 된다. 우리 엄마는 귀가 밝으니까. 문 손잡이를 힘을 주어 잡고 문을 아주 살짝 닫는다. 소리 없이 문을 닫았다고 안심한 채 손잡이를 놔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잠귀도 밝은 엄마가 깰 수도 있다! 손잡이를 쥔 힘을 서서히 풀며 손잡이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천천히, 천천히 리듬을 맞춰야 한다. 동그란 손잡이가 제자리를 찾으면 힘을 조금씩 풀며 문 앞에서 해방된다.


그렇게 마주한 소중한 내 최애간식은 "생라면"이다.

오도독 오도록 씹히는 식감, 스프에 살짝 찍어 먹을 때 나는 밀가루 맛이 섞인 고소함은 나의 미각을 자극한다. 어제도 먹고, 그제도 먹었지만 오늘 또 생각나는 간식이다. 생라면은 봉지째 부수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문제는, 엄마가 그 소리에 깰 수도 있다는 거다. 겨울이면 두꺼운 이불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몸 쪽으로 꼭꼭 여민다. 이불속에서 나는 어떤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깜깜한 이불속에서 봉지째 생라면을 부순다. 두 손으로 봉지를 잡아 반으로 쪼갠다음 다시 각각 반씩 쪼갠다. 4등분이 나면 손으로 잡아 쪼개기 어렵다. 라면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팔꿈치를 들어 4개의 조각을 가격한다. 봉지를 뜯으면 딱 적당한 크기로 제각각의 모양을 뽐내고 있는 뽀얀 라면이 나를 반긴다. 나는 스프를 뿌려 먹지 않는다. 스프의 강한 맛이 생라면의 밀가루 맛이 섞인 고소함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봉지의 가운데를 뜯은 후 양쪽 끝 부분도 개봉한다. 라면을 소중하게 감싸고 있던 비닐은 배를 벌리고 라면을 내어준다. 잘 부서진 라면을 한쪽으로 모아놓은 후 스프를 반 정도 한쪽 귀퉁이에 뿌린다. 준비 끝! 이불속에서 나와 방바닥에 라면봉지를 곱게 내려놓은 후 먹는 맛은 한겨울 따뜻한 부뚜막에서 먹는 군고구마 같이 달콤하다.


이렇게 맛있는 간식을 왜 몰래 먹느냐면, 엄마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다. 엄마는 생라면을 먹으면 기생충이 생긴다고 극혐 하셨다. 어느 날은 친구 딸이 기생충이 생겼는데, 생라면을 하루가 멀다 하고 먹은 게 이유라고 했다. 내가 어렸던 그 시절에는 기생충과 동거동락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채변검사라고 아는가? 신문지를 깔고 대변을 본 후 일부를 떼어서 채변봉투(비닐봉지)에 넣어서 학교에 제출해서 기생충 검사를 했던 시절이었다. 기생충은 전염이 될 수 있어서 약도 온 가족이 동시에 먹어야 한다. 엄마는 기생충을 극혐 하셨고, 생라면은 기생충을 만드는 원흉이었기 때문에 절대 금지 품목이었다. 어쩌면, 엄마 몰래 먹었기 때문에 더 맛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지만 그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아직도 생라면을 먹는다. 이제는 맥주안주로 생라면을 먹으며 자유를 즐긴다. 결국 엄마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생라면 자체의 맛을 사랑하는 거다.


입맛도 유전일까? 우리 아들도 생라면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이제는 라면 2개를 부숴서 아들과 나눠먹는다. 그러다, 알았다. 엄마의 마음을. 영양가 있는 맛있는 음식들을 두고 생라면만 주구장창 찾아대는 아들을 보니 걱정이 앞섰다. 라면을 여기저기 숨겨봐도 귀신같이 찾아내는 아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기생충 생겨"였다. 아들은 움찔하더니 먹는 빈도가 조금 줄었다.


엄마는 기생충을 극혐 해서가 아니라 영양가 없는 음식을 자주 먹는 딸이 걱정되어서 기생충을 이용했던 거다. 엄마가 되니,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저 맛있어서 즐기던 간식 하나에도 엄마의 걱정과 염려가 담겨있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도 아들과 생라면을 먹으며 걱정어린 염려를 전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엄마의 마음을 담아.

생라면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해줬다. 그래서 더 생라면이 사랑스러워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