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새파란 하늘에 두꺼운 구름이 무더기로 있던 오후
엄마가 센터로 양장 수업을 들으러 갔다.
내일이 자격증 시험일이라고, 오늘은 꼭 가야 한다고 우리가 먹을 햄버거를 잔뜩 만들어포일로 싸놓은 뒤
센터로 가셨다.
재영 오빠는 곧 있을 합기도 심사를 준비하기 위해 도장으로 아침 일찍 갔다.
언니들이랑 오빠 나는 햄버거를 먹고, 티브이에서 토요명화가 재방송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 빰빰빰 빰빠빠 빰빰빰 빰빠~~~~ ”
넷이서 모두 시그널 음악을 따라 입모양을 만들고 소리를 만들다마주 보며웃는다.
토요명화의 오픈 시그널은 항상심장을두근두근하게만든다.
‘ 저 황금빛 트로피는 진짜 황금일까?
어떤 영화가 저 트로피를 받을까?
저 상을 받는 여배우는 누굴까? ‘
빛을 반짝이며 서 있는 사람 모양 트로피는 볼 때 마다나를궁금하게 만든다.
' 남잔가? 여잔가? 옷을 입은거야? 벗은 거야?'
나는 새우깡, 언니들은 양파깡, 오빠는 버터 코코넛
각자의 취향대로 과자를 골라 안방 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다.
과자가 더는 먹기 싫어진 나는 노란 고무줄로 입구를 돌돌 묶어 얌전히 바구니 안에 넣어 둔다.
두터운 목화솜 요에 등을 댄다. 언제나 목화솜 요는 푹신하다.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두툼하고 아늑하다.
스르르 졸음이 밀려온다.
구름이 하늘을 밀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졸음이 영화를 밀고 나를 차지하려 한다.
‘ 안 되는데 영화 봐야 하는 데, 내가 좋아하는 로마의 휴일인데. 그거 봐야 하는 데.
어~ 이상하다. 내 몸이 이상하다. '
눈을 비비려고 해도, 낮잠을 자지 않으려면 세수를 해야 하는 데 일어나기는커녕
손을 움직이지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발도 발가락도 목을 돌리지도 못하겠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 언니, 이상해. 내 몸이 이상해. ‘
목소리가 입안에서만돌뿐밖으로 나오지는 못한다. 깜깜하다. 까마득하다.
‘ 이게 뭐지? ’ 하면서 나는 그렇게 잠이 들고 말았다.
갑자기 주위가 시원하다.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다.
긴 숨이 가슴 깊은 곳에서 푹 나온다. 머리가 맑아진다.
꽁꽁 묶어놓은 매듭이 사라락 풀리듯 내 의식이 사악~풀리고제 자리로돌아왔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목 고개, 손가락 몇 개, 혀. 오직 그것들 뿐이다.
“ 현아야, 현아야, 이제 일어났어? 나쁜 꿈 꿨어? 아니면 무서운 꿈 꿨어?
왜 갑자기 큰 오빠를 발로 차? 그러니까 오빠한테 혼나지? 이제 괜찮아? “
“ 언니,내가 오빠를 발로 찼어? ”
“ 그래,네가 갑자기 오빠를 발로 세게 차대서 오빠가 화 났잖아.
내가 얼른 너 업고 마당으로 나온 거야. 이제 다 깬 거지? “
“ 언니, 아직도 이상해. 내 몸이 아직도 이상해...... ”
언니 귀에만 들릴 수 있게 작은 소리만 내뱉는다.
‘스르륵~ ’ 세워놓은 쌀자루가 땅바닥으로 엎어지는 것 마냥, 큰 언니가 땅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업혀있던 나를 바닥에 내려놓지도 못하고 ‘ 털썩 ’ 둔탁한 소리만 내고
‘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마당으로 아직 물기가 흥건한 땅바닥에 쓰러졌다.
“ 언니, 언니, 언니 일어나. 일어나 ”
큰 오빠와 작은 언니를 불러야 한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움직여야 한다. 안방으로 가야 한다. 안방으로 가려면 높은 턱을 내려가 부엌을 거쳐 가든가
마루를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둘 다 할 수 없다. 안방은흉가처럼음산한 기운이 돈다.
무서운 생각에 겁이 덜컥 난다. 안방에서 토요명화 소리만 나오고
큰 오빠, 작은언니의 기척도 말소리도아무것도 없다.
분명 큰 언니가 넘어지는 묵직한 소리를 들었을 텐데
나오지않는다면 큰 오빠도 작은 언니도 모두정신을잃었다는 소리다.
대문으로 가야 한다. 어떻게든 대문으로 기어가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야 모두를 살릴 수 있다.
무거운고개를간신히 쳐들고 땅바닥을 기어간다.
뱀이 온몸의 비늘을 일으켜바닥을 s자로 기어가듯. 온몸의 힘을 배로 모아마당을 밀어낸다.
손바닥으로 몸을 지탱해 대문으로 기어간다.
울음이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입속에서 지렁이 같은 소리만 나올 뿐이다.
“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우리 언니 좀 도와주세요. 우리 오빠랑 작은 언니 좀 살려주세요. ”
내 귀에만 들릴 뿐 내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한다.
마침 경화네 대문은 열려있고, 우리 집 대문도 열려있다. 경화가 동생들이랑 노는 소리가 들린다.
“ 경화야, 경화야, 여길 봐. 나를 봐. 우리 집을 좀 봐. ”
수돗가에서 아줌마가 배추를 다듬는지 삭삭삭~ 칼 소리도다 들리는데.
개미들의 발자국소리도 다들을 수있는 데
정작 들어야 할 내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하고 있다.
원망스럽다. 경화네도 원망스럽고, 센터로 교육을 간 엄마도 원망스럽고,
도장에서 아직 오지 않는 재영 오빠도 원망스럽고, 사우디로 돈 벌러 간 아빠도 원망스럽다.
토요일 외출을 나간 셋방 식구들도 원망스럽고, 골목을 지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매일 골목에서 놀다 오늘만 나오지 않은 아이들도,
맨날 나를 보면 사납게 짖어대던 경식이네 개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이 다 원망스럽다.
“ 도와주세요, 우리 큰 언니 좀 살려주세요. 우리 언니 좀 도와주세요. ”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목구멍 속에서피가 나올 듯 소리를 질러대도 쇳소리만나올 뿐.
내절규는목구멍 속에서만,입가에서만 맴돌았다.
하나님도 밉다.
만약 이렇게 우리 언니가, 모두가 죽게 된다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다.
선교원도 주일 예배도 다 안 갈 거다.
우리 큰 언니가 이대로 마당에서 죽어버리면, 나를 업고 나온 우리 큰 언니가 죽는다면
우리 큰 오빠랑 작은 언니가 안방에서 그대로 죽어 버린다면
하나님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파란 하늘을 보며 나오지않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눈물만흘리며하늘을 죽도록 노려보았다.
“ 현아야, 현아야 , 현아 왜 그러니? 현아야, 정신 차려. 정신 차려. 현아야.
여보, 엄마, 경화야 빨리 나와. 현아 엄마, 현아 엄마. “
토요일이라 택시 영업을 일찍 마치고돌아오는경화 아저씨가 대문에 반쯤 걸쳐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업고 마루로 눕혔다. 마당에 쓰러져 있는 큰 언니도 내 옆에 눕힌다.
“ 영아야, 영아야. 얘도 연탄가스 마셨네. 영아야, 정신 차려.
여보, 빨리 나와. 빨리 119에 전화해. 빨리 전화해. “
아저씨가 소리 소리를 질렀다. 말 없던 아저씨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은 몰랐다.
“ 현아 엄마, 어디 갔어? 현아 엄마, 현아 엄마 “
“ 아이! 이게 웬일이야? 현아야, 현아야. 정신 차려. 영아야, 영아야, 영아야 일어나라. 정신 차려라. “
아줌마와 할머니 모두 슬리퍼를 신고 뛰어나왔다.
경화도 동생들도 놀라 튀어나와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 경화 엄마, 빨리 119에 전화해. 엄마, 현아랑 영아 빨리 바지 벗겨.
경화야, 바가지에 물 떠 와서 얼굴에 얼른 끼얹고, 너네는 빨리 언니랑 현아 다리랑 팔 주물러 “
“ 아저씨, 아저씨, 우리 오빠랑 우리 작은 언니 안방에 있어요. 다 안방에 있어요. “
내가 작게 말하자 아저씨는 귀를 내 입에 붙이고듣더니구두도 벗지 않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 중아야, 주아야! 중아야, 주아야! 얘들아 정신 차려. 일어나! ”
아저씨는 오빠와 작은 언니를 차례차례 업고 나왔다.
“ 현아 엄마, 현아 엄마,이정신나간여편네, 현아 엄마 어디 갔어?
애 새끼들은 연탄가스 마시고, 지금 죽을 둥 살 똥 하고 있는데 이 여편네 어디 갔어? “
할머니가 그 상황에서도 엄마 욕을 하며 내 바지를 벗긴다.
할머니의욕지거리가듣기 좋다. 아무리 욕을 해도 듣기 좋고,기분도 좋다.
“ 경화야, 슈퍼 사서 얼른 사이다 사와. ”
경화가 할머니가 준 돈을 들고 슈퍼로 뛰어간다.
경화가 슈퍼로 달려가는 것을 본 후, 큰 오빠와 작은 언니가 모두 마당으로 나온 후
내 옆에 큰 언니 작은 언니 큰 오빠 모두 누웠다. 모두를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파란 하늘이 천천히 평화롭게 움직인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된다. 이제는 잠을 자도 된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