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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이가 Sep 06. 2021

실로 어색한 공간에서 귀인을 만나다

30대 헬린이

처음 가는 공간은 늘 설렘과 동시에 어색함을 주기 마련이다. 공간에 따라 설렘이 더 크기도 하고, 어색함이 더 크기도 하다. 꽤 여러 가지 인자가 이 둘을 가르는데 영향을 줄텐데,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구성원의 차이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입학식 날의 학교는 나도 처음이지만 옆에 있는 애도, 앞에 있는 애도 다 처음이다. 그럼 설렘이 더 크다. 하지만 전학 간 학교는 나만 처음이다. 이러면 어색함이 더 크다.


같은 이유로 헬스장은 참 어색한 공간이다. 나는 이 공간뿐만 아니라,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기구가 처음이다. 그런데 안에 왔다갔다 하는 근육 많은 아저씨들은 익숙하다 못해 그곳이 집 같다.


'집에 가고 싶다....'


내가 선택한 헬스장은 꽤 유명한 곳이었다. 사람도 많고 기구도 많았다. 당연히 비어있는 기구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사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기구는 비어있지 않았다. 사실 다른 이들이 쓰고 있는 기구라고 해서 내가 사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들어온 지 5분도 채 안돼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세상에서 제일 간절해졌다. 발 끝을 점점 출구 쪽으로 돌리며 서성이고 있으려니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 처음 오신 분이죠?"


왜 그런 인상 있지 않나. 웃으면 사람 좋아 보이는데, 무표정하게 있으면 진짜 무서운 사람. 얼굴 때문인지 우락부락한 몸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런 이상을 지닌 사람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과도하게 숙이며 네라고 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그러신 거 같더라고요. 살 찌우시려고요?"

 "아뇨, 꼭 그런 건 아니고. 어깨가 아픈데, 운동하라는 말을 들어서요."

 "어휴, 라운드 숄더가 심하시네. 어휴. 어휴. 이걸 어째."


사내는 정말 속이 상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누군가 내 몸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걱정해 준 적이 있었나. 친구랍시고 진료까지 봐줬던 놈조차 이러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자세히 봐준 적도 없는 거 같았다. 의사라라는 놈이 엑스레이만 보고. 그에 반해 이 사내는 어떤가. 아까부터 지금까지 내내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 심지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지 마시고.... 저 따라서 잠깐 이거 해보실래요? 어이구. 다리도 뻣뻣하시고.... 허벅지가 좀 얇으시네요. 종아리는 타고 나는 건데.... 이건.... 이건...."

 "목은 괜찮아요? 아프죠? 아플 거 같아요. 거북목인데. 아이고..... 아이고...."


그래, 이 세상에서 오직 이 우락부락한, 이름도 모르는 사내만이 내 몸을 보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종래에는 말도 잘 잇지 못할 지경이었다. 몸 좋은 사람이 너무 이러니까 덩달아 나도 걱정이 들었다.


난 그냥 어깨가 아프니까 등 운동이나 좀 하려고 온 건데. 자꾸 안 좋은 데가 추가되는 느낌이랄까? 문제는 한번 말을 듣고 보니까 신경이 쓰인다는 점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도 문제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긴 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온 듯했다.


어깨에 하체에 목까지. 그냥 정상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았다.

속된 말로 답이 없었다. 이 사람은 있을까? 이 몸뚱아리는 절망 그 자체인 거 같은데? 나는 별 기대 없이 물었다.


 "어쩌죠?"


내 말에 사내는 그저 푸근히 웃었다. 그 안에 당황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어쩐지 관록이 느껴졌다. 여유가 있달까? 보통 사람은 이럴 때 신뢰를 느끼는 법이었다. 생각해보면 의사가 되고 제일 먼저 배운 것이 포커페이스였다는 걸, 사인을 하고 나서야 생각났다.


하여간 사내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계약서였다.


"피티 해보시죠. 제가 잘 가르쳐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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