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다. 아기가 어떤 물건을 집어들 지는 초유의 관심사다. 돌잔치는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문화에서, 1년 이상 살아남은 아이를 축하하기 위한 행사라고 했다. 그런데 97년생은 돌사진이 없다.
Z세대. 내가 속한 세대다. 통상 95년 이후 출생자를 MZ 중에서도 Z로 통칭하더라. 회사를 다닐 때는 나에게는 까마득한 과장님이 나와 같은 MZ 세대인 것이 다소 낯설었다.
"아빠는 왜 결혼하고 아이를 둘이나 가진 거야?"
작년 어느 날, 아빠에게 물어본 질문.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한국식 나이로)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대부분 결혼을 하던 나이.
"내가 보고 자란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에, 자식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빠의 대답이다. 아빠는 베이비부머인 63년생이다. 휴전 딱 10년째 되던 해에 태어난 그에게, 어린 시절의 부산 풍경이란 인프라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열악한 곳이었다. 그런데 첫째를 낳을 쯤에는 집에 최신형 PC도 놓을 수 있었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필름카메라로 찍어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것이 그가 어린 시절에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내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보다 나은 삶을 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IMF가 터졌다.
내가 태어나던 해였다. 사업을 하던 우리 집은 직접적인 타격이 덜했지만 아빠 친구들 대부분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잘 다니던 직장이 사라졌다. 노숙자가 처음 생겼다. 97년생의 돌잔치는 금기 같은 것이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제대로 된 돌잔치를 한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돌반지도 없다.
물론 잘 사는 사람들에겐 해당이 없는 이야기겠지만.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고 배웠다.
어린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는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다.'라는 말이었다. 어느 날 가세가 기운 이후 엄마는 줄곧 내가 선생님이 되기를 바랐다. 엄마 눈에는 따박따박 돈 들어오는 공무원 친구들이 최고로 부러운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세대에게 주입된 최고의 가치관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시기다. 2016년 재수생 신분을 핑계삼아 바깥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유감이다. 대학생이 된 친구들은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 나는 아직 그 의미를 해석할 줄 모른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부모님과 공감대가 생겼다고 했다. 대학에 입학한 해 봄에, 5월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동기들과 손을 잡고 투표를 하고 돌아왔다.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은 5년 간 집권한다.'는 상식이 무너졌다.
코로나가 터졌다.
대학교 4학년이 되던 무렵이었다.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하다가 '멘붕'에 빠졌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다가 갑자기 터진 코로나로 탈출하듯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어 있더라.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 않았고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다.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진 채로 어영부영 학교를 졸업했다. 취업 자리는 유례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2008년의 리먼 사태 때보다 더하다는 기사도 더러 보았다. 학교 커뮤니티의 취업 게시판은 우울했고 어느 누구도 답을 모르는 상황에서 버려지듯 사회인이 되어버렸다.
내가 배운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어린 시절 배운 것 중에 유효한것이 없다. '안정적인 직업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며 2015~2016년 사이 정점을 찍었던 교대는 올해 인기가 뚝 떨어졌다. 나는 고3 때에 초등교육과에 지원했다 떨어졌는데 말이다. 정작 전교 1등을 유지하다가 선생님이 된 친구는 교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공무원이 된 친구는 면직을 고민한다. 연금이 삭감되어 앞으로 평생 먹고 살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고 한다. 대기업에 들어갔던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회인이 '되어버린' 나이만 먹은 20대 중반이었다.
어린 시절 절대적 진리로 여겼던 것 중 현재 유효한 것이 있을까? 돌잔치를 하지 못한 나와 친구들은 부모님께 배운 가치관들이 하루하루 무너지는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공무원, 안정적인 직업,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직장, 평생직장. 이런 개념들은 이제 하나 둘 은퇴를 맞이하고 있는 그분들께 너무나 가치로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돌잔치를 하지 못한 나와 친구들을 '요즘의 Z세대'라고 칭하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실직과 저임금 노동으로 내몰린 부모님들, 학원비를 내지 못해 학원을 관두는 친구들이 많은 동네에서 자라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의지'의 문제라기 보다는 '가치관의 실종'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함께 타파해야 할 시대담론이 없어졌고, 모든 문제가 개인화되는 세계에서, 어린 시절 배운 가치관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Z세대는, 그렇기 때문에, 돌잔치를 하지 못한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