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이 휘몰아질 때, 결국 살아남는다.
비와 바람이 휘몰아질 때, 결국 살아남는다.
내 집 앞마당에는 몇 가지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앞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온지 몇 달째다.
아파트에서 사는 장점도 있지만 층간소음에 대한 대단한 불편함이 있어서 어쩔수 없이 이사를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마음껏 뛸 수 있어서였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요즘 들어 내 마음을 좀 더 편하게 해준다.
넓은 앞마당이 좀 휑한 것 같아서 몇 가지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식물들을 키우면 여전히 죽게 만드는 이상한 능력이 있는 나로서는 식물 키우는 것조차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단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단순한 생각 때문에 무모한 도전인 듯 싶다.
제법 돈도 많이 들었다. 심을 모종도 사야하고, 흙을 팔 수 있는 삽 등도 몇 가지 사야만 했다. 결국 죽을게 뻔하겠지만 오로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이상한 마음 때문에 서스럼 없이 평소 불필요한 것들을 생각한 여러 가지들을 샀다.
뜨거운 햇살 아래, 쉬어야 할 여유로운 주말 동안 토마토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모종들을 앞마당에 가득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참 이상하게도 심는 그날부터 어떻게 자라는지 계속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 좋지 않는 흙 속에서 자라기는 할까? 나약해 보이는 몇 가지 모종들이 흙을 뚫고 밖으로 나오기는 할까?
어느 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혹여나 비로 인하여 이쁜 새끼들이 걲일새라 우산 들고 앞마당으로 가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몇 번인가 모르겠다.
아침에는 배고프지 말라며 넉넉히 물도 주고, 퇴근해서 가장 먼저 들러 얼마나 컸는지 어디 아프지는 않는지 보기 일쑤였다. 진정한 내 아이 먼저 보살피라고 아내가 핀잔을 주지만, 왜 이리 앞마당에 있는 우리 애들 먼저 살펴보게 되는 것일까?
벌써 6월이 지나간다. 그동안 비도 많이 내렸고 강렬한 햇빛이 땅을 보다 메마르게 했다. 그러한 여러 번의 고비가 지난 지금 언제부터인가 열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상추의 키가 한 뼘 이상 올라갔고 작던 고추가 제법 많이 커버렸다. 그리고 방울토마토 열매가 나기 시작하더니 앞마당에 방울방울 방울토가 가득하다.
오늘은 회식이다. 삽겹살은 주변 마트에서 사오고, 맛있는 삽겹살을 살짝 감쌀 상추와 고추 등은 앞마당에서 받아올 예정이다. 제법 많이 따왔다. 따온 것들이 많았는지 우리 아이들이 참 신기하다고 한다.
전날 우리 식구들을 위해 직접 희생해 준 채소들 덕분에 참 넉넉히 식사 때문에 다음날 아침까지 배가 부르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채소를 보러 앞마당을 가게 되었는데 몇일 전 먹었던 상추 등이 어느새 또 자라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에 보지 못했던 바뀐 모습, 그리고 좀 더 당당히 서 있는 그들이 내 눈에 보였다.
처음에는 죽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결국 죽지 않았다. 그저 나만 걱정할 뿐이었지 앞마당에 심어진 그 모든 것들은 살아남았고 결국 승리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 앞에 있는 많은 고비들이 더 커지지 전부터 오히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밤새 내린 비가 비록 힘들게 할지 모르나, 결국 좀 더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주는 것이었음을 비가 그친 후에 알게 되니 참 안타까울 뿐이다.
밤새 휘날리게 만든 바람조차도, 결국 긴장을 늦추지 않고 넘어지지 않도록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좋은 바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에 휘날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몸을 피해버리는 못난 나였음을 느끼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꼭 좋은 일들만 있지 않겠지만 그리고 꼭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좋은 일 나쁜 일이 좀 더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많은 고비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일 이후에도 똑같이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계속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 지친 어느날..
앞마당에서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 채소조차, 여러 가지 고비와 어려움을 감당하며 넉근히 잘 살아있는 것처럼 나 조차 어려움에 대하여 한번 부딪쳐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문 듯 해본다. 채소들 조차 어려움을 영양분으로 받아드리듯이 나 또한 이러한 어려움을 내가 성장하는 기회, 좀 더 다듬어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어차피 어려움은 누구나 오는데 말이다.
그 분의 위대한 섭리가 대단하다. 나는 단지 내 앞에 있는 어려움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나의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하셨던 그 분은 이러한 비바람을 통해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드시려는 위대한 계획에 참 감사하고 놀랍기만 하다.
비를 맞아도 될 법도 한데 왜 나는 비를 그냥 맞기 싫어서 피하고 피하기만 하는 것일까 싶다. 비를 맞아야 깨끗해 질 수 있고 비를 맞아야 내가 좀 더 새롭게 된다는 사실 잊지 말고 또 잊지 말자.
나름 미물의 채소이겠만 비와 바람을 넉넉히 맞으며 성장하려는 하는 채소들을 보면서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좀 더 생각해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랑거리가 독이 되었을 때에
나는 글을 쓰는 전문 작가가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글로 인해 직업을 삼는 사람은 아니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책을 만들게 되었다. 좀 더 글을 쓰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글쓰는 교육 강좌를 듣게 되었고, 강의를 하시는 강사를 통해 책을 발행하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정말 기뻤다. 아니 가문의 영광인지라 내가 있는 곳에서 다양한 분들에게 칭찬을 받곤 했다. 진심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우쭐했떤 것 같고, 나를 인정하지 않거나 싫은 소리를 할 경우 더 많이 섭섭해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또다시 책을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벌써 책 원고를 작성하고 출판사에 넘긴지 1년이 되어간다. 첫 번째 만큼 기대도 큰 만큼 하루빨리 책이 나오기를 바랬다. 처음 책 원고를 작성할 때는 제법 어려워했다. 그런데 두 번째는 한번 책을 써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고 전과 다르게 보다 풍성한 원고인 듯 보였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출판사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도리어 작가로서 나는 출판사를 설득해야 하고, 미안해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그 분들을 설득시키기 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책 나오는 것을 포기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많이 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난 나의 삶을 돌이키게 되었다. 정말 우연히 책이 만들어지고 베스트셀러라고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기 순간부터 나는 많이 변해가고 있었다. 아직 나는 부족한 사람인데도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인냥 생각하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책을 소개하는 과정속에도 나의 자랑이 앞서 있었고, 자랑 속에서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래왔던 것 같다.
주변을 살펴보면 나보다 더 일찍 인생을 걷고 계신 분들을 보게 되면 그리고 진정한 고수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살펴보면 그들은 겸손함이 분명 있었다. 나를 자랑하는 것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일들 가운데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높임을 받았고 남들에게 칭찬도 받았다.
아마도 그들 조차 칭찬 가운데 독이 있음을, 높은자리 맞은편에 낭떠러지가 있음을 알았기에 더 겸손히 살도록 노력하지 않았나 싶다.
자랑과 남들에게 높임받는 것은 한순간인 것 같다. 어찌보면 나의 부족함을 그러한 자랑과 높임 받음을 통해 적게나마 숨기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세상도 남들이 잘 나가는 것에 그리 관심이 없는 것과 나보다 잘 나는 것에 대하여 불편해하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세상이 참 따뜻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나를 위한 삶보다는 나를 만나는 이들을 높이는 것 그리고 존중하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좀 더 깊게 까놓으면 부족하고 너무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연약한 모습을 보게 된다. 어찌보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다른 모습으로 억지로 보여주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있지 않았나 싶다.
마흔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이러한 일들이 수도 없이 발생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자랑속에, 높임속에 꽁꽁 숨겨져 있는 독을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사실 아직 부족한 나에 대하여 남들의 비난과 비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내 마음에 품고 있냐는 것이다. 비판과 비난은 한 순간일 뿐이다. 여전히 비판과 비난의 감옥에 살지 아니하고 그들의 날카로운 날을 발판을 삼아 좀 더 나아지는 기회가 되면 어떨까 싶다.
어느 누구는 이런 것조차 신경쓰며 사냐고 물어볼 이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나에게 적용되는 약점이다. 남들은 쉽게 넘길지 몰라도 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할 뿐이다.
요즘들어 보다 깊게 마흔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이러한 일들이 예전과 다르게 수없이 나타난다. 어찌보면 더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러한 비판과 비난이 더욱 있을 것이다. 나의 삶이 일부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해보게 된다.
그래서 더욱 조심히, 천천히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가능하다면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한 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연약한 부분 그리고 비난의 소리 등에서 가능하다면 빨리 벗어나기 위해, 영영 감옥에 갇혀있지 않도록 살아가야 되겠다라는 생각도 함께 해보게 된다.
기존 나의 자랑거리를 점검할 때가 온 것 같다. 자랑하는 것을 나의 첫 번째로 삼지 말며, 나보다 남들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내 입으로 자랑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부족함을 좀 더 채우기위해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최근들어 정말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정말 버거울 정도다. 그런데 또다른 책임감이 부여지면 아무렇지 않게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다양하게 하고 있는 일들을 크게 펼쳐보고 가감하게 없애는 것도 나를 위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가운데 부족한 것들이 있다면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채우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며 책을 발행했다고 글을 잘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비난의 이야기 등은 하루빨리 잊으면서 말이다.
“진짜가 되어라. 그리고 정직해라. 당신이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재능일 수 있다. 왜냐하면 본인이 재능 있다고 과신하는 사람들보다 실수를 차단할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흔들리지 않는 돈의 법칙, 토니 로빈스)
고개를 숙이지 못한 이들
내 집 앞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봄철에 제법 많은 모종을 심었는데 이제야 열매들이 보인다. 몇 달간 이들의 모습을 보니 제법 감동스럽기만 하다.
모종을 땅에 심거나 씨를 심으면 단단하게 보이는 흙에서 나와 높이 높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모진 바람과 비가 오더라고 굳건히 서있는 그들의 모습이 참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들도 고개를 숙일 때가 있다. 그것이 언제냐면 열매를 맺을 때이다.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던 꽃이 떨어지는 순간 열매가 생기고,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날 때 높게 솟아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인다. 이제 당신께 바칠 열매가 준비되었다며 좀 더 겸손한 모습처럼 말이다.
삶을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직까지 내 삶이 여물어있지 않아서 그런지 만나는 이들의 삶이 참 안타깝게만 보인다. 미물의 식물들도 겸손의 몸짓을 보이는데 그렇지 못한 이들은 겸손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더 높이 세울 뿐이다.
최근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특별히 높은 위치에 서 계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 이들은 그 자리에 감사하며 도리어 섬겨주시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법 감동을 받곤 했다. 그리고 그런 섬기는 모습처럼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참 겸손치 못한 이들도 종종 만나보게 된다.
왜 이리 겸손하지 못한 지, 만나는 시간 내내 참 많이 불편했다. 어딘가에 큰 착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기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 냥 상대방을 그저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참 안타깝기만 했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정말 높은 자리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아는 그런 능력자이며, 남들보다 비교하지 못할 만큼 잘하는 걸까?
그들의 무례한 말들과 행동들을 보면서 뭔가 착각 속에 깊이 빠져있는 듯 한 모습이 참 안타깝다. 이 세상은 존경할 만한 어른이 왜 없어 보일까? 어른이라는 큰 훈장을 다는 순간 사람들이 바뀌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안쓰럽기만 하다. 내 말이 맞고 옳아요! 당신들이 틀렸다며 당황스럽게 하는 그의 모습이 멋져 보이기보다는 때론 초라하게만 보인다.
아마 어찌 보면 이 세상의 어른다운 어른이 없기 때문에 젊은 이들이 기성세대를 향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젊은 세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 보다는 자기 자리만 지키고 오로지 실속만 차리면서 단지 어른 대접만 받기를 바라는 어른들을 젊은 세대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지만 옳은 소리 하고 싫은 소리를 한다고 꼰대 취급하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 또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며칠 간 참 무례한 어른들의 모습이 참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찌 보면 그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함께하는 이들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의견만 줄곧 외치는 그런 꼰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니 참 섬뜩하기만 하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듣는 것을 가장 먼저로 하고, 말하는 것은 최대 줄이는 게 가장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자기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도 일단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것 그리고 그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 그것이 어른들에게 필요한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팔짱 끼고 듣는 그들의 모습, 말하는 사람 참 민망하게 말하는 도중 말을 끊고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모습들, 다 아는 내용이라며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서스름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들, 내가 더 높다며 낮은 이들을 어떻게든 숨죽이게 하는 이들, 하지 말아야 할 말들도 거르지 않고 그냥 뱉어 버리는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참 불편하기만 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래도 나는 그렇지 말아야 한다. 나도 그런 이들의 모습이 없다고 할 수 없기에 조심조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단지 무례한 사람들이 왜 이리 많아 라고만 불평하기보다는 내 삶 가운데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들보다 더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때론 침묵이 답이 될 때가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많이 힘들어지면 자꾸만 누구한테 이야기를 하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떠한 해결책을 말해달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내 이야기를 단지 들어달라는 것뿐이다.
최근 마음이 많이 힘들어서 자꾸만 누군가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 사람들을 통해 쓴 맛을 맛본 나로서는 섣불리 사람을 찾지 않았다. 그저 침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누군가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가득 찰 무렵 나의 오른손에는 핸드폰이 있었고 나름 친한다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하였다. 다른 이야기를 할 거라며 나름 변명을 하기는 했지만 입을 때는 순간 지금 나의 어려운 상황을 꼭 물어본 것인 양 줄줄 세기 시작하였다.
나의 말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나는 숨기려고만 했던 부끄러운 그 말들과 상황들을 다 이야기하게 되었다. 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생각보다 속 시원하지 않다. 당연히 상대방을 통해 무엇인가 위로받기보다는 꽁꽁 숨겼던 그것들을 다 들키게 되니 괜히 찜찜한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도 믿었던 사람이라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건데, 상상하지 못한 또 다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랑 전혀 교류가 없었던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나를 평소 나쁘게만 생각했던 그들로부터 나의 지금 상황들이 말해지기 시작하였고 나의 상황과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곧 잘리게 될 거라며 나름 나를 걱정하는 말투였지만 분명 나를 비웃는 말들이었다. 정확한 사실도 아닌데 사람들의 말 가운데에는 분명 왜곡된 이상한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걱정보다는 쌤통이다라는 나름 고소하게 여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서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직접 찾아가 답변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무지 답답하기만 하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나는 왜 이리 사람들을 찾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그렇게 관심이 없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든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건네 봤자 돌아오는 것은 상처뿐이다.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하고 판단해야 한다.
남들의 무관심이 때로는 나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큰 상처로 돌아올 수 있기에 남들을 더욱 의지하고 위로받으려는 나약한 사람처럼 살지 말자.
들판에 있는 꽃들도 묵묵히 비바람을 맞으며 살고, 길가에 있는 큰 나무들도 거친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그렇게 큰 것이다. 내가 가장 힘든 것이야 라는 큰 착각에서 벗어나 결국 꽃이 되고 큰 나무가 될 그날을 기대하면서 지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견뎌보자.
솔직히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더더욱 사람에게 보다 쉽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다.
‘혼자만 알고 혼자 생각에 잠겨있으면 결국 스스로가 힘들어진 이제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라’
어설프게 심리학을 배운 나에게 이런 문구들이 강하게 적용하는 것 같다. 폭발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내 마음이 힘들지 않기 위해서 더더욱 사람을 찾고 이야기를 건네었지만 이것이 나에게 독으로 돌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상처를 덥기 위해 말한 것이었는데 도리어 사람들을 통해 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밉다.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 참 좋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사정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다. 오로지 한분만 나에게 관심이 있으실 뿐이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는 나를 더욱 혼란케 할 뿐이다.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하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관심도 없는 이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나를 사랑하고 관심이 크신 그분께만 말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옳은 방법이다. 사람들을 통해 무엇인가 해결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일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
20대, 30대 일 때는 정말 몰랐다. 그때는 참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고 있는 40대의 삶이 참 고단하지만 어찌 보면 나를 단련시키며 더욱 커져가는 이 길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너무 큰 상처에만 집중하지 말고, 기존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그 부분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2년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너무 큰 상처인지라 하루하루의 감사는 다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 것도, 그래도 일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한 일 아닌가? 나를 사랑하고 나만 바라보는 자식들이 나에게 3명이나 있는 것도 참 축복된 일 아닌가?
어려운 길, 고난의 길이라서 참 고되지만 나름 이런 일들을 통해 나를 한번 더 살펴보고 좀 더 숙성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어 참 감사하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에만 집중하고 깊이 묵상하기보다는 나를 통해 이루어나갈 많은 일들을 기대하며, 보다 큰 일을 감당시키기 위한 사람으로 지금 단련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그 길임을 믿고 천천히 그리고 감사하며 살자.
나만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많은 어른들이 나름 인생의 쓴맛을 맛보며 살았고 갑자기 어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들도 이러한 어려움을 하나하나씩 경험하면서 지금의 사람으로 된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