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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Dec 13. 2023

아픈 만큼 감사해

아프면 알게 되는 것



어딘가 한 군데라도 아프게 되면 그동안 무탈하게 아프지 않았음을 감사한다. 최근 며칠 동안 허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허리 통증은 병원을 다녀오고 더욱 심해졌다. 새벽에 자다가 강아지가 낑낑거리면 침대 밑으로 내려가서 패드를 갈아주고는 하는데 아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일어나려는 순간,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강아지 패드를 갈아주는 일은 매일 하는 일이건만 앉아서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집안을 잘 걸어 다녔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꼬리뼈까지 내려온 통증은 처음 겪어봐서 놀람을 넘어서 무서웠다. 진땀을 흘리며 한발 한발 조금씩 발을 뗄 때마다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나 정말 괜찮아질 수 있는 걸까?’ 


다시 누웠을 때 어떤 자세를 잡아도 고통이 느껴졌다. 걱정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파서 잠은 안 오고, 핸드폰을 보려면 손이 불편했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전부라서 새벽이 길게만 느껴졌다. 자다 깨고를 반복하다가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이 찾아왔을 때 그나마 통증이 조금 잦아들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겠다 싶어서 몸을 움직여 보았으나 머리 감는 건 여전히 힘들었다. 병원에 다녀왔고 약을 처방받고서도 더 아팠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남편은 허리가 아파본 경험이 많아서 괜찮아질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태어나서 허리 통증과 함께 꼬리뼈의 고통을 처음 겪은 나는 계속 걱정되었다. 걷는 게 좋다고 하니까 이거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남편을 따라나섰다. 


길게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산정 호수’를 목적지로 삼았다. 남편과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기에도 좋은 장소인데 이날도 그랬다. 다행히 날이 춥지 않아서 가볍게 걸으며 산책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오히려 상쾌하기까지 했고 걷는 동안 몸의 경직된 부분도 많이 이완되는 듯했다. 한결 편안해짐을 느끼며 긴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병원을 가서 다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단순 염증이 아닌 살짝 디스크도 있었다. 가볍게 생각했던 증상이 바뀌니까 약도 달라졌다. 평소에도 병원 약을 먹으면 속수무책으로 부어서 몸무게가 2kg은 갑자기 늘어난다. 약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 뭘 해도 기운이 없어서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가 답답하고 힘들었다. 책을 읽어도 원하는 만큼의 독서량을 못 채웠고, 글쓰기도 힘들다는 건 핑계일까. 정말로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허리가 아팠다. 아직 허리를 숙여서 머리를 감는 건 힘들지만 고통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몸이 회복될수록 감사함이 더 커졌다. 지나갈 수 있는 고통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떤 고통의 시간도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비로소 보이는 매일 무탈한 일상의 소중함. 똑같은 날들처럼 보여도 진짜로 같은 날은 없다는 건 아팠을 때 확실히 알게 된다. 지루한 일상이라고 여겨질 때조차 행복한 투정이었다.  나아지고 있는 허리 통증만큼 잠시 혼란스러웠던 일상도 차츰 제자리로 돌아왔다. 비록 며칠 동안 힘들었지만 덕분에 건강과 운동 생각을 많이 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야 하는 내 몸의 건강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라? 이것도 아픈 만큼 성숙해진 건가.





산정호수에 있는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촬영지 돌담 병원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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