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엄마아빠는 너의 우주

반려견의 엄마 아빠로서의 마음

by forever Young

[반려]라는 존재로 집에 함께 하게 된 동물들에게 그들을 데려오기로 한 보호자는 엄마이자 아빠이자 더 나아가 세상 전부이다. 인간의 세상은 훨씬 그 범위가 넓고, 이해관계와 서로 의지하는 관계들이 복잡하지만 반려동물들의 세상은 오로지 함께 하는 가족이 전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종종 지나갈 때마다 '개를 꼭 사람 대하 듯 대하네' 라거나, '개팔자가 나보다도 좋네'라는 말들을 들을 때가 있다. 보호자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사랑을 쏟아부어주는 이 작은 존재에게 고작 '개', '동물'이라는 이유로 하대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뒤통수 뒤에서 그런 말이 들릴 때면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되묻곤 한다. 가끔은.. 동물의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보다 훨씬 따듯하고 사려 깊을 때가 많다.


[기쁨이 엄마] 소리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들어본 장소는 바로 동물 병원이다. 처음 기쁨이 접종을 위하여 동네 병원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아직 작은 기쁨이를 요리조리 살펴보시고, [자. 엄마 애기 접종 기록지 같은 거 있음 보여줘봐 바요]라고 하셨다. 주섬주섬 분양 시에 받은 기록지를 내어주자 그 기록을 간호사분께서 수첩에 붙여주셨는데, 마치 내가 파란색의 의료보험증을 들고 다녀야만 했던 어린 시절, 간호사 선생님이 그 수첩에 기입을 해주시는 기분이었다. [이제 주사 맞을 거니까 엄마 말고 아빠가 애기 좀 잘 잡고 있어요] 하면서 주사기를 꺼내시는데, 왜 내 가슴이 철렁하던지.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나도 남편도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꼭 신생아 주사 맞히러 간 엄마아빠처럼 말이다. 깨갱하면서 두 앞발로 남편을 꽉 붙자고 억울하게 우는 기쁨이를 어르고 달래면서도 묘한 기분. 이것이 엄마아빠의 느낌이구나. 이제껏 수백 명의 어린아이들을 교육하고 돌봤지만, 선생님으로서의 돌봄과 엄마로서의 돌봄은 그 기분이 확연히 달랐다. 이게 엄마인 건가 싶었다.


기쁨이가 한창 어릴 때, 우리는 근처 큰 공원에 있는 반려견 놀이터를 자주 찾았다. 기쁨이는 놀이터만 보면 내달리고 싶어서 우리가 채 내려놓기도 전부터 공중에서 이미 네 발을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땅을 내딛기가 무섭게 친구들을 향해 뛰어갔다. 마음에 드는 친구라도 만나면, 감탄이 나올만한 속도로 운동장을 내달리고 또 내달렸는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남편은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질 못 했다.

소형견 중에서도 꽤 크기가 있는 기쁨이는 이 때도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골격이 있다 보니 말티푸나 몰티즈같이 아주 작은 아이들은 기쁨이가 한 번 휘몰아치면 그 반동에 비틀하거나 뒤로 발라당 자빠지기도 하였는데, 한 번은 보호자 한 분이 갑자기 기쁨이를 내쫓으면서 자기 애를 괴롭힌다고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기쁨이는 그저 좋아서 혼자 뛰고 있었던 것뿐이지만..) 그래도 타인이 느끼기에는 위협을 준다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 우리는 바로 죄송하다고 정중히 사과를 했다. 한데 그 이후로 새로운 친구가 운동장에 들어올 때마다 그 보호자는 계속 우리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친구는 애가 공격하니까 놀지 마세욧] 하니 우리는 왠지 어이가 없었다. 놀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던 기쁨이도 뭔가 이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잔뜩 풀이 죽어서 혼자 구석만 맴맴 돌고 우두커니 있었다. 이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힐 찰나에, 평소에 화가 나도 절대로 표현을 아끼는 우리 남편이 정말 큰 목소리로 [기쁨아! 이렇게 강아지들 놀게 할 줄 모르고 품에만 끼고 있는 곳에선 놀지 말자!!] 하면서 목줄을 채우고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 엥? 갑자기?"


기쁨이를 꼭 품에 안고서 걸어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김이 날 것만 같았다. 한참을 말이 없이 걷던 남편은 운전대를 잡고서도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는지 [우리 애가 얼마나 이쁜데! 마음 여려서 친구들한테는 한 번을 짓지도 않는 애인데 무슨 문제 있는 애처럼. 우리 애를!!] 잔뜩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웃음이 터졌다. 아지를 데려오기 전, 본인이 데려오자고 나를 설득시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강아지는 강아지인 거야!] 했던 사람이 정말 완연한 애아빠의 표정으로 속상해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기 때문이다. 그날 남편은 기쁨이가 우울해한다며 한참을 꼭 안았지만 내 생각에는 본인이 더 속상해서 그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이 날 남편도 분명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기쁨이의 아빠가 되어버렸음을!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확실히 육아와 비슷하다. 물론 정말 아이 육아와 비교하면 아주 수월하겠지만, 어쨌거나 자식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프면 곁에서 자리를 지키며 상태를 살펴보게 되고,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를 위해 보호자들이 나서기도 하고, 매일 건강한 식사를 위해서 채소를 다지고 또 다진다. 친구랑 놀다가 다치기라도 하는 날이 가장 속상한 날인데, 한 번은 기쁨이가 다른 강아지와 달리기를 하다가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항문 쪽을 긁혔다. 피를 똑똑 흘리면서 낑낑 걸어가는 기쁨이의 모습에 우리 둘이 얼마나 놀랐던지. 남편은 그때 자기가 목 줄을 놓지 말 것을.. 하며 거듭 후회했다. 그 이후로 우리 아이에게 맞는 친구인지 아닌지를 아주 멀찍이서부터 곁눈질로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회나 미술관 가기, 단골 레스토랑을 찾는 것에 제약이 걸리기 때문에 기쁨이가 온 이후로 미술관을 간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모처럼 남편과 둘이서만 데이트를 할 때면 우리 둘 다 머릿속으로는 [기쁨이도 이런 곳 좋아할 텐데][지금 기쁨이 슬슬 쉬가 마려울 텐데][강아지 되는 줄 알았으면 그냥 같이 올 걸]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난다. 결론은 그냥 강아지 안 된다는 곳은 안 가고 차라리 기쁨이랑 동네를 뛰어다니는 편이 더 낫다에 도달하는 것이다. 날씨가 아주 화창한 가을이나 봄이면 우리의 네이버지도는 온통 별로 가득하다. 별표시 중에는 남들이 보기엔 허허벌판인 곳들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기쁨이와 뛰놀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올 가을에는 캠핑이 예고되어 있다. 어서 이 무더위가 가시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래도록 뛰어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기쁨아. 너 덕분에 엄마아빠는 이제껏 몰랐던 보호자, 부모의 감정을 배워나가고 있단다. 너를 돌봐주는 존재는 우리지만, 우리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가고 또 성장시키는 것은 바로 네가 아닐까 싶어. 늘 고맙다! 우리 똥강아지!

keyword
이전 11화양해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