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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Apr 01. 2024

대충 살자, 다람쥐처럼

'너 그거 강박이야.'

'응, 그래. 그런 것 같아.'

일본까지 여행을 가서도 알차게 놀지 못한다며 누워있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 그건 강박이라고.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쉼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조차 효율을 찾고, 누워있는 행위를 자책하고 있으니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내리 이틀이 출장이었다. 피곤을 풀 시간도 없이 돌아온 당일부터 이틀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눈앞에 놓인 일이 있으면 몰두해야만 안심이 되는 이상한 성격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대학원생으로서의 자아와 사업자로서의 자아, 그리고 선생으로서의 자아를 모두 챙겨야 했기 때문에 이 상황이 버거웠다. 설명회를 준비하면서 카페에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는데 마음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구나.


그냥 이대로 휴학계를 내버릴까, 생각하다가 학교 행정실에 전화했더니 받지를 않는다. 부활절 휴가라고 한다. 얼마의 등록금이 환불될까 머리를 굴려보다가 그냥 휴학신청 메일을 보내버렸다. 사유에는 '취업'이라는 두 글자를 적어서. 취업이든 창업이든 그게 그거니 알 게 뭔가.


아직 꽃이 피기에는 다소 이른 계절이다. 2021년에 갔던 벽초지 수목원에 다시 다녀왔다. 푸른 풍경을 보며 마음을 정화해보려 했는데 푸른색보다는 빛바랜 갈색 잎이 더 많았다. 예전의 기억이 너무 미화됐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이곳은 원래 이런 곳인 건지. 사실 중요할 것은 없다. 그냥 내 기억 속의 공간이 좋았다면 좋았던 것이고 이번의 느낌이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남겨두어도 괜찮다. 2021년 11월 언저리에 갔던 수목원을 물들어가는 계절로 기억하려 한다면, 지금의 수목원은 푸른빛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두어도 된다.


지켜주는 울타리 없이 오롯이 혼자 꾸려가야 하는 삶이 쉬울 리가 없다. 예상했지 않은가. 이유가 어찌 되었든 '못 견디고' 회사를 뛰쳐나온 것은 내 탓이고 그 밖에서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도 내 몫이다. 물론 상상하고 바란 것 이상으로 잘 풀리고 있다. 그런데 잘 풀리고 있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잘 풀리고 있다고 해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다람쥐처럼 사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수목원의 다람쥐는 입 안 가득 무언가를 밀어 넣고 우물거린다. 먹을 것을 비축해 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리 애쓰지는 않는다. 수목원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먹을 것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먹거리를 직접 찾아 나서야 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다람쥐의 삶의 방식을 조금은 닮아 보기로 했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서 약간의 쉼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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