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밤과 엄마의 대성통곡

by 레어버드

나의 상처받은 뇌가 바라는 건 사과가 아니라 ‘이해’였다.


몇 달 전, 부모님과 호주 교수님을 모시고 23일간 독일과 북유럽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독일 투어를 마치고 덴마크를 거쳐 노르웨이에 도착한 날 밤이었다. 아직 스웨덴과 핀란드 일정이 남아있어서 체력 및 에너지 분배를 잘해야 하는데 그날 밤 터지고 말았다. 현지 가이드 투어 예약을 마치고 엄마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잠들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노르웨이 집들이 너무 예쁘다, 시골집 노르웨이 집처럼 다시 짓자, 그러려면 아빠가 반대할 텐데, 어떻게 설득할까, 아니다 그냥 있는 거 잘 지키면서 살자, 옛날엔 더 없이도 살았다, 그러다가 ‘라떼는...’으로 이야기가 흘렀다. 엄마가 살아온 얘기를 하는데 하필 내가 어릴 적 얘기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릴 적 물리적 학대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엄마는 두 번이나 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며 언성을 높였다. 전혀 기억에 없는 얘기였다. 나는 말했다. 진심 어린 사과였으면 내가 분명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엄마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 너한테 미안하다고 했잖아! 두 번이나, 그런데 왜 자꾸 사과하라고 해!’라며 엉엉 우셨다. 마치 떼쓰는 철부지 아이 같은 엄마의 행동에 순간 엄마의 엄마가 되어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엄마, 괜찮아.’라고 진심으로 마음을 어름 쓸어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독한 마음으로 꾹 참았다. 어린 내가 받은 고통에 비하면 어른으로서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아픔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송장처럼 누운 채 속으로 ‘엄마 실컷 울어, 울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테니까.’라며 찢어지는 마음으로 흐르는 눈물을 소리 없이 닦았다.


한참을 엉엉 우시더니 엄마는 ‘나는 내가 너무 싫다’라며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자기혐오적인 발언에 더 이상 나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울다가 잠이 들었고 엄마는 수면장애로 밤새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 부은 눈으로 잠에서 깼다. 엄마는 ‘너 아침 먹고 밖으로 나와, 투어 가기 전에 얘기 좀 해야겠다.’라고 지시적인 명령조의 말투로 얘기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동화 같은 노르웨이 집 숙소 밖, 정원 의자에 앉아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가서 앉았다. 어릴 적 매 맞기 전 불안한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엄마가 입을 열었다.

‘잘 들어. 너 다시는 어제처럼 엄마가 너 때리면서 키운 얘기 하지 마. 한 번만 더 얘기하면 그땐 진짜로 큰일 날 줄 알아. 알겠어?’

마음이 내려앉고 말문이 턱 막혔다. ‘응’이라고 대답했지만, 엄마는 똑바로 얘기하라며 내가 틀렸고 엄마가 옳다는 확언을 요구했다.


결국 나는 ‘알겠어, 엄마. 다시는 얘기 안 할게. 어제는 내가 잘못했어.’라고 억지로 꾸역꾸역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을 해드렸다. 엄마는 마음이 풀리셨는지 그날 노르웨이 투어를 기분 좋게 즐기셨다.


나는 상처를 받았다. 이미 상처가 난 곳에 더 깊은 상처가 났다.

엄마를 탓하고 원망하려고 얘기한 게 아니라, 그때 내가 너무 아팠고 힘들었다는 걸 이해받고 싶어서 한 얘기였는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투어 내내 노르웨이 비겔란 공원의 인간 군상이 아름다움이 아닌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귀신같이 내 상처를 알아채셨는지 같이 갔던 호주 교수님이 조용히 곁에 와서 물으셨다. 괜찮냐고... 그 한마디에 주르륵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보는 눈이 많은 관광지여서 꾹 참고 말씀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을 찍으며 지나가던 엄마가 ‘너 또 교수님한테 뭐라고 다 얘기했지? 엄마 얘기 좀 그만해.’라며 핀잔을 주었다. 순간 ‘여기 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이라도 엄마가 ‘내 엄마(my mummy)’였으면’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으면’

‘우리 딸 힘들었을 텐데 잘 커줘서 고마워..라고 얘기해 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역시나 욕심이었다.


상처가 치유되려면 가해자의 인정과 공감이 필수적이나 그렇지 못한 경우 ‘내려놓음’이라는 치유 방식이 있다. 그러나 고통을 동반한다. 나는 ‘엄마로부터 내가 원하는 치유와 사과를 얻기는 어렵겠구나...’라고 현실을 받아들였고 ‘이해’ 받는 것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바라고 원하는 마음을 포기하자 나의 고통은 정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노르웨이의 밤과 엄마의 대성통곡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 자신을 스스로 돌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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