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하늘색이 저녁 빛으로 변하면 연주가 시작되지
part 1
“ 아줌마, 아줌마는 왜 아기를 안 낳아요? ”
“ 안 낳는 게 아니고, 아직 아기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은 거야. 우리는 아기를 기다리고 있어. “
“ 그래서 해피를 키우는 거예요. 아기 대신? ”
“ 아기 대신이 아니라 해피는 그냥 해피야. 해피는 우리 가족이니까 같이 사는 거지.
해피랑 있으면 너무 행복하거든. 함께 있으면 좋으니까.
우리 언니 개 뽀삐가 낳은 강아지가 해피인데 새끼 때부터 우리가 키웠어.
우리는 모든 시간들을 함께 했지. 추억도 많이 만들었고, 마음을 주고, 정을 쏟고
해피가 나이가 들어 아파도, 예쁘거나 귀엽지 않아도 해피는 해피야.
내가 나인 것처럼, 주성 씨가 언제나 주성 씨인 것처럼 말이야.
그래도 해피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세상을 떠날 때 해피랑 셋이 함께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꿈이겠지? "
“ 아줌마, 해피가 그렇게 좋아요? ”
“ 그럼 ”
“ 강아지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다고 하던데요? ”
“ 보통 개들이 15년 내외로 살아.
강아지의 수명을 사람과 비교해보면 사람의 일주일이 강아지에겐 하루래. ”
“ 그래요? ”
“ 하루가 정말 길겠지? 그래서 개들은 그렇게 감정에 충실하면서 사나 봐.
개는 사람을 정말 사랑하잖아.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사람이 착각하는 게 사람들은 개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개는 자기와 함께 사는 사람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데.
그래서 낯선 사람을 보면 사납게 짖고 으르렁 거리는 거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개처럼 평생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지키려는 존재가 있을까? 없을걸? 개가 사람보다 나아. “
“ 정말 그러네요. ”
“ 그렇지? ”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오지 않아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
나는 아줌마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하고 싶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모두에게 당연하지만 누구에겐 당연하지 못한 것이 있다.
내게 아빠가 그러니까 아줌마랑 나는 뭔가 통할 것 같았다.
“ 아줌마는 왜 나무랑 꽃들을 키우는 거예요? ”
“ 나무나 꽃은 봄부터 겨울까지 끊임없이 준다. 좋지? “
“ 뭘 주는데요? ”
“ 봄에는 귀엽고 보드라운 새순과 새싹을 보여주고, 여름에는 싱그럽고 짙은 나뭇잎과 화려한 꽃
가을에는 맛있는 열매와 과일, 씨앗, 겨울에는 다시 봄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주지.
식물은 한 없이 자기 것을 내어 주고 나를 감탄하게 만들어. 그건 사람이 줄 수 없는 거야. “
식물들을 키우고 가꾸다 보면 왠지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 같고, 나도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줘.
“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나도 봉숭아를 키울 때 그렇거든요. “
“ 그렇지? 계절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과 나무를 키우면 즐거움을 사계절 내내 누릴 수 있어.
너도 봉숭아 말고 다양하게 식물들을 키워 봐. 너희 집에도 나무가 있으면 좋을 텐데. “
“ 원래 우리 집에도 나무가 있었데요. 엄마가 세를 주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내고 방을 만들었데요.
돈을 모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
“ 그렇구나. 하긴 너희 집엔 아이가 네 명이나 있으니 돈이 많이 필요했을 거야.
나무가 꽃이 보고 싶으면, 해피랑 놀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
대문은 항상 열려있으니까 “
아줌마는 사람보다 동물과 식물을 더 좋아한다.
동물과 식물이 사람보다 더 좋다고, 더 나은 존재라고도 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소중하다는 말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정성을 쏟으면 그것은 나에게 특별한 것이 된다는 말
괜찮은 내가 돼간다는 말
아줌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분꽃 씨앗만큼 알 것 같다.
우리 동네 저녁 해는 해피 아줌마의 집으로 퇴근한다.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온 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우리 동네 파수꾼 해피 아줌마
별명처럼 해피 아줌마는 항상 해피하게 웃고 있다.
해피 아줌마 이름은 항상 웃어서 해피가 아니라 아줌마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해피다.
해피 아줌마, 뽀삐 아줌마는 친자매
뽀삐와 해피는 모녀관계
두 아줌마는 이름 대신 강아지 이름으로 불리고 자매와 강아지 모녀는 한 집에서 다정하게 산다.
해피 아줌마랑 친해진 건 올봄의 일이다.
저녁 하늘이 보라색,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
그 날의 기분대로 색깔 옷을 갈아입을 때쯤 이면
온 동네에 피리 소리가 저녁노을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늘색과 피리는 낭만적이면서 서로 잘 어울렸다.
언덕에서 피리 연주가 시작되면 아래 동네 사람들은 꼼짝없이 들어야만 했지만
다행히 연주는 썩 훌륭해서 누구 하나 듣기 싫다고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듣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오후 5시가 되면 전국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 같은
해 질 무렵의 우리 동네 시그널이었다.
옥상에 돗자리를 피고 작은 밥상에서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파란 낮 하늘이 저녁 색으로 변하고 피리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피리를 연주하는 남자에 대한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 피리 소리가 들릴 시간이 됐는데, 피리를 부는 사람은 분명 잘생기고 멋진 오빠일 거야.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일 것 같은데. ‘ 고개를 쭉 빼고 윗동네를 올려다봤다.
피리 소리는 천천히 아래 동네로 내려와 공평하게 모두의 집 지붕과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동네 사람들 모두 의식하지 못했지만 피리 소리가 시작되면
사람들의 말 수가 적어지고,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누워 창 밖이나 하늘을 봤다.
피리 소리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쉬게 만들어 우리를 순하고 착하게 만들었다.
나는 저녁마다 피리를 부는 오빠의 얼굴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항상 피리 소리는 2~30분 정도만 연주되었고
연주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서 나는 윗동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소리가 멈추기 전에 얼른 찾아야 해. 피리를 연주하는 오빠의 얼굴을 한 번만 보자. ‘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뛰어올라 숨이 차면서도
골목을 마주하는 모든 집들의 대문과 벽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피리 소리의 시작점을 찾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 한 번에 찾을 수는 없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피리 소리가 시작되는 집을 드디어 알아냈다.
언덕 맨 꼭대기 대문 밖으로 대추나무, 감나무 가지가 나온 연두색 대문 집이다.
‘ 여기 누가 살지? ’
언덕 위쪽은 아는 사람이 없어 연두색 대문에 살고 있는 사람을 잘 모른다.
초인종을 눌러 누가 피리를 부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 안나 아줌마, 언덕 위 감나무랑 대추나무 있는 연두색 집에 누가 살아요? ”
“ 계단 위 연두색 대문 집? ”
“ 네, 언덕 맨 위 계단이랑 가까운 집이요? ”
“ 해피네 집 같은데? ”
“ 해피요? ”
“ 애기 이름이 해피예요? ”
“ 아니, 그 집은 애가 없어. 젊은 부부랑 그 언니가 살지. 그 집에 개들이 많아.
뽀삐랑 해피가 그 자매가 키우는 개 이름이야. 그 집에 나무들이랑 꽃들도 많아. “
“ 저녁에 피리 소리가 그 집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
“ 그래? 저녁마다 들리는 피리 소리가 거기서 시작되는구나. 피리를 누가 불지? ”
피리를 누가 부는지 궁금한 나는 해피 아줌마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열린 대문 틈으로 하얀 털을 가진 개가 쌩하니 달려 나왔다.
“ 해피야, 안 돼. 나가면 안 돼. 언니, 잡아. 빨리 해피 잡아. ”
안쪽에서 들리는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
‘ 나가면 안 된다고? 방금 그 개가 해피인가? ’
나도 해피를 잡으려고 달려갔다. 젊은 아줌마가 뛰어나오며 ' 해피야, 해피야 ' 이름을 부른다.
우리 둘은 해피를 잡기 시작했다.
누구냐는 질문도 고맙다는 인사도 나눌 틈도 없다.
해피가 계단을 내려가서 도로 쪽으로 나가면 개들은 차에 치여 죽기 십상이다.
도로로 나온 개들이 차에 치어 죽는 것을 여러 번 본 나는 하얀 털의 해피가 차에 치는 것을 보기 싫었다.
“ 그 개 좀 잡아주세요. ”
아줌마와 나는 달려가며 해피를 잡아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침 앞에서 걸어오던 아저씨가 해피를 잡았다.
아저씨에게 잡힌 해피는 언제 도망쳤냐는 듯 아저씨 품에 얌전히 안겨있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큰 일 날 뻔했어요.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아줌마는 아저씨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아줌마 옆에서 함께 걸었다.
“ 고마워. 꼬마야, 근데 너 왜 얘를 잡으려고 뛴 거야? “
“ 언덕 위 공원에 가는 길이었는데 대문 밖으로 강아지가 뛰어나오는 걸 봐서요.
도로로 개가 나오면 차에 치일 수도 있고, 차에 치이면 개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잡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
“ 착하다. 너. 너, 우리 동네 살아? ”
“ 네, 저 계단 아래쪽 아래에 살아요. ”
“ 그렇구나. 왜 혼자 놀이터에 가? 지금 이 시간에? 유치원에 갈 시간인데. “
“ 전 유치원 안 다녀요. ”
“ 왜? 유치원에 안 다녀도 안 심심해? 친구들이 없으면 심심할 텐데. ”
“ 엄마도 집에 계시고, 책 보고, 놀이터 가고, 옥상에서 식물 기르고
동네 할머니랑 아기들이 있는 아줌마 네도 놀러 다니면 금방 시간이 가요. “
“ 그래? 너 대게 특이하다. 너 우리 집에 놀러 갈래? “
“ 네 ”
“ 그래, 우리 해피를 구해줬으니까 아줌마가 시원한 주스 한잔 대접해야지. “
우리는 연두색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 잡았네. 해피. 해피야, 새끼들을 이렇게 두고 도망가면 어떻게 해?
애기들 젖도 먹여야 하는데. 근데 넌 누구니? “
“ 응, 언니, 우리 해피 잡는데 도와준 꼬마야. 아랫동네 산데. 꼬마야, 이리 와. 앉아.
너 이름이 뭐야? “
” 저 민현아 라고 해요. “
“ 그래? 현아, 자 이거 마셔라. ”
나랑 같이 해피를 잡은 아줌마가 해피 아줌마다.
주스를 마시고 마당을 둘러보니 종류가 다양한 나무와 식물이 한가득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벽돌과 나무로 화단을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 아줌마, 나무랑 꽃들이 정말 많네요. ”
“ 응, 넌 무슨 꽃 좋아해? ”
“ 저는 봉숭아를 좋아해요. ”
“ 그래? 나도 좋아해. 봉숭아. 꽃이라면 다 좋아.
우리 공통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어쩐지 얘기가 잘 통할 것 같다. 그렇지? “
“ 네 ” 나는 아줌마를 보면서 씩 웃었다.
“ 아줌마, 저녁마다 아줌마 집에서 누가 피리를 불어요? ”
“ 응?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
“ 초저녁이면 피리 소리가 시작되잖아요. 궁금했어요. 누가 피리를 부는지?
연주되는 곡도 너무 좋아서 듣기도 좋고요. “
“ 그래? 듣기 좋아? ” 갑자기 아줌마가 웃기 시작했다.
“ 우리 남편이 들으면 좋아하겠다. 우리 남편이야. 피리를 부는 사람 “
“ 네? 아저씨라고요? ”
“ 응, 우리 남편. 우리 남편이 언덕에 있는 동사무소에 일하고 있거든
매일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렇게 피리를 분다. 시끄럽다고, 동네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아무리 말려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불어댄다.
공무원이라 그런지 모든 게 참 정확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방향으로 서서 피리를 불기 시작해.
주말은 안 된데. 자기도 쉬고, 사람들도 쉬어야 한다고
다들 자기 피리 연주를 좋아할 거라나? 우리 남편 말이 맞았네.
모두들 자기 연주를 좋아할 거라고 하더니. “
“ 아무도 듣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래 동네에서 피리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은데요? “
“ 그래? 우리 남편 정말 좋아하겠다. 아저씨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네 말 꼭 전해줄게.
내일 5시 넘어서 한 번 와. 아저씨도 널 보면 좋아하겠다. “
“ 네 ”
다음 날 5시가 넘어
“ 아줌마, 저 왔어요. ” 열린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뽀삐랑 해피가 쌩하니 내 옆으로 달려온다.
“ 해피야, 뽀삐야 ~ ”
“ 현아 왔네. 여보, 얘가 현아야. ”
아줌마가 옆에 서 있는 키 큰 남자에게 물을 건네며 말한다.
“ 안녕, 네가 현아구나. 어제 네 얘기 들었어.
우리 해피 탈출을 네가 막아냈다고 들었다. 고마워. 귀엽게 생겼네. 현아. “
해피 아줌마 남편이다. 키는 175 센티 정도에 마른 체격에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파이고, 착하고 선해 보인다. 아저씨가 검은색 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 잠깐, 나 먼저 연주 좀 하고. 시간이 다 됐으니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
“ 어? 이거 피리가 아닌데. 이게 뭐지? “
“ 응, 이건 피리가 아니고 팬플룻이라고 하는 거야.
소리가 피리보다 훨씬 부드럽고 더 멀리 전달되지. 자 들어봐. “
해피 아저씨의 팬 플롯 연주가 시작되었다.
‘ 그래, 맞아. 이 소리야. 아저씨가 피리를 연주하는 사람이었구나. ‘
피리를 연주하는 사람은 고등학생, 대학생 오빠도 아니었지만
언덕을 내려다보며 팬플룻을 부는 아저씨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옆에 있던 뽀삐 아줌마가 나를 보고 호탕하게 웃으면 말한다.
“ 하하하~ 얘 봐라. 제부한테 반했나 본데. 애가 아주 넋을 잃고 바라보네. “
“ 아저씨, 너무 멋있어요. 정말 멋있어요. ”
내가 큰 소리로 말하자 연주를 마친 아저씨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 정말? ”
“ 네, 정말 정말 너무너무 멋있어요.
동네 사람들 모두 아저씨 연주가 시작되면 일하는 걸 멈춰요.
누가 멈추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멈추게 돼요.
일 하다가도 갑자기 의자에 앉아 연주를 듣게 돼요.
연주가 시작되면 온 동네가 조용해져요. 모두들 듣고 있는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아저씨는 저녁마다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고 있는 거예요. “
“ 현아야, 너 정말 말을 예쁘게 한다. 네 말을 들으니 힘이 솟아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데
왜 우리 현주가 너를 좋아하는지 이제 알겠다.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휴식을 선물하고
너는 내게 기쁨을 주는구나. 이거 정말 남는 장사인데. 내가 수지맞았네. “
그 날 이후 나는 해피 아줌마네 집으로 매일 출근을 시작했다.
“ 아줌마, 저 왔어요. ”
연두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 귀를 기울인다.
우리 동네 할머니 목소리가 아니다. 누군가를 혼내는 듯 목청이 크고, 걸걸하면서 사납다.
“ 네가 주성이를 놔줘야 해.
못 헤어지겠으면 밖에서 아들을 낳아 오라고 애 속 편하게 네 입으로 말을 하던가.
가뜩이나 심성이 착하고 여린 앤 데 네가 질질 짜고 붙잡고 늘어지니 걔가 헤어질 수가 있니?
주성이 성격에 밖에서 애를 낳을 수가 있겠어? 못한다는 걸 너도 알잖아?
7년 넘게 애가 안 생긴다는 건 네가 애를 못 낳는다는 소리야.
주성이 아빠랑 주위 친척 분들
이제 주성이가 재혼을 하거나 후처를 보던가, 아님 밖에서라도 애를 봐야 한다고 난리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제를 지내는 데
모일 때마다 내가 어른들한테 들볶여서 말라죽을 지경이야.
우리 주성이는 장손인데 대를 이어야 나도 죽어서 조상님 볼 면목이 있지. “
“ 어머님, 저는 주성 씨한테 헤어지자고 여러 번 말을 했어요.
저도 너무 힘들어요. 저는 괜찮으니 밖에서 아들을 낳아오라는 말도 했고요.
저보다 주성 씨가 더 완고해요. 우리 둘이서만 행복하면 된다고 말이에요. “
“ 그러니까 걔 성격이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길에 모르는 개가 비를 맞고 돌아다니면 집으로 안고 들어오던 앤 데
우리 주성이가 너를 버릴 수 있겠니?
네가 알아서 떠나든가, 아니면 애를 낳아올 상황을 만들라고. 주성이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지 말고.
내 말을 못 알아들어? 아님 모르는 척하는 거야?
왜 내가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니? 이렇게 사람을 못되게 만들어야겠어? “
해피 아줌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저 할머니는 누군데 저런 말을 아줌마한테 하는 거야? 아줌마 속상하게
아무래도 이상해. 왜 자꾸 아줌마랑 아저씨랑 헤어지라고 하는 거야? ‘
방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 데리고 가세요. 아드님 데려가시라고요. 몇 번이나 현주가 이혼하자고 했어요.
그럴 때마다 사정하고 비는 사람이 댁의 아드님이라고요.
우리 현주도 아쉬울 것 없으니 이제 제발 그만 찾아오시고 주성이 데리고 가세요.
애가 안 생기는 게 우리 현주 탓인지 아님 주성이 때문인지 어떻게 알아요? “
“ 사돈, 말 막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주성이가 왜 애를 못 낳아요?
말만 헤어지자고 하고, 그 착한 애 눈 앞에 알짱거리면 우리 아들이 어떻게 헤어질 수가 있겠어요?
자기가 알아서 사라져 줘야지. 반듯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주성이야 공무원이라 이 동네를 떠날 수 없지만 너는 여길 떠나는 건 어렵지 않잖아?
우리 주성이가 벌어오는 돈으로 개나 키우고 속 편히 살면서 “
“ 사돈어른, 이 집도 우리 돈으로 샀고, 현주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사는 거예요.
말단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아드님 월급이 정확히 알고나 그런 말씀 하시는 거예요?
주성이가 현주 덕분에 편히 사는 거예요. “
어느새 싸움은 낯선 아줌마 아니 할머니와 뽀삐 아줌마 이 파전이다.
‘ 저 할머니 아저씨 엄마인가 보네. 안 되겠다. 아저씨 불러와야지. ’
나는 쌩하니 동사무소로 달려갔다. 아저씨는 점심을 먹으려고 막 나오던 찰나다.
“ 아저씨, 아저씨 엄마가 찾아왔어요. 아저씨 엄마가 아줌마한테 막 이상한 소리를 해요.
아줌마 언니랑도 큰 소리로 싸워요. “
“ 뭐? ”
아저씨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다.
골목 사이사이 지름길을 알고 해피처럼 날쌔게 달려간다.
아저씨가 집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집으로 들어갔지만 담벼락 모퉁이에 서 있어
아무도 내가 들어왔는지 모른다.
“ 어머니, 가세요. 저랑 가세요. 여기서 이 사람한테 이러지 마시고 “
“ 주성아, 내가 오늘은 작정하고 내려온 거야.
네 아버지랑 큰 아버지랑 작은 아버지들한테 하두 들 볶여서 내가 못살겠다.
오늘은 너나 쟤한테 약조를 받아오라고 아버지가 시킨 거야.
너희 둘 갈라서라. 이제 그만 얘랑 헤어져. 나도 얘한테 모진 소리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
넌 혼자 몸이 아니야. 우리 집안 대를 이어야 한다고 “
“ 어머니, 저는 이 사람이랑 못 헤어져요.
어떻게 헤어져요? 애가 없다고 헤어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애가 안 생기는 건 제 탓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려요. “
“ 그런 말 하지 마. 왜 네가 이상이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해 보자고. 정말 네가 아이를 못 낳는 건지. 확인을 해 보자고.
후처를 보던가. 아님 애만 낳아주는 여자한테 한번 가보자고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이 어미 소원이다. “
“ 어머니,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후처가 웬 말이고 씨받이가 뭐예요? 내가 정말 부끄러워서 “
“ 주성아, 우리 현주랑 갈라서라. 더는 못 보겠어.
너희 어머니 찾아오셔서 우리 현주 속 뒤집는 꼴 더는 못 봐.
이 집도 우리 돈으로 산 집이고, 나랑 우리 현주는 여기 살 테니
넌 너희 고향으로 내려가든, 다른 동네로 전출을 가든. 그건 너나 너네 집이 알아서 하고
우릴 그만 내버려 둬. 너도 이제 그만 너희 어머니 시키는 데로 하고 살아.
포기하실 양반이 아니시다. 너희 어머니 “ 뽀삐 아줌마 목소리다.
“ 어머니 가세요. 제발 가세요. 자꾸 이러시면 저 그냥 콱~ 죽어버릴 거예요.
이 사람 괴롭히면, 다시 이 사람 찾아와서 엄한 소리 하면
그 길로 나가서 한강에 빠져 죽어 버릴 거예요.
전 없는 아들, 죽은 아들로 치세요.
양자를 들이시던 밖에서 아들을 하나 낳으시던 상관 없어요.
우리 둘이 살게 제발 내버려 두세요. “
“ 너 그게 어미한테 할 소리야? 아휴 내가 속이 터져서. “
‘ 탁탁탁 ’ 할머니가 대문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있다는 걸 모르게 나도 얼른 대문 밖으로 나간다.
“ 주성아, 이제 헤어져라. 우리 현주 맘고생하는 거 더 이상은 못 보겠다.
내가 언제까지 현주를 지켜볼 수도 없고.
현주야, 너도 그만 헤어져. 주성이네 엄마, 이 집안사람들 여기서 물러날 사람들이 아니야.
아들이 중요한 집안인데 아들을 봐야지. 네가 문제든 주성이가 문제든 잘 모르지만
난 네가 이 집안하고 엮이는 거 더 이상 못 보겠어. “
“ 처형, 나는 죽어도 현주랑 못 헤어져요.
현주 너, 저번처럼 사라지면 나랑 헤어지려고 하면
나 죽는 꼴 보는 거야. 난 죽어도 못 헤어져. 왜 우리가 헤어져?
애가 없어도 상관없어. 우리 둘이서 살면 되는 거지. “
“ 알았어. 주성 씨, 나 어디 안 가니까 얼른 일하러 가. 지금 점심시간이지?
밥 차려 줄 테니까 후딱 먹고 가. 배고프겠어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도착해야지. “
‘ 해피 아줌마 속도 좋다. 지금 아저씨 밥을 차려준다고?
왜 할머니들은 저렇게 아들 타령이지?
우리 할머니도 고모들도 가끔 와서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함부로 말하는데
자기도 여자면서 왜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고 하지?
아들이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여자가 뭐 어떻다고? ’
“ 현주야, 나 그냥 갈게. 밥 못 먹겠어. “
“ 어머님 찾아오신 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
“ 현아가 동사무소로 뛰어 왔어. 어머님 오셨다고 ”
“ 그랬구나. 현아야, 이리 나와. 괜찮으니까 나와. “
“ 네 ” 모퉁이에 서 있다 그제야 아줌마 앞으로 나왔다.
“ 고마워. 현아야, 아저씨한테 달려가야 할 것 같았어? “
“ 네, 할머니도 고모들이랑 찾아와서 우리 엄마를 괴롭힐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엄마 옆에 큰 오빠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멈추고 돌아가시거든요.
아까 그 할머니도 아저씨가 오셔야 가실 것 같았어요.
아줌마, 할머니들은 고모들은 왜 그렇게 아들, 아들, 아들 타령을 할까요? “
“ 내 말이 그 말이다. ” 뽀삐 아줌마가 한 숨을 ‘ 툭 ‘ 내뱉는다.
아저씨 얼굴이 벌게졌다.
“ 나, 갈게. 현주야, 엄마 말 신경 쓰지 마. 원래 그러신 분이잖아.
현아야, 고마워. ” 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 아줌마가 현아한테 신세를 졌네. 고마워. ”
해피 아줌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 아줌마는 아들 말고, 현아 같이 야무지고 똘똘한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
“ 네? 아줌마, 아줌마도 아이를 낳고 싶어요? ”
“ 그럼 아저씨를 닮은 아들도 현아를 닮은 딸도 낳고 싶지. 그런데 어쩌겠니? 안 생기는 애를.
우리 둘은 애가 없어도 행복한데. 잘 살 수 있는데 아저씨 부모님들은 친척 분들은 그렇지 않으시니까 ”
더는 할 말이 없다. 아줌마도 뽀삐 아줌마도 속상할 것 같아 이제 그만 집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현아야, 괜찮아. 오늘은 집에 가서 놀아. 아줌마도 오늘은 좀 쉬어야겠어. “
“ 네 ”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왔다. 해피 아줌마를 속상하게 한 할머니도 아저씨도 왠지 미워졌다.
‘ 아들이 뭔 대수라고? 오늘 아줌마랑 샬롬 꽃집에 가서 씨앗이랑 퇴비 사러 가기로 했는데.
아줌마가 속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할머니랑 고모들이 오고 나면 며칠 동안 앓아누우셨는데. ’
갑자기 큰 오빠도 동네 남자아이들도 보기 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