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다움 Feb 04. 2024

정말 한약때문이라고?

50만원 짜리 한약의 영향

폐렴으로 병원에 약 2주가 입원했던 엄마가 퇴원하셨다. '천식'이라는 새로운 친구를 하나 더 사귀어왔다. 아. 새로운 친구는 아니다. 내가 모르는 친구였을 뿐. 6~7년 전 엄마는 '천식'진단을 받았는데 그 뒤로 아픈 일이 없어 잠시 손절했던 친구이다. 그런 친구를 사귀는 것도 몰랐냐며 병원에서 타박받을 때 얼마나 서럽던지. 결국 그 친구를 몰랐던건 엄마의 '치매'때문인 걸로 결론지어가는 의사를 보며 얌전히 혼나던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치매 때문이 아니라, 증상이 없으니까 잊고 계셨던거라구요!"

"네네. 그러셨겠죠." 

바람결에 날아와 머리위에 살짝 앉은 낙엽을 털어내듯 나의 말을 사뿐히 던져버리는 의사는 나의 무의식을 깨웠다. '아직, 나는 엄마의 새 친구 치매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누구나 깜박 깜박 하는 일이 있는 정도의 건망증도 "엄마, 치매때문이야! 자꾸 기억하려고 노력을 해야지!"라고 외쳐댔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건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건,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내로남불' 그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내로남불중이었다.




퇴원한 엄마는 얼굴살은 빠지고 뱃살은 늘어있었으며, 눈빛은 조금 더 초점이 없었다. 기침과 가래는 조금 나아졌지만 손이 떨리는 건 더 심해져서 젓가락질을 할 때면 음식을 많이 흘리셨다. 그때마다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라며 타박하는 딸에게 엄마는 힘이 없어 의자를 당기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엉거주춤 일어서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의자를 당기며 무릎 안쪽에 의자가 닿자 철퍼덕 주저앉듯이 앉는 엄마를 바라보며 또 화가 났다. 사실 그건 '화'가 아니다. '안타까움'과 '속상함', '애처로움'이다. 엄마가 예전 같지 않음에 슬프고, 속상하면서도 엄마의 변화된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는 엄마에게 자꾸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강요하고 있다. 될 수 없는 일을 기대하며, 매번 되지 않음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바닥에 음식물이 떨어져 강아지가 주워먹을까 걱정되는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식탁 가까이에 왜 앉지 않는지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젓가락이 아닌 숟가락으로 반찬 그릇을 헤집는 엄마의 행동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알고 싶어하는 자세'  아들 양육 교육을 하며 이야기하는 주요 내용 중 하나이다. 아들을 알고 싶어해야 아들이 변화할 수 있고, 아들이 성장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알고 싶어하지 않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정말 알고 싶어하지 않은 것일까?'  '왜 알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식탁위에 차려진 밥상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식고, 메마르며, 윤기를 잃는다. 제때에 음식을 먹지 않으면 차갑고, 버석해져 맛없다고 느낀다. 그런 음식들은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보며 식탁 위에 차려진 밥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기 전 엄마는 참 윤기나고, 반짝였고, 열정적이었는데 지금은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버석하며 곧 스러질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삶의 윤기를 잃어가더라도 쓰레기통이 아닌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해보기로 했다. 


엄마 몸의 떨림이 심해지고, 식은땀이 점점 많아지며 기력이 없는 모습에 한의원을 찾았다. 침을 맞고 1개월에 50만원이라는 돈을 주고 한약을 지었다. 냉장고 한 켠을 차지한 한약을 보며 한숨이 새어나왔다. 파킨슨 때문에 심해진 머리와 손 떨림이 한약으로 나을까 싶었다. 엄마가 마음으로 위안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한약의 효능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엄마는 한약을 한 봉씩 뜯을 때마다 말한다. '한약 많이 먹으면 빨리 못죽는데.. 에휴.." 그리고는 원샷. 이제 말에 숨은 뜻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40대 중반의 딸은 그 의미를 알아듣는다. 


그렇게 한약을 먹은지 2주일가량 된 어느 날 식사 중 남편이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장모님, 손을 안떠시네요?" 

'응? 손을 안떤다고? 엄마가?'

오잉???? 손을 안떤다!! 그러고 보니 머리 떨림도 줄었다. 오잉????????

엄마는 "한약 먹어서 그런가? 이게 달아서 먹어야 효과가 더 날텐데..."라며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젓가락을 힘차게 움직인다. 엄마를 보며 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 다음 달에도 한약을 지어야겠구나... '


신경과에서는 엄마의 손떨림, 머리 떨림은 파킨슨 증상이라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식은땀은 특별히 몸에 이상이 없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의사의 말은 거의 철썩같이 믿는 나는 엄마에게 '의사가 별 수 없다니 불편해도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고 그저 방관(?)하고 있었다. 퇴원 이후 심해진 엄마의 모습을 보며 한의원에 가보자고 했던 남편에게 고마워진 순간이다. (남편은 한의원을 믿는 편이다.) 정말 한약이 효과가 있는것인지, 엄마의 심리적 안정 효과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증상이 호전된 것만은 분명하다. 퇴원이후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던 엄마는 침을 맞겠다며 주 2회 이상은 한의원 외출을 하신다. 스스로 외출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도 감사하고, 그렇게라도 바깥 바람을 쐬는 것도 감사하다. 칭찬을 고래를 춤추게 하고, 한약은 엄마를 움직이게 한다. 


수분이 바싹 말랐던 엄마가 촉촉해졌다. 아직 윤기가 나지는 않지만, 잔소리가 돌아온 것을 보니 나아졌음을 알 수 있고, 반갑다. 사람은 누구나 메마를 때가 있다. 몸도, 마음도. 그럴 때 다시 수분을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미스트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우리 엄마의 미스트는 한약이었던 것 같이 말이다. 


병을 진단받으면 그때부터 정말 환자가 된다. 주변에서 환자로 대하니 더 환자가 된다. 그저 병이 있을 뿐이지, 그 사람이 달라진건 아닌데 말이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인정하고,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