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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송 Dec 03. 2020

밥이나 먹자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이유가 꼭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산을 찾는 이유가 꼭 정상을 찍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모임에서 밥그릇을 5분 만에 비웠다고 해서 임무를 다했으니 함께 있는 식사자리를 뜬다거나 지인과 동행하는 산행에서 정상 좌표를 찍고 나면 서둘러 내려가야 하지는 않다. 


어떤 목표를 설정한 것에 있어서는 성과를 내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함께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게 된다.


삼림욕장에 들르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나서서 목적지까지 걸어서 도달하긴 했다. "이제 다 들어왔으니 빨리 돌아가자"는 아이의 성화를 보며 생각한다. 삼림욕장의 피톤치드도 물론 좋지만 이 곳을 끝까지 들어오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좋은 곳에 함께 가고 좋은 것을 함께 보고 싶었던 것을.

유학시절 요리 솜씨가 좋은 친구가 너무나 맛있는 식사를 손수 만들어 초대해주었다. 식사시간에 늦은 한 후배가 헐레벌떡 들어오며 이야기한다. 본인이 시간이 빠듯하니 밥을 포장해달라고 말이다. 
그때는 그 후배도 아직 어려서 그랬겠지. 마음이 바빠서 그랬겠지. 초대해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의 귀한 마음은 '끼니 해결' 만이 아님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에 좌표를 찍으려고만 한다. 
스타벅스의 핫한 사은품을 구하기 위해 커피 수십 잔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거나 SNS에 예쁘게 사진을 올리기 위해 친구와의 만남에서 대화는 거의 없이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다가 헤어지는 사람도 있다. 물론 공통의 목표나 관심사가 정상 탈환이라든지 최고의 맛 감별하기 혹은 서로 예쁜 사진 찍어주기라면 아쉬움은 없다. 

삶 속의 여가와 개개인 마음속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식사를 하는 동안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더라도 가족과 지인과 한 자리에서 얼굴을 보고 소소한 일상을 공감한다. 산을 올라가는 숲길을 따라가며 옆 사람과 같은 것을 보고 나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흔히들 나누는 '밥이나 먹자'라는 말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예전에는 먹지도 않을 밥이면서 뭐하러 그런 말을 할까 싶었다. 밥인들 어떻고 차인들 어떠랴. 전화 한 통이어도 좋다. 시간을 함께 나누는 소중함. 우리의 공감과 애정과 추억 같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음 한구석에 조금은 넉넉한 한 켠, 조금은 더 여유롭고 편안한 한 켠을 늘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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