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내가 우리 엄마의 딸이라서

part 2

by 옥상 소설가


다음 날 아침이면 학원에 가던 그 남자는 웬일인지 하루 종일 은주 언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은주 언니, 그 남자 모두 종일 방에만 있었다.

걱정이 된 엄마는 은주 언니 방문을 두들겼다.


“ 은주야, 이리 나와 봐. ”

“ 왜요? 아주머니? ”

“ 물세랑 전기세랑 공과금 나눠서 내야지. 영수증 보고 얘기하자. “

” 아주머니. 나중에요. “

“ 안 돼. 나중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나와.

다음 달에 이사 가야 하는데 계산이 이상하네. 어쩌네. 허튼소리 하지 말고 “

” 네 “ 은주 언니가 조용히 나온다.

“ 은주야, 너 괜찮아? 쟤가 너 때리는 거 아니야? “

“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시 잘 지내기로 했어요. ”

“ 뭐? ”

“ 아기 낳으면, 둘이서 잘 살아보기로 했어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이제 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 너, 괜찮겠어? ”

“ 네 ”

“ 그래, 알았다. 혹시라도 남자애가 허튼 짓하면 소리 지르고 나와. 다들 걱정하고 있으니까 “

“ 네 ”



하루 종일 집 안은 조용했다. 티브이, 라디오, 대화, 각종 소음으로 집은 항상 시끄러웠는데

어제부터 오늘까지 집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것만 같다.

대전 댁 아줌마네, 은동이네, 우리 집

모두 은주 언니 방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나 대전 댁 아줌마네는 은주 언니네 옆 방이라 아저씨가 퇴근 한 이후로는 더더욱 조용했다.


다시 찾아온 새벽

은주 언니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비명을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그저 언니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 웅성웅성 ‘ 모두들 깨어나 있었다.

하지만 울음소리만으로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아침이 되어 마당을 돌아다니는 모두의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근심에 쌓여있다.

모두들 침묵한 채 회사로 학교로 나갔다.

집에는 은주 언니와 그 남자 둘 만 남았다.

선교원에 돌아오니 엄마는 해피 분식이 문을 닫는 날이라 센터에서 일을 보다 조금 늦어진다 했다.

우리 집에는 나와 은주 언니 그 아저씨 셋만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동주네 가 있으라고 전화를 했지만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잘 살펴보니 집에 그 남자는 없는 것 같았다.


“ 현아야, 현아야 ” 은주 언니 방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현아야, 현아야. ”

“ 응? 언니? 언니가 나 부른 거야? ”

“ 응, 현아야. 나 좀 도와줘. “

“ 어? ”


뛰어가서 언니 방문을 열어본다. 그 아저씨는 밖에 나가고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언니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 언니, 괜찮아? ”

“ 현아야, 언니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겠다. ”

“ 병원에? ”

“ 응, 산부인과에 가야겠어. ”

“ 언니, 잠깐만 내가 어른들 좀 불러올게. ”

“ 아니야, 현아야, 나 걸을 수 있으니까 옆에서 손만 좀 잡아줘. ”

“ 알았어. ”


언니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대문을 나서고, 골목길을 지나, 시장 밖으로 나간다.

육교 건너 이백 미터쯤 위로 올라가면 동네에서 가장 큰 청명 산부인과다.

언니는 아무도 몰래 청명 산부인과에 다니고 있었나 보다.


“ 현아야, 언니 손 좀, 손 좀 잡아줘. ”

“ 응 ” 하얗고 기다란 언니의 다섯 손가락이 모두 엄지손가락처럼 부어있다.

“ 언니, 또 잠 못 잤어? ”

“ 응 ”

“ 괜찮아? ”

“ 현아야, 아무래도 난 바보 인가 봐. ”

“ 아니야, 언니, 언니 바보 아니야. 언니가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진데.

우리 엄마가 언니 참 야무지다고 똑순이라고 말했어.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성공할 거라고 돈도 많이 벌고, 시집도 잘 갈 거라고 했어. “

” 정말? 아줌마가 정말 그랬어? “


“ 응, 그 오빠 만나기까지는 엄마가 매일 언니 칭찬만 했어.

지금도 엄마가 언니 아이 가진 걸 알고 얼마나 속상해하고 있는데.

엄마가 언니 몸조리, 아기 키울 방법 주변에 알아보고, 방법을 찾고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 그래? ”

“ 응, 언니, 나도 그 아저씨 마음에 안 드는데 그냥 헤어지면 안 돼?

아기 낳고, 우리 집에서 언니랑 애기랑 둘이서 살면 안 돼? 내가 아기 잘 돌봐 줄게. “

“ 그래? 현아가 우리 아기 태어나면 잘 돌봐줄래? 동생처럼? ”

“ 응, 내가 아기 잘 돌봐줄게. 기저귀도 갈아주고, 분유도 먹여주고나 애기 잘 봐. “

“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언니는 애기랑 둘이서 살아야겠어. “

” 그래 “

“ 계단 올라가는 게 힘드네. 잠깐만 ”


은주 언니는 육교 옆 난간과 내 어깨를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스무 개단쯤 올라갔을까?


“ 악~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 언니는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 언니, 왜 그래? ”

“ 악~ 애기가 나오려는 것 같아. 현아야,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 양수가 터졌어. “

“ 양수? 언니 그게 뭐야? ” 화장실이 급했는지 육교 계단에서 은주 언니는 오줌을 싸며 울기 시작했다.

“ 어떻게 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


나는 언니를 얼른 부축해 계단을 올라갔다.


“ 언니, 얼른 올라가. 얼른 병원에 가자. ”

“ 악~ 어떻게 해? 아가가 나오고 있어. 아가가 나오고 있어. 우리 아가 어쩜 좋아?

엄마!!!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 “


육교를 올라오던 나이 많은 아줌마가 깜짝 놀라더니 언니를 잡는다.


“ 어머, 양수가 터졌나 봐. 내려와요. 내려와. 더 올라가면 안 돼.

내가 택시 잡아줄게. 택시 타고 가. 더 걸으면, 계단을 올라가면 안 돼. “


아줌마는 택시를 잡아 나와 언니를 청명 산부인과에 데려다줬다.


“ 감사합니다. ”

“ 얼른 들어가요. 얼른 ”

“ 현아야. 전화 좀, 전화 좀 해줘. ”


언니가 불러준 번호로 열 번이 넘게 전화를 해도 그 아저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언니, 전화를 안 받아. ”


은주 언니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계속 전화를 해 달라 부탁했다.

나는 병실에 누워있는 언니와 공중전화 사이를 계속 오가고 있었다.



“ 산모 분, 이제 결정하셔야 해요. 애기가 많이 나온 상태예요.

분만을 하신 다음 인큐베이터 안에 넣으실지, 안 넣으실지 결정하세요. “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기 아빠랑 아직 통화를 못 했어요. ”

“ 산모 분, 아기 머리가 탯줄에 다 감겨서 몸이 거의 다 나온 상태로 병원에 도착해서

출산을 한다고 해도 아기가 건강할 확률이 희박해요.

아기에게 장애가 있을 확률이 훨씬 높아요. 세균 감염도 그렇고

아기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인큐베이터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갈 거고. 결정하세요. 힘들겠지만

더 이상 미루시면 산모 분만 힘들어요. “

“ 네, 수술해 주세요. ”


언니는 다 포기한 듯 천장을 바라보다 울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 엄마, 은주 언니랑 나랑 청명 산부인과에 있어. 언니 수술실 들어갔어. “

“ 뭐? 청명 산부인과? 엄마 지금 갈게. “


엄마는 언니가 수술실로 들어간 사이 병원에 도착했다.

데스크에서 간호사로부터 설명을 들은 엄마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아기가 불쌍하긴 하지만 차라리 잘 된 거야. 은주를 생각하면 잘 된 거야.

차라리 잘 된 거야. 다 잘 된 거야.”


잘 된 거라면서, 차라리 잘 된 거라면서

은주 언니가 수술실에서 나올 때까지 엄마는 계속 울어만 댔다.




수술을 마치고 언니는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보호자도 없이 은주 언니는 병원에 혼자 있었다.

엄마와 나만 하루에 한 번씩 언니를 찾아갔고

수술이 끝났어도 언니는 그 남자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어 했고, 혼자 있어야 했던 언니는 마음을 정리해갔다.

매일 새벽 흐느끼며 울던 은주 언니는 더 이상 울지 않고 웃기 시작했다.

엄마도 나도 웃는 언니를 보고 우 리셋은 함께 웃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뒷 채 언니 방으로 들어가지 말고, 작은 언니와 내가 쓰던 방에 있으라고 했다.

뒷 채는 해가 들지 않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고

쥐 죽은 듯 조용해 언니가 괜찮은지 알 수 없다고, 몸조리를 하고 나서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언니가 있어야 한다고

은주 언니가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고

사람들이 언니를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소고기, 닭고기, 홍합, 새우, 조개, 매일 새로운 재료를 넣어 미역국을 끓이고

곰국을 한 솥 끓여 놓았다. 대전 댁 아줌마는 불고기, 삼계탕

은동이 할머니는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내 방으로 들여보냈다.


“ 애 낳은 거나 마찬가지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어야 한다.

여름이라고 찬바람 쐬고, 아이스크림이나 찬 음식 먹거나 마시면 안 된다.

산후조리를 잘해야 나중에 안 아프다. “


언니가 내 방에 있는 동안 깐돌이와 쭈쭈바 섭취 금지령이 나에게 내려졌다.

아이스크림은 집 밖에서만 먹을 수 있어. 먹고 싶어 지면 동주를 불러내 밖에서만 먹어야 했다.

은주 언니는 계속 잠만 잤다.

그동안 밀린 잠을 한꺼번에 몰아서 자는 듯 자고, 자고, 자고 또 잠만 잤다.

자고 일어나서는 먹고, 먹고 나서 자고, 잠을 자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잠만 잤다.


“ 엄마, 언니 왜 이렇게 자? 아픈 거 아냐? ”

“ 자야 나아. 언니는 많이 자야 한다. 잘 자야 생각도 밝아지고 또렷해진다.

은주가 이제 좀 나아지나 보다. “


언니는 살이 오르고, 볼도 불그스레해졌다.

표정도 밝아지고,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면서 우리랑 같이 웃기도 했다.

언니가 그 남자에게 수술했단 사실을 알린 건 일주일쯤 뒤였다.

열흘 정도 통화가 안 되다 언니가 전화를 해서 수술 사실을 알리니

그 남자는 바로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 우리 방으로 가자. ”

“ 안 돼, 은주는 여기에 있을 거야. 방에 혼자 있으면 안 돼. “

“ 제가 옆에 계속 있을 거예요. ”

“ 오빠, 이제 그만 가줘. 나 여기 있을 거야. 여기가 편해. ”

“ 은주야, 편하게 쉬어야 하니까 우리 방으로 가자. ”

“ 아니, 이제 우리 방은 없어. 내 방만 있지.

이제 더 이상 찾아오지 마. 오빠랑 나는 끝났어.

아기가 죽은 날 오빠랑 나를 연결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으니까

더 이상 미련도 희망도 없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마. “

“ 무슨 소리야? 나는 못 헤어져. ”

“ 그건 오빠 마음이니까 어쩔 수 없고, 난 헤어졌으니까 되돌릴 마음 없으니까.

그건 알아서 해. 나는 이제 마음 정리 다 했어. 이미 다 끝났어. 이제 그만 가줄래? “


그 남자는 계속 언니 옆에 있으려고 했다.


“ 학생, 그만 가라. 은주가 학생이랑 헤어지고 싶다잖아.

학생은 이제 우리 집에 다시 은주를 찾아오지 마. “

“ 아주머니가 무슨 상관이에요? 은주 엄마도 아니면서? “

“ 그럼 학생은? 학생은 무슨 상관이지? 이제 더 이상 애 아빠도 아닌데? “

“ 나는 은주 남자 친구라고요. ”

“ 방금 얘기 들었잖아? 은주 입에서. 더 이상 남자 친구도 애인도 아니라고

남자 친구가, 애인이 자기 애 밴 여자를 일주일 씩 열흘 씩 밤에 잠도 안 재우고 괴롭혀?

때리기도 하고? 은주가 잠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아기가 유산된 거야.

칠 개월이면 다 키운 거나 마찬가진데 그 아까운 걸. 그렇게 죽이다니

엄마 몸이 약해지고 더 버티질 못해서 애기가 나온 거라고

학생 이제 그만해. 더 이상 은주 괴롭히면 학생은 사람도 아니야. 다시는 찾아오지 마.

찾아와도 문 열어주지 않을 거니까. 소용없을 거야. “


그 남자는 갑자기 은주 언니 팔목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다.


“ 가자. 은주야, 나랑 같이 가자. ”

“ 놔, 놔, 놓으라고. 이제 다 끝났다고, 너랑은 끝이라고

아줌마, 경찰 불러주세요. 경찰에 전화해주세요. “


집에는 엄마, 나, 은주 언니, 대전 댁 아줌마, 은동이 할머니. 모두 여자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나는 마루로 뛰어가 신고를 했다. 경찰이 오기 전 남자는 언니를 데려가려고 했다.

언니가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엄마, 아줌마, 할머니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놔, 놔, 그 손 놓으라고 ”

“ 도와주세요. 집에 강도가 들었어요. “


우리 집에서 나는 여자들의 고함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우리 집으로 다들 들어왔다.

비번이라 집에 있던 경화 아저씨, 골목을 지나던 안나 아저씨, 가게에 있던 지물포 할아버지,

배달 갔다 돌아오던 쌀 집 아저씨 모두들 우리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 무슨 일이야? 어디야? 어디 강도가 있어? 어딨어? 어딨어? “

“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아가씬데, 이 남자가 아픈 애를 억지로 데리고 가려고 해요.

헤어지자고 하는데도 억지로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해요. “

“ 뭐야? 이 사람? 사내자식이 여자가 싫다고 하는데 나가. 얼른 나가라고 “

“ 은주는 내 여자 친군데 다들 무슨 상관이에요? ”

“ 애를 벤 여자 친구를 때리고 욕하고 잠도 안 재워서 애를 유산하게 만드냐?

그러고도 네가 애인이냐? 아니 사람이냐? “


엄마 말을 들은 아저씨들이 흥분을 해서 날뛰기 시작한다.

그 남자는 이제야 슬슬 당황하고 겁을 먹기 시작한다.


“ 이거, 좋은 말로 해서 안 되겠네. 나가, 나가 이 새끼야.

다시는 이 집에 우리 동네에 들어오지 마. 한 번만 더 눈에 띄어봐.

경찰이고 뭐고 오기도 전에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이 집에 들어와서 여자들 괴롭히면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내가 내 후배들 다 부르고, 걔네들 시켜서 너 잡아서 요절을 낼 거야. “

유도 선수였던 안나 아저씨가 수탉처럼 상체를 한껏 부풀리며 말한다.

“ 내가 우리 동네 통장인데 니 사진 찾아서 반상회 때 니 얼굴 사진 동네 사람들한테 싹 다 돌릴 거야.

동네 사람들이 니 얼굴 다 알아보게.

우리 동네 사람들이 너 보면 경찰에 신고 전화할 거야.

너, 다시 우리 동네 발도 못 부쳐.

우리 동네 사람들 내 말이라면 통장 말이라면 시키는 데로 다 한다. “


지물포 할아버지가 통장이라는 타이틀로 그 남자를 협박한다.

남자는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쳐 집 밖으로 나갔다.


“ 고마워요. 마침 집에 남자들이 없었는데 ”


엄마가 아저씨들에게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했다.


“ 뭘요? 깜짝 놀라서 들어왔네. ”

“ 아가씨, 편히 쉬어요. 그놈 다시는 안 올 거야. ”

“ 다시 왔단 봐라. 아주 작살을 낼 거야. 그놈 다시 오면 전화를 하던가 해요. 내 다시 올 테니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은주 언니는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저씨들은 이제 괜찮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고 쉬라고 은주 언니를 안심시키고 난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이 찾아오고, 엄마는 상황을 얘기하고 돌려보냈다.

은주 언니가 놀랬을 거라며 엄마는 청심환을 먹이고 따듯한 물을 먹여 다시 재웠다.

언니는 또다시 잠이 들었다.


“ 엄마, 아저씨들 참 착하다. 용기도 있고. “

“ 그럼, 우리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착한데 그래서 엄마가 이사를 안 간 거야.

시골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찾기 힘들어.

우리가 이번에 신세를 졌으니 다음엔 우리도 사람들을 도와야지. “


엄마가 이사를 안 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아빠 없이 우리 사 남매를 키워야 하는 엄마에게 아빠를 대신해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사람은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있어 우리 사 남매는 무럭무럭 자라고, 안심하고 편안히 살 수 있었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엄마는 이 백 포기 넘게 김장을 했다.

동네 아줌마들, 할머니들 모두 우리 집 마당 수돗가에 모여 왁자지껄 김장을 했다.

우리 집이 김장을 하는 날은 동네 잔칫날이었다.

돼지고기 수 십 근을 사서 곰 솥에 삶아 수육으로 만든 뒤 김장을 마치고 사람들과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돌아가는 사람들의 손에 김장김치와 수육을 인심 좋게 들려 보냈다.

추석이나 설이면 엄마는 나와 함께 돼지 정육점에 가서

계란 한 판, 신문지에 돌돌 감긴 돼지고기, 명절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는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찾아다녔다.


겨울이면 그 집에 백 장씩, 이 백장씩 연탄을 배달시키고

나를 시켜 수시로 할머니 할아버지 집엘 찾아가 그분들이 무사히 잘 계시는지 확인을 했다.

엄마는 그렇게 동네 사람들과 살아갔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 내 이름을 알고, 나를 알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

내가 아무 대문이나 열고 들어가도 밥을 주고, 얘기를 나누고, 나와 놀아준 것

모두 내가 예쁘고 똑똑해서 그런 줄 알았다.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 것은, 나를 보살펴 준 것은, 내가 우리 엄마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과 살아왔던 엄마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 엄마, 우리 절대로 이사 가지 말자.

아빠가 올 때까지 여기서 우리 동네에서 아줌마랑 아저씨들이랑 같이 살자. “

“ 그럼, 엄마는 이사 안가. 걱정하지 마.

너는 잘 자고, 잘 먹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면 되는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

“ 응, 엄마 ”


은주 언니는 다음 날 뒷 채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수시로 언니 방에 들려 밥을 챙겼다.

대전 댁 아줌마도, 은동이 할머니도 언니 방문을 수시로 두들겼다.

그 남자는 다시는 언니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우리 동네에 들어오지 못했다.

손 기술이 좋은 은주 언니는 엄마를 따라 센터에 다니며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파마와 커트를 배운 은주 언니는 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미용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봉사를 다니던 언니에게 새 남자 친구가 생겼다. 같은 미용을 하는 남자라고 했다.

언니는 새로 사귄 남자 친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마침 복날이라 삼계탕을 사람들과 먹기로 한 우리 집 마당에는 돗자리가 깔아졌고,

사람들 모두는 은주 언니 새 남자 친구를 유심히 살펴봤다.


“ 은주 부모님이 시골에 계시다고

혼자 산다고 은주한테 함부로 하면 우리 동네 사람들이 혼내준다.

은주는 우리 여동생이랑 같으니까 거기가 우리 은주한테 잘해야 하는 거야.

바람 피거나 은주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우리 동네 발도 못 붙여. 알았지? “


“ 아~ 네, 알겠습니다. 은주한테 잘하겠습니다. “


난데없는 협박에 당황하면서도 그 아저씨는 삼계탕을 다 비웠다.

이번 아저씨는 착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엄마는 안심했다.


“ 아줌마, 고마워요. ”

“ 그래, 은주야,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갈 때까지 우리 집에서 살아. 내가 괜찮은 놈으로 골라줄게 ”

“ 아니요, 시집가서도 여기에서 살래요. ”


우리는 마당을 비질하며 물을 끼얹었다.

언니의 마음에 묵은 상처와 아픔도 씻겨 나가길 빌며 마당을 깨끗이 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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