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치던 내 삶이 천륜으로 어느새 또다시 죽고 싶어졌다.
몇 년 전, 친조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렇게 작고 천진난만한 아이를 어쩜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렸을까?’
명치끝에서 응어리진 눈물 덩어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문제는 조카들이 커갈수록 엄마에 대한 분노도 같이 커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엄마라면 어땠을까? 아무리 열받고 화가 나더라도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작고 힘없는 아이를 굵은 몽둥이가 부러질 때까지 때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들만 봐도 그러는데 내가 낳은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 출산, 육아를 포기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왜 고착화되는 걸까?
하루는 엄마가 친손주를 보다가 때렸다고 카톡 전화가 왔다. 정리를 하자면 여섯 살짜리 조카가 엄마집 거실벽 비싼 친환경 벽지를 손톱으로 긁적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걸려 맞았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아차 싶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엄마 미쳤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곧 알아차리고 심호흡을 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견뎌온 나만의 방법이었다. 한 템포 쉬고 나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심혈을 기울여 인테리어를 하고 손수 지은 집이라 애착이 많은 건 알지만 하나밖에 없는 손녀를 그렇게 때리는 건 잘못된 교육방식이야. 충분히 말로 타이르면 되는 일을 다 늙어서 없는 힘 끌어다 써가면서까지 때릴 일이냐고.’
엄마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지, 그리고 그렇게 세게 때리지도 않았어’였다.
그날 나는 잠이 들 때까지 마음이 서늘했다.
기억은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코와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 채 쌕쌕거리며 내 옆에서 자던 네 살짜리 남동생이 떠올랐다. 남동생 손을 잡고 토닥이는데 손바닥이 물에 젖은 것처럼 축축했다. 식은땀이었다. 얼마나 맞았던지 나도 동생도 엉덩이에 시퍼렇다 못해 검붉은 멍이 들었고 온몸이 쑤셨다. 그래도 22개월 많은 누나라고 동생이 깊은 잠이 들 때까지 토닥거리다 잠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서로 팬티를 내리고 엉덩이를 확인했다. 지난번보다 이번에는 누가 더 파란 지도가 많이 그려졌는지 확인하고는 낄낄거렸다. 밤사이 살아냈다는 안도의 웃음이었다.
겪어보니 구타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충격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나고 통증, 부상으로 인한 염증반응이 일어나면서 몸살을 앓는다. 무지했던 그 시절 나와 동생은 고작 여섯 살, 네 살이었다. 그리고 지금 조카는 여섯 살... 내가 잠옷 소매로 남동생 식은땀을 닦아주며 잠들던 딱 그 나이다.
만약 내가 낳은 딸인데 엄마가 때렸다면 엄청난 화가 올라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백발백중 천륜을 끊었을 거라 예상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마 우울증으로 고생한 나머지 자살 충동에 휩싸여 하루하루 힘들어하다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진심으로 내가 결혼, 출산, 육아를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게 천만다행이지 싶다. 나이가 들수록, 조카들이 커갈수록, 엄마가 늙어갈수록...
그날 엄마의 카톡 전화를 받고 친손주를 때렸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또다시 사는 게 싫어졌다.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다시 생기려면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바로 내 안의 진짜 내 엄마, 아빠를 찾는 일, 즉, 내 스스로가 엄마가 되는 일이었다.
마더 테레사까지는 아니지만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려는 노력의 일부를 해본다면 나의 존재 근원인 엄마의 엄마가 되는 일은 결국 나를 살리는 일이 아닐까? 그 깨달음은 어느 날 호주 TV에서 오프라 윈프리의 인터뷰를 보다가 유레카!처럼 다가왔다.
“I stopped wanting from mum.” (저는 어머니한테 바라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Forgiveness is giving up the hope that the past could be any different. It’s letting go so that the past does not hold you prisoner.” (용서란 과거가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가 당신을 잡아 두지 않도록 놓아주는 것입니다.)
“Forgiveness is a gift you give yourself.” (용서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평생 용서할 수 없었던 단 한 사람인 자신의 어머니를 끝내 용서하며 했던 유명한 말, 내 마음의 등대처럼 확! 와닿았다. 엄마가 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의 바람을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그렇게 탁 놓아버렸다.
한때는 엄마를 이해하면 용서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 삶을 이해하려고 무수히 노력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어릴 적 상처를 치유해 주지는 않았다. 되려 ‘나는 이렇게 엄마를 포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엄마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안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괴로움에 사무쳐 이민살이의 서러움과 함께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혼자 펑펑 울기도 많이 울었다. 살면서 힘든 일을 겪고 당할 때면 언제든지 돌아가 안기고 싶은 단단한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하염없이 엄마, 엄마, 소리 내며 울었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오프라 윈프리의 말 한마디로 다 내려놓자 아, 나의 감정적 갈망이구나! 욕심이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 시절 교육심리학 시간에 분명 어릴 적 채워지지 않은 나의 욕구는 채워져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론일 뿐이었다. 현실은 욕심이라고 생각하고 내려놓지 않으면 영원히 괴로웠다.
결국 조건 없는 엄마의 사랑을 고파하고 바라는 건 우리에게 학습된 감정적 욕심 아닐까?
오프라 윈프리의 말대로 그 욕심을, 그 희망적 바람을 그만둘 때 비로소 만인의 ‘엄마’, 엄마의 ‘엄마’, 나아가서는 내가 나의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어머니’가 될 수 있을 때 상처가 상흔이 되어 반짝이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