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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Nov 10. 2023

여행의 의미

햇빛을 받아 반짝있는 잔디와 나뭇잎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이 울렁임은 쉬이 가라앉지 못하고 자꾸만 나를 꼬드긴다.

'나가자. 나가자아! 나가자고오. '

정작 나는 용기가 없다. 혼자 나갈 용기, 혼자 즐길 용기. 그런게 내게는 태부족이다.

몇 년 전에는 이런 술렁임이 시작되면 그에게 전화해 어떻게든 내 옆자리에서 걷게 만들었다. 그랬는데...


내게 여행은 지나가 버린 기차이며 상해 버린 음식이다. 돌이킬 수 없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집  냉장고를 털고 자동차 트렁크에 항상 실린 돗자리와 간이 의자 두 개, 그리고 무릎 담요를 챙겨 강변에 차를 세우면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물에 뛰어든다. 나와 그는 각각 하나씩 간이 의자의 좁은 자리에 큰 엉덩이를 앉힌다. 이미 신발과 양말은 벗어 던졌고 발은 찰방찰방 물장난이다.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즐겁다. 그는 옆에서 연신 시원하다 노래 부른다. 한가롭고 즐거운 풍경, 우리 가족의 여행 풍경이다. 우리 가족의 여행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도 좋았지만 이런 소소한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둘이 눈을 맞추고 웃고, 아이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행복했고 슬거머니  잡는 손이 행복했다.


겨우 몇 년 흐른 지금,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그는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이러하니 혼자 여행이 왠말인가? 밖은 반짝이고 빛이 쏟아지는데, 덕분에 속은 수선스럽게 여전히 '나가자.'고 소리치는데 나의 입술과 눈은 불퉁거리며 찌그러진다. 그래서 이렇게 반짝이는 날들이 이제는 참 싫다. 나와는 상관없이 반짝이고 있는 저런 날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다. 마치 나를 놀리듯이.


여행은 아픈 기억이 되었다. 즐겁고 행복했던 모든 기억이 영원히 행복으로 기억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즐거운 기억을 많이 만들어두면 마냥 좋을 줄 알았다. 그건 한 순간에 슬픔이나 아픔으로 변질되어 버릴수도 있더라는 걸 경험이 알려준다.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추억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다는 낙담의 결론까지 얻어 버린다. 자꾸 변하는 내가 낯선데도 변화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아픔 뒤의 인생이 원래 이런 거라서 사람들은 아픔을 두려워하는 거였던가. 나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 그중 혼자 할 수 없는 아주 소소한 그런 것.

여행이라는 종류의 즐거움은 나에겐 의미를 잃은 슬픔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은 아직은 의미를 잃고 헤매는 중이다.

나는 아직도 무너져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여행을 참 좋아하던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여행계획을 세우고 그 속에 나를 포함시켰다. 나는 온갖 이유를 붙여 못가는 변명을 늘어 놓았다. 친구들은 삼고초려의 노력을 보였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기분 전환이 될지 누가 알겠어.'라는 친구의 말에 그 말을 믿기보다 그 말을 하는 친구의 걱정이 느껴졌기에 나는 즐거운 척 여행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아직은 이렇게 살아나가고 있다. 그렇게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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