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모두들 안녕

part 2

by 옥상 소설가

밤새 고민하던 엄마는 다음 날 저녁을 먹고 할 얘기가 있다고 모두 앉으라고 했다.

엄마는 중아 오빠를 데리고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해서 이 집을 팔아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집을 팔아서라도 미국에 오빠를 데리고 가라고 했고, 사우디에서 돈을 더 벌겠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엄마와 오빠가 미국에 있는 동안 우리를 돌 볼 사람이 없어

우리 모두 친할머니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모들 집에 가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오빠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다.


“ 엄마, 우리 걱정은 말고 미국으로 오빠를 데리고 가. 가서 오빠 치료받고 다 낫고선 와요. ”

“ 미안해. 얘들아 ”

“ 아니야, 엄마 내가 동생들 잘 돌보고 있을 게 걱정하지 마. ”

“ 영아야, 미안해. 엄마가 너한테 또 큰 짐을 맡기고 가야 하네. ”

“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리 집에 짐이 어딨어? 다 내 동생들인데

내가 엄마 대신해서 얘네들 잘 데리고 있을 게.

할머니랑 고모들이 전처럼 대하지는 않겠지, 우리가 이렇게 컸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들 울리거나 속상하게 하는 일 없도록 할 게. 내가 책임질게. “


큰 언니 말처럼 우리는 참아야 한다. 오빠만 나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모두 엄마에게 미국에 다녀오라고, 큰 언니 말 잘 듣고 있을 테니 중아 오빠만 생각하라고 했다.

엄마는 큰 언니를 안고 울었다. 엄마가 울자 우리 모두 울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이 집과 동네를 떠날 생각을 하니 슬펐다.

동주가 나를 아무리 웃겨도 웃음이 나지 않았다.

우리 동네 사람들, 친구들 모두를 떠날 생각을 하니 온 몸의 힘이 빠지는 것 같다.


엄마가 복덕방에 가서 집을 내놓자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대전 댁 아줌마, 은동이 할머니 모두들 엄마에게 와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 형님, 이게 왠 일이래유? 집을 판다구유? ”

“ 응, 우리 중아 데리고 미국에 가려고. 미국에 유능한 의사가 있단다.

그 의사가 우리 중아를 고칠 수 있데. 가야지. 우리 중아 낫게 하려면. “

“ 그럼 우덜은 어떻게 한 대유? 우리두 다 이 집에서 나가야 하는 거여유? “

“ 모두들 계약기간까지 살게 하는 조건으로 집을 팔겠다고 했어. 조건에 맞는 사람을 구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살아. “
” 것도 거지만, 섭섭해서 워떻게 산대유? 성님이랑 중아 미국에 가면 애들은 워쩐데유? “

“ 애들은 고모네나 할머니 집에 가 있어야지. 내가 올 때까지. ”

“ 옴마~ 그 사람들한테 애덜을 어떻게 보내유? 애들 겁나게 고생 할 텐데.

그 사람들이 워디 보통 사람들이에유? 안돼요. 안 돼. 애들 거가면 맘고생, 몸고생 엄청 할 꺼에유. “

“ 어쩌겠어? 그래도 좀 참아야지. ”



우리가 집을 내놨다는 소문이

엄마가 중아 오빠를 데리고 미국에 간다는 소문이 온 동네로 퍼졌다.

모두들 우리 집으로 와서 정말 이사를 가는 거냐고 물었다.

동주는 우리 집에 와서 정말 이사를 가는 거냐고? 가지 말라고 마당에서 계속 울다가

동주 아저씨가 와서 데리고 갔다.

경화, 민정이, 훈이 오빠. 호달이, 두영이 모두들 나를 볼 때마다 가지 말라고 매달렸다.

그래도 가야 한다. 우리 중아 오빠가 나을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가야 한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내셨다. 이사를 가는 건 슬프지만 오빠가 낫는 것은 기쁜 일이니까.

그래도 한 번씩 너무 슬플 때는 아무도 몰래 옥상에 가서 달을 보고 한 참을 울다 내려왔다.




“ 언니, 서울에 왔어요? 택시 타고 와요. 터미널에서 금방이야. 얼른 와요. 내가 길에 나가 있을게. “

“ 엄마, 누구야? 누가 오는 데? ”

“ 응, 대구 아줌마가 온데. ”

“ 대구 아줌마? 와! 엄마, 나도 같이 가. ”

“ 아냐, 현아야, 너는 오빠 보고 있어. 엄마 금방 다녀올게. ”

“ 현아야! ”

“ 아줌마, 안녕하세요. ”

“ 아이고, 우리 현아 많이 컸네. ”

“ 네, 얼른 들어오세요. ”

“ 그래, 자 이거 받아. 네 선물이야. ”

“ 네, 감사합니다. ”

“ 중아야, 안녕 ”

“ 네, 아줌마 안녕하세요. 우리 집에 오셔서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

“ 그래, 고마워. 중아야,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


오빠는 아줌마를 기억하는 건지, 아줌마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고, 아줌마도 오빠를 한 참 동안 쓰다듬었다.

대구 아줌마를 서울에서, 우리 집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아줌마는 서울에 온 건 정말 오랜만이라 변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아줌마는 오늘 하루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대구로 간다고 했다.

엄마는 며칠 더 있으라고 했지만 아줌마는 일이 있어서 우리 집에 온 거라고 했다.

엄마와 아줌마는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언니 오빠들 얘기들을 했다.

낮잠 잘 시간이라 졸린 오빠는 엄마에게 방에 가서 재워 달라고 징징거렸다.


“ 언니, 잠깐만 우리 중아 재우고 올게. ”

“ 그래 ”


건너 방에서 오빠를 재우는 엄마 목소리와 자장가가 들리자 아줌마는 눈사람이 된 것 같았다.

수 초간 아줌마는 정지되어 있다 두 눈이 지렁이처럼 가늘어지며 붉어지더니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아줌마가 방바닥에 엎드려 흑흑흑~소리를 냈다.

오빠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대문을 잠그고

태산 같은 오빠를 끌어안고 울 때의 엄마처럼 아줌마는 서럽게 울었다.

대구 아줌마가 우는 것은 처음 봤다. 아이든 어른이든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프다.

나는 어찌할지 몰라 방으로 돌아온 엄마를 봤고, 엄마는 아줌마의 등을 다독여줬다.

아줌마를 위로하면서 엄마도 눈물을 흘렸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도 울었다.

우리 셋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 밖에 없었다.

셋이 함께 있어서, 같이 울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꿈속에서 향미 언니를 만나는 동안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아줌마가 좋아하는 갈비찜과 잡채를 저녁상에 올렸다.

식구들 모두 모여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다 방으로 돌아갔다.

중아 오빠는 일찍 잠이 들었고, 나는 엄마랑 대구 아줌마랑 같이 자기로 했다.

나는 가만히 누워 엄마와 아줌마의 말을 들었다.


“ 금희야, 그래서 미국에 가려고? ”
“ 가야죠. 우리 중아 고치러 ”

“ 중아 아빠랑 의논은 다 한 거지? ”

“ 응, 다 했어. 일단 중아 먼저 고치고, 그다음 생각하기로 했어요. ”

“ 그래, 잘했다. 자식이 먼저지. ”

“ 금희야, 사실은 내가 서울에 온 건 민욱이가 부탁한 게 있어서 온 거야.

민욱이, 우리 민욱이가 죽었어. 알고 있었니? 혹시 민욱이한테 연락은 없었니? “

“ 네? 민욱 오빠가 죽었다고요? 언제요? ”

“ 가을에 그렇게 됐어. 민욱이가 나한테 말을 안 했었어. 아프다는 걸 말이야.

갈 때가 다 돼서야 말했어. 내가 어찌나 놀랐는지.

나한테 고맙다고 하더라. 자기를 잘 돌봐줘서 고맙다고. ”


“ 나한테는 그때 오빠랑 둘이 부산에 갔을 때 얘기했었어요. 아프다고 말이에요. ”

“ 그랬구나. 그래도 다행이야. 민욱이가 가기 전에 널 봐서 말이야.

걔가 그렇게 널 보고 싶어 했었는데. 마지막에 우리 민욱이 소원은 풀고 갔네.

네가 서울에 간 후 민욱이가 네 얘기를 참 많이 했어.

민욱이가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어. 우리 민욱이 정말 행복해하는 것 같더라.

너랑 연애할 때처럼 생기가 돌고, 자주 웃고, 네 얘기를 할 때마다 볼이 발그레해졌어.

스무 살 민욱이처럼 말이야.

금희야, 우리 민욱이는 널 만나고 나서 너만 좋아하고, 사랑하고 너만 보고 싶어 했다.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 있니? 나는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어.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도 안 했지.

그런데 딱 한 명, 민욱이가 그런 사람이더라.


네가 웃으면 같이 웃고

네가 울면 같이 울고

네가 아프면 자기가 더 아프고 말이야.


민욱이는 너를 여동생처럼 아끼고 분신처럼 생각했지.

' 금희랑 결혼을 했으면 현아가 내 딸이 되었을까? ' 현아를 그리워하기도 했어.

민욱이가 너희 모녀를 많이 사랑했어.

가장 아프고 힘들 때 네가 찾아와 주어서 우리 민욱이가 견딜 수 있었어.

행복하게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죽기 전에 민욱이가 부탁하더라.

자기는 이제 할 수가 없으니까 나보고 너를 잘 돌봐주라고 말이야.

네가 잘 사는지, 네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지켜봐 달래.

민욱이가 너한테 남긴 게 있어. 그걸 전해주려고 온 거야. 너랑 현아한테 “

“ 네? 오빠 가요? ”

“ 응, 이건 네 거고, 이건 현아 꺼야. ”


아줌마는 일어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 민욱이가 떠나면서 재산을 너한테 남겼어. 아마 이 돈 이면 이 집을 팔지 않아도 될 거야.

너희 아이들 시어머니나 고모들에게 맡기지 말아. 내가 내일 대구 내려가서 정리하고 올게.

너 중아 데리고 미국 가서 치료받고 있는 동안 내가 너희 아이들 돌봐주고 있을 테니

중아 치료 잘 받고 돌아와. 마음 편하게 “

“ 언니, 나는 못 받아요.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받아요? 염치도 없지.

나는 죽어도 못 받아요. 나는 절대 못 받아요. “

“ 금희야, 민욱이를 생각해.

민욱이가, 하늘에 있는 민욱이가 너나 너희 애들 고생하며 사는 걸 바라겠니?

그걸 보고 걔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을까?

아니야, 그렇게 못 하니까 민욱이가 나한테 너희를 부탁하고 세상을 떠난 거지.

너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더 이상 자기는 그럴 수 없으니 나한테 유언을 남겼겠지.

중아 얘기를 듣자마자 민욱이 생각나더라.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민욱이가 나한테 당부를 한 건가? 많이 놀랐어.

너랑 민욱이 인연은 정말 깊은 것 같아. 시간이 흐르고 죽어서도 끊어지지가 않네.

금희야, 나중에 우리 민욱이 다시 만나면 그때 민욱이한테 잘해줘.

민욱이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줘. 그 애가 너한테 그랬던 것처럼

그땐 너도 민욱이도 둘이서 행복하게 살아. 이건 내 부탁이야. “


엄마랑 아줌마는 밤새 아저씨 얘기를 했다.

해맑고 순진했던 어린아이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했던 사춘기 소년

한 여자를 사랑했던 청년

그 여자가 떠난 뒤 그리워했던 한 남자

아줌마는 아저씨의 모든 시간들을 기억해 말해주었다.


나는 나비가 생각났다.

알에서 유충, 애벌레, 번데기 마침내 나비가 되어 나는 것처럼

아저씨는 죽은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가볍고 자유롭게 저 하늘로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이제 아저씨는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이다.

아저씨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고

보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볼 수 있고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은 울다가 웃으며 아저씨 얘기를 했다.

아저씨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에 엄마가 있었다고

엄마 역시 자신의 삶에서 아저씨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다고 했다.

그 시절이 그립다고, 꿈같다고도 했다.

아저씨는 행복할 것 같았다.

누군가 밤 새 내 얘기를 하면서 울다가 웃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기억한다는 것이니까.

혼자가 아니니까

나도 아저씨가 그저 보고 싶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밤새 슬픔과 아쉬움을 털어낸 아줌마와 엄마는 아침 새처럼 종종거리며 종달거렸다.

경쾌하고 맑은 지저귐으로 부엌과 마루를 오갔다.

더 이상 엄마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를 대신해서 대구 아줌마 엄마 옆에 있어 주어서

마지막까지 엄마를 부탁한 아저씨는 엄마를 정말 걱정하고,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두 모여 아침을 먹고, 인사를 나눈 뒤 아줌마는 대구로 출발했다.


“ 안녕히 가세요. ”

“ 그래,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아줌마, 금방 다시 올게. ”


모두들 학교로 가고, 나, 오빠, 엄마 이렇게 셋 만 집에 남았다.

오빠는 티브이를 보고, 나는 오빠를 보고, 엄마는 집을 치우고 있었다.


“ 엄마, 나 오늘 선교원에 안 가고 싶은데 ”

“ 그래, 오늘은 가지 마. 안 가도 돼. ”

“ 엄마, 대구 아줌마 다시 오는 거지? ”

“ 응, 엄마랑 오빠가 미국에서 치료받을 동안 아줌마가 서울에 올라와서 너희들을 돌봐주실 거야.

이따 저녁에 엄마가 언니랑 오빠한테 다 얘기할게.

이 집을 팔지 않을 거니까 이사 갈 필요도 없고

대구 아줌마가 너희들을 돌봐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거야. ”

“ 다행이다. 이사 안 가서, 이 집에 계속 살게 돼서. ”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 내게 연보라색 편지 봉투를 주었다.


“ 현아야, 이거 받아. 이거 대구 아저씨가 너한테 주신 거래.

대구 아저씨 돌아가셨어. 가을에 ”

“ 알아. 어젯밤에 엄마랑 아줌마랑 얘기하는 거 듣고 알았어.

나 지금 안 읽어도 되지? 나중에 읽고 싶은데. ”

“ 그래, 너 보고 싶을 때 봐. ”


나 혼자 있을 때 읽고 싶었다. 우리 둘이서만 만나고 싶었다.

읽지 않아도 편지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 모두들 자고 없을 때 읽어야 했다.

오빠를 재우러 엄마가 오빠 방으로 간 사이

나는 옥상에 올라갔다. 주머니에서 아저씨가 쓴 편지를 꺼냈다.

연 보라색 편지 봉투에 연 보라색 편지지

꾹꾹 눌러쓴 아저씨의 예쁜 글씨



보고 싶은 현아에게


현아야, 안녕


너는 지금 서울에 선교원에 있겠구나.

아저씨는 지금 병원에 있어.

전에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서 병원에 있어.


현아야

너는 아카시아가 활짝 핀 봄 대구에 왔던 걸 기억하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니?


아저씨는 다 기억하고 있어.


엄마가 아팠던 밤 처음 본 나를 경계하던 너

시장에 가서 밍키 가방을 받고 좋아서 방방 뛰던 너

돈가스랑 파르페를 맛있게 먹으며 기뻐하던 너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꼭 기억하라고 했던 너

터미널에서 나를 꼭 안아주던 현아 너를 말이야.


너를 만난 후의 모든 일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해.

날씨, 풍경, 소리, 냄새, 맛

너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잊을 수가 없어.

내 기억력에 감사하기는 학창 시절 이후 오래 오래간만이야.

네가 대구에 와서 내 옆에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했어.


지금도 그 기억들로 나는 행복해.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현아야.


현아야

지금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야 해.

아저씨가 하늘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을 게.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한 참 후에 우리가 만나면

아저씨가 너한테 달려갈 테니

그때 다시 한번 나를 안아줘.


고마워, 현아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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