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송 Sep 02. 2020

나는 왜 당근 마켓이 불편해졌나

말로만 듣던 당근 마켓.
넘쳐나는 아이들 책을 정리해볼까 해서 전집 몇 질을 초 저렴히 올려봤다. 가격 경쟁력도 있거니에 밤이었지만 올리자마자 경쾌하게 "당근~" 하며 울리는 소리. 책 상태는 내가 봐도 좋아서 이걸 이 가격에 사 가는 사람은 진짜 득템 한 거다. 구매자의 입장을 생각해서 책 표지도 깨끗이 닦아가며 박스에 담았다는. 

그 다음날 바로 약속한 오전 시간에 모두 새 주인을 찾아갔다. 게다가 동네분들이라 모두 척하면 척 바로 찾아오시기까지.
이거 재미가 쏠쏠하네. 다들 칼같이 시간을 지켜 가지러 오셨고 고마워하며 매너 거래를 해주셨다. 뒀다가 조카에게 주고도 싶었지만 넘쳐나는 책을 일단은 좀 정리하니 나도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면 새 것인 상태 그대로 고이고이 장 속에서 잠만 자는 물건들을 꺼내볼까? 부피가 큰 것도 있고 깨지기 쉬운 것도 있으니 그냥 원하는 분에게 드려볼까?

좋은 물건 그것도 포장째 새 것을 무료 나눔으로 몇 개 올려봤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당근~ 당근~" 하며 채팅창에 불이 났다. 가장 먼저 연락을 주신 분은 공교롭게도 밤늦게 그것도 밤 11시 이후 혹은 한낮 어중간한 시간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지금이라도 가지러 갈 수 있다는 다른 채팅들이 계속 들어온다. 시간이 애매한 첫 채팅녀에게 양해를 구하자 자기가 가장 먼저 연락한 거 아니냐고 불평을 해 온다. 이게 원래 얼마짜리인데 게다가 무료 나눔인데? 내가 불편을 감수하며 기다리면서까지 줘야 하는 건 아니지 않아?
그 순간에도 계속 들어오는 한 채팅에선 내가 앞 분께 답변하느라 바로 대답이 없자 "여보셔요" 하며 재차 부르면서 자기에게 달라고 몇 번이나 말을 건다. "저 주세요" 마치 자기 물건을 돌려받듯 물결무늬나 웃음 모양 이모티콘도 없이 딱 떨어지는 말투로 재촉하는 문자의 향연에 뭔가 불편하다.
어떤 분은 동네 사람이 아니신지 우리 동네명과 아파트 이름을 말씀드리자 그렇게 말하면 자기는 모른다며 지하철과 버스노선을 알려달라고 시작해서 어디서 어떻게 갈지 버스정류장 이름은 뭔지 등 끊임없이 톡이 온다. 당근 마켓은 동네분들 아니었나? 혹 주변 동네라 잘 모르신다 해도 네이버 길 찾기도 있고 구글맵도 있잖아요. 손가락 몇 번만 눌러보면 될 것을. 전혀 복잡한 위치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지. 최대한 친절히 자세히 답변을 이어갔다.
내가 올렸던 어떤 제품은 누가 봐도 크기를 알 만한 물건이었는데도 한 분은 사이즈를 자세히 자로 재어 보내달란다. 그게 그거인 사이즈이긴 하지만 정 궁금하면 인터넷에 상품명만 검색해도 자세히 나오는 것을.
제품이 아무리 저렴하든 무료이든 새 것이든 사람들에게는 혹시 궁금할 수도 있는 상세 설명을 적어주는 수고는 들여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심지어 설명에 다 써놓은 사항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나 왜 나눔 하며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니..?

물론 매너 있는 분들도 당연히 있었다. 손수 구운 마들렌을 들고 오신 분도 있고 (우리 아이 왈 겉바속촉 최고라고) 손뜨개 수세미, 수제 마스크를 주신 분도 있다. 빈 손으로 오기가 미안하셨는지 준비한 마음의 성의가 고맙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손에 받아 돌아오는 발걸음이 신기하게도 가볍고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내가 안 쓰는 물건인데 주인을 찾아가면 그 물건도 행복하지 않겠어? 물건값을 주실 때에도 얼마 안 되는 돈일지라도 미리 예쁜 봉투에 넣어서 내미는 분께는 내가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아질수록 먹다가 뭔가를 체한 듯 갑갑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자기가 순서로 제일 먼저 아니냐는 분에게는 죄송하다를 연발하며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무료라 오히려 귀한 줄을 모르나? 판매자 아니 나눔인에 대한 배려는 없고 자기 권리만 찾는 모습이라니.
어떤 분은 며칠 후 우리 동네로 오니 그때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대략 시간은 알아야겠기에 오전 오후 중 언제쯤이냐고 물었지만 이틀간 답이 없다. 적어도 대화는 끝내야?? 당일이 되자 그분이 취소를 했다.
또 한 분은 지금 당장 온다고 엄청난 어필을 했고 무료 나눔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뒤늦게 상대의 당근 마켓 프로필을 열어보았는데.. 해당 종류의 물건을 개인적으로 판매하는 일을 하는 분인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동종 물건의 엄청난 판매량(몇백 개)을 가진 분이었다. 혹시 내 물건도 나눔 받아 팔려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에라도 혹시라도 본인의 장사에 이용하려는 분 말고 꼭 필요한 분에게 간 것이었기를 바란다.



드라마틱한 3일간의 비움을 체험해 보고 몇 자 써 본다. 덕분에 공간의 여유를 누릴 법도한데 티도 별로 안 나는 것을 보니 미니멀리즘의 삶에 가까워지려면 아직 갈 길이 태산인가 보다.
당근 마켓은 지역 사람들끼리의 마켓이라 신속하고 편리하다. 직거래로 빠르게 연결된다. 동네 인증까지 되는 것도 바람직하다.

바람 사항이라면 물건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이 되면 좋겠다. 이것은 마켓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먼저 판매자의 물건은 당연히 하자가 없고 쓸만한 물건이어야겠다. 이런 것까지 이 가격에 올리나 싶은 물건은 어차피 안 나간다. 각자 생각하기에 자기가 아닌 누군가에게는 요긴할 만한 물건을 올리도록 하자. 게다가 나눔이 아닌 판매를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사용했던 물건이라고 해도 스스로가 봐도 사고 싶을 만한 것을 올려야 맞다.
구매자는 필요한 것을 저렴히 살 수 있거나 나눔 받음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판매자를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주자. 여기는 백화점도 상점도 아닌데 판매자에게 번거로운 요구를 하거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적은 수고를 할 정도의 마음은 갖자. 게다가 무료 나눔일 경우는 타인의 선의를 같은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꼭 필요한 분이 가져간다면 나눔인은 더없이 기쁠 것 같다. 올릴 물건을 고르는 것부터 직접 거래가 이루어지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 마음이다.
오늘도 마켓에는 끊임없는 업데이트가 올라온다. 당근 마켓이라는 유용한 끈을 통해서 배려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서로 생판 모르는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좋은 선생님의 자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