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아닌 실제 아빠를 처음 만난 것은 김포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이었어요.
아빠가 내게 준 장난감을 가지고 택시 뒷자리에서 놀고 있었지요.
사우디에서 돌아온 아빠는 선물을 잔뜩 가지고 왔어요.
몇 년 만에 집에 돌아온 아빠 역시 얼마나 설레었을까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식들은 죽순처럼 자라 있고
하늘을 향해 솟은 키와 늘어난 몸무게만큼 자신에 대한 고마움도
알아주길 기대했겠죠.
한국에 돌아왔을 아빠의 나이가 사십 대 초반이더라고요.
지금의 나보다 어린 마흔한, 두 살이었지 싶어요.
나보다 어렸을 아빠
그때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아픕니다.
최신 전자제품, 나를 위해 산 다양한 장난감
사막에서 가지고 온 신기한 돌, 낙타 인형,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모형
지금은 갖고 있지 않지만 온갖 이국적인 물건들이 가득했죠.
낯설었어요. 아빠가 나를 보고 웃고 말을 건넨 기억은 나지만
낯설고 수줍어서 대답도 잘하지 못하고 그저 장난감만 만지작 거렸어요.
그 후에도 아빠랑은 말도 별로 없었고, 친하지도 않았어요.
필요한 말만 했죠.
부모 자식 간이라도 정이 붙어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쳤고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아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살갑고 애교가 많은 성격도 아니에요.
아빠가 사우디에 있는 동안 엄마는 혼자 1남 3녀를 키웠어요.
시어머니와 고모들 삼촌들 엄청난 시집살이를 견뎌내며 살았죠.
친정 식구들 중에도 기댈 사람이 없어서 엄마는 참 외로웠을 것 같아요.
그나마 자식들이 있어서 정을 붙이고 살았을 거예요.
오빠와 언니들은 나이 터울이 많이 져서 학교와 학원에 다니고
엄마는 센터에 다니느라 나는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어요.
선교원에는 비교적 늦게 들어갔고, 그 전에는 책을 읽고, 구연동화 테이프를 듣고, 라디오를 듣고
우리 집에 세를 들어 사시는 어른들이 많이 돌봐주셨어요.
대전댁 아줌마, 은동이네, 욱이네, 경애 아줌마. 해피 아줌마
경화네, 은실이네, 은주 언니, 과일, 야채 할머니
시장 안, 밖의 사람들. 계단 위 아랫사람들
모두 실존 인물들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경화랑은 중학교도 같이 다녔고 커서는 친하게도 지냈죠.
지금도 기억나는 어른들의 얼굴들, 말투, 표정, 감정, 사건 사고와 이야기들
어린 나였지만 그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해주셨어요.
우리들은 아이 어른 구분하지 않고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사고가 나서, 병, 노환으로 사람들이 죽었어요.
얼마 전까지도 함께 살았던 어른들이 돌아가셨고, 장례를 집에서 치러 관이 나가는 것도 본 적이 있어요.
사람이 죽어 관에 담겨 대문 밖으로 나간다는 것
어제까지 본 사람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충격이었고, 죽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했어요.
생명의 탄생도 많이 봤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이 걸리고 3,7일이 지나면 아기를 구경하러 갔고
그런 나에게 어른들은 대문을 열어줬어요.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놀라운 존재
사람이 태어났을 때 이렇게 작았다가 점점 커져 어른이 되는 것이 신기했어요.
동생이 없어서인지 동네 아기들과 꼬마들을 잘 돌봐줬어요.
생명의 탄생과 죽음
그 둘은 분리가 아닌 한 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들을 보고 자랐죠.
단독 주택이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가정의 대소사들이 그대로 노출되었어요.
직장과 고향이 어디고, 애가 몇이고, 부부 사이가 좋고, 나쁘고, 고부사이가 어떤지, 아이들이 속을 썩이는지
원하든 원치 않든 각 가정의 삶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어요.
숨길 수가 없어서 차라리 편했고, 솔직했으며 서로에게 위로하고 위로받았던 것 같아요.
' 척하며 사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그게 더 편할까요? '
우리 집에는 월세를 준 집들이 있어 2년마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어요.
신혼부부, 고시생, 처녀. 총각, 아이를 키우는 집. 조손가정, 재혼가정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주인집 막내딸이었던 나를 귀여워해 줬고
동네 이웃들도 잘 보살펴줬던 것 같아요.
어른들의 세계와 얼굴만큼이나 제 각각인 삶의 모습들을 많이 봤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야기가 있어 한 권의 책이라는 것
한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경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엄마는 막내인 나를 데리고 친구 집이나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가곤 했는데
어린 내가 자는 줄 알고 그분들과 밤새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러면서 엄마의 어린 시절과 처녀 적 얘기를 많이 듣게 됐어요.
엄마를 엄마가 아닌 아이, 소녀, 처녀, 여자로 보게 됐어요.
엄마의 첫사랑인 민욱 아저씨는 극화했지만
실제로는 고향에 살던 분이셨는데 평생을 혼자 사셨데요.
엄마가 가끔 친정집에 내려가면 엄마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일하고 있는 부엌으로 찾아와
" ~~ 야, 너 나랑 살래? 나는 네가 아직도 좋은데. 네 아이들 내가 다 키워줄게. " 말하곤 하셨데요.
저는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슬펐어요.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잊지 못하면 네 명의 아이가 있는 여자에게 지금이라도 같이 살자고 말을 할까?
어쩜 그렇게 순수한 마음과 사랑을 가질 수 있는지, 사람의 마음,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에 나한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 봤어요.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은 역시나 가족이지만 그 외 타인이라면 한 사람만 꼽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 집어 세 들어 살다 나가신 분들
동네에서 나를 엄마와 함께 키워주신 분들
이제 돌아가셨거나 볼 수 없는 분 들이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살아 계세요.
목소리도 생생하고, 함께 보냈던 시간들도 어제 같아요.
나빴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들이 더 많아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그 동네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이라 사라지지 않았어요.
집이 있던 골목, 우리 집 대문 앞에 서서 한 참을 서 있었어요.
옥상도 마당도 대문도 그때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것은 앞집, 뒷집, 옆집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은실이네 식당은 식당이전 플래카드도 붙여 있었죠.
대문을 열고 그때 그 사람들이 웃으며 나올 것도 같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골목에서는 경화, 동주, 호달이,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경화 할머니는 깨끼 한복에 양산을 쓰고 외출하시고
솜틀집 할머닌 다른 데서 놀라고 물을 끼얹으셨어요.
그렇게 서서 한 참을 울었어요.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집을, 이 동네를 잊지 못하겠구나.
여기가 내 고향이구나. ' 깨닫고 집으로 돌아왔죠.
돌아와서 며칠간 울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곧 있으면 내 고향은 사라지겠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아쉬웠어요.
무슨 색 대문 집에 사는 아이
어느 나무가 있는 집
골목 끝 어느 집이 아닌
~ 아파트 ~ 동에 사는 ~ 누구
숫자와 아파트 이름으로 기억되는 사람들과 아이들
편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허전함이 드는 건
그때가 그리워지는 건 나만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다시 어려진 내게 그 시절 그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다면 다시 그 골목에서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어요.
좀 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고맙다. 미안하다 말하면서 참견도 하고 살래요.
주책맞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에요.
한 달 정도 정말 집중해서 쓰고 퇴고하고 정리했네요.
밀렸던 숙제를 하고 나니 개운한 마음
남이 아닌 내가 더 좋았어요. 내 자신이 기특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글을 어떻게 쓰고, 마무리하는지, 퇴고의 중요성 등등 생각이 많았어요.
힘은 들었지만 썩 괜찮은 시간들이었어요.
브런치 북으로 정리하니 5권이 나왔어요.
중간에 정리하고 발행하느라 알람이 울리고 번거로왔을 거예요.
양해해주셔서,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