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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세아르 pasear Nov 01. 2020

석회질 수돗물로 끓인 라면에 관한 추억

다시 아바나

오전 11시 사람들과 쿠바 국립 미술관을 갔다.

기대하지 않았던 미술관이 생각보다 훌륭했던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오랜 시간 관람에 집중하는 일행들을 보면서 역시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은 동일하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으로는 오비스포 거리에 있는 돈까스 파르페와 고로케를 먹은 후에 광장으로 이동했다.

광장 앞 수제 맥주집에서 입가심을 하고 있는데, 테이블 건너편 며칠째 같은 스카프를 매고 다니는 한국 남자를 또 보았다.

조만간 우리랑 합석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은 며칠 후 구체화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날엔 라면이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일행 중 한 명의 숙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동안 꽁꽁 숨겨 놓았던 자신들의 소중한 라면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신라면 2개, 오뚜기라면 2개, 모로코 라면 2개

라면이 한 개씩 개봉될 때마다 온갖 탄성을 질러대며 다시없을 라면 파티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결국 석회질이 풍부한 수돗물에 라면 6개를 풀고 양껏 준비한 밥까지 말아먹었다.      


가끔 한국에서 쿠바가 그리운 순간이 있다.

굵지 않은 차분한 빗소리를 들을 때,

라면의 스프냄새가 코끝을 자극시킬 때,

적당히 차오른 습도와 차분한 온도가 적절히 배합된 어느 날...

내 몸의 오감이 벌써부터 아바나의 아파트 2층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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