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상처 지우개
15. 첫. 사. 랑 안녕!
티브이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평소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는 직업인지라 아내가 발달장애인이 연기한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라고 했다.
어찌나 감동을 받았는지 보는 내내 눈물만 흐르면서,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정제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앞편의 드라마가 궁금했다.
1편부터 다시 찾아보게 된 것도 앞서 본 것과 같이 감동 그 자체였다. 1편부터는 첫사랑이라는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한 사람에는 잊지 못할 첫사랑이었고, 한 사람은 고향으로 다시 찾아와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며 지금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겨내고자 하는 모습 같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계속 내 마음에 맴돌았다. 어찌 보면 나의 첫사랑 생각이 들었나 보다. 너무 오래전에 있었던 일들이라 그냥 잊어버리고 살다가 가끔 꿈속에서 나타나는 그 정도였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그 첫사랑과 함께 지난 만난 친구들이 많이 생각이 났다.
20대 풋풋한 딱지를 갓 떼고 나서 어렵게 직장생활을 할 무렵
대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참 고마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졸업한 지 1년이 지난 터라 아직도 연락을 하며 지낸 친구였다.
그 친구도 귀한 사역을 감당하던 친구였는데, 그의 사명을 잊어버렸는지 아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는지 나와 같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만나다가 밖에서 만나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지..
참 찌질할 때 많이 얻어먹었던 친구였는데.. 참 오랜만에 친구에게 쏠 생각으로 만났는데 그때 그날 나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늘 가지고 다니던 카드를 가져오지 못해 결국 그 친구가 결재를 하게 되었다.
다음에 내가 꼭 사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 더 큰일로 번져버렸다.
평소와 다르게 연락도 받지 않고 피하는 듯한 느낌이 만난 다음날부터 꾸준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친구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여전히 얻어먹는 내가 그렇게 싫었나 보다.
아니 너무나도 미웠나 보다.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를 맞은 듯이 내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돌아오는 토요일 그가 일하는 그곳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피해 버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당황하면서도 참 많이 화가 났다.
큰돈도 아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렇게 친한 친구를 한칼에 단절해 버리다니...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며칠 사이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수한 것은 실수한 건데
섭섭했다면 화가 났다면 이야기라도 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친구사이일 텐데..
그 친구는 아니었나 보다. 그 일이 일어난 후 완전히 그 친구와 연락을 할 수 없었고 더 이상 만나기도 싫은 만큼 그가 너무나도 싫었다.
길게는 약 7년 동안 참 친하게 지내며, 남자 친구만큼 우정을 깊게 쌓았는데 그 많은 추억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아 억장과 함께 내 삶 전체가 무너지는 듯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오랜만에 보게 된 드라마를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어떻게든 시간이 되면, 허락만 되면 그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은 생각이 문 듯 들면서 아쉽게 지워버렸던 그 옛 추억들이 참 그리웠다.
바쁘게 살다 보니 과거의 엣 추억들이 하나씩 지워지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어찌 되었던 옛 추억을 다시 살리고 싶은데 그것이 내 마음같이 않다는 생각에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어느 누구에게는 첫사랑으로 기억되며
어느 누구에게는 싹 지워버리고 싶겠지요..
지금 나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어느 누구에게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좋은 생각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지만
조금이나마 감사했고 고마워했던 그런 흔적들이 그들에게 남겼으면 좋겠다. 욕심이겠고 나만의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조금이나마 좋은 흔적을 그들에게 남겨졌으면 좋겠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겠지만
지금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는 과거처럼 나쁜 흔적보다는 좋은 인상과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는 그런 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이름이라도 좋은 흔적을 남기고 싶다.
친구야 미안했어! 내가 그때는 참 어리고 어리숙했단다.
친구야 그때는 참 좋았었는데! 그렇지?
16. 다시 제자리
이 맘 때쯤 참 많이 힘들었다.
오늘따라 과거의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동일하면서도 비슷한 상황이 또 몰려왔다.
사회생활이고 직장생활이라고 하지만 너무나도 질린다.
왜 이리 이기적이고, 거르지 않은 채 그저 말만 던지는 것일까?
‘노동착취’
난생처음들은 말이다. 1박 2일 캠프를 가야 해서 업무조정을 해야만 했다. 늘 일어나는 일들이라서 가장 합리적인 업무조정 방법을 선택했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며칠 남지 않는 지금에서야
직접 논의하는 것보다 걸러 걸러 들려진 이야기가 바로 ‘노동착취’였다. 젊은 직원인지라 좀 경솔한 말이라고만 여겨지지 않을 만큼 참 많이 속상하고 계속 내 마음에 맴돌기 시작했다.
자기 나름대로 속상했겠지만 그리고 정한 내용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겠지만 직장생활에서 자기 말 그대로 되거나, 자기중심으로 가는 적이 얼마나 있겠는가? 협의할 수 있고 논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저 툭 건넨 그의 말이 참 불편하기만 하다.
부모로서 자기 자식을 맞기는 심정이 무엇일까?
감사한 마음일까? 아님 제대로 케어하지 못해 늘 불만스러울까?
SNS가 일상이 되는 요즘, 행사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서 카톡으로 행사 참여 여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것이 일상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방법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진행하고 있었다. 투표시간이 있어 일정기간이 지나면 투표를 할 수가 없다. 벌써 2주 전에 올린 것인데 보지 못했는지 아님 잘 못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결국 투표를 못하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투표를 못한 것 같아 댓글로 참여 여부를 여쭈었고, 투표하지 못한 몇몇은 댓글로 참여 여부를 이야기했다. 그 방법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투표 기간이 지나, 내려진 상태여서 미처 투표하지 못한 한 분이 투표하지 못한 분은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당황스러운 질문에, 그렇지 않습니다라며 겸손하게 이야기를 했건만..
단단히 오해하기 시작하였다.
카톡으로 다 전할 수 없어서, 더 큰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전화를 드렸는데 몇 번이나 드렸는데 벌써 오해를 했는지 전화를 몇 번이나 끊어버렸다.
그게 끝이었다.
그러면서 카톡방에 나와 맞추질 일 절대 없을 거라며 전화하지 말라고 경고 메시지를 올려 버렸다.
위로보다는 공감하기보다는 탓하기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스럽기만 하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루 종일 병원에 있던 한 직원이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 퇴근 도장을 찍지 않는 직원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지 자기의 감정을 섞은 상태에서 평소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를 불쑥 건네는 그의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신입직원도 아닌 꽤 오랫동안 일한 사람인데 말이다.
직장생활이 참 녹록지 않다.
편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그때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 참 많이 속상하다.
이 길이 맞는 것일까?
내가 너무나도 착각하며 산 것은 아닐까?
방법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정착한 것은 아닐까?
무능력의 사람처럼 비치고 대하는 것이 너무 싫다.
거르지 않고 무작정 뱉어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싫다.
무작정 뱉어버린 말을 곱씹어버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도 싫다.
늘 일어나는 일인데 거르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도 싫다.
겉으로는 착한 리더인데, 삶의 중심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 참 싫다.
잠이 깊게 오지 못했다.
이른 아침, 알람이 울리는 시간 전에 일어나 버렸다.
어찌나 출근을 하고 싶지 않는지? 그런데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내 모습에 한 번 더 놀랍다.
집 앞마당에서 실컷 뛰놀아서 그런지 앞마당의 잔디들이 제법 죽은 듯하다. 물을 흠뻑 주면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저녁 흠뻑 물을 주고 있다. 물을 너무 주면 정말 살아날까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하루빨리 다시 잘 아나기를 바라보면 어김없이 물을 주게 된다.
좋은 상황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생각한 길이 정말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곧 다시 회복하며 찰란 하게 빛날 풀들처럼 나 또한 그럴 것이라는 기대 가운데 오늘도 출근길을 걷는다.
17. 가족의 상처 지우개
지금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일부 영향이 있었던 것은 과거의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지 않았지만, 특별히 좋은 대학교 나와 효도하는 자식들은 없지만 평범한 가족이었고 그렇게 저렇게 효도하는 듯 살아왔던 것 같다.
큰 형인데도 무시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누가 큰 형이고 동생인 줄 모를 정도로 무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자식 덕에 그렇게 무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결정적으로는 친척 누나 결혼식이 끝나고 친척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아침 일찍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피 뭍은 와이셔츠를 입고서 말이다. 자세한 것은 잘 모르나 결혼식을 마치고 아버지랑 작은아버지가 한잔을 하셨나 보다. 그런데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형이라는 사실을 싹 잊은 채 무작정 주먹질을 했나 보다.
그놈의 주먹질! 내가 어릴 때도 나한테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명절 때문에 다 모인 자리에서 밥상을 엎거나, 절을 하지 않는다고 부모님 앞에서 싸대기를 스스럼없이 때리는 자였다.
늘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큰 형도 보이지 않고 우리 가족의 대장 노릇인 양 말하고 행동하기 일쑤였다. 늘 자랑에 감춰진 우리 가족과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어찌나 작아 보이는지...
공무원을 가고 대학교를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째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희생했던 아버지. 그때 그 시절 아버지들이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온 가족 중에서 자기가 제일 나가는 듯 뻣뻣이 곧은 목을 유지했던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의 모습이 제일 안쓰러웠다. 더욱 희생까지 하면서 그토록 살아왔는데 못난 동생 덕분들 때문에 우리 부모님의 상처는 그저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잘나고 싶었고 그래서 그보다 더 잘했으면 했나 보다.
괜히 나이답지 않게 욕심이 그저 그들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자식 자랑, 자기들의 자랑만 하기 바빴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왜 죄송스럽게 침묵하기만 했을까? 아마 자랑할 만한 것이 없어서는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인지 요즘 들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자기가 잘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남들이 잘하는 것은 왜 이리 시기 질투만 하는 것일까?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들도 제법 기가 죽은 듯하다.
그렇게 잘난 자식들도 우리와 비슷비슷하게 살며 곧 명예퇴직의 불안감 때문에 때늦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역전이라고 할까?
그리 침묵하셨던 부모님께서 바뀌기 시작하셨다.
잘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살고 있고 어느 자식들보다 더 많은 효도를 받아서 그런지 예전과 다르게 매우 당당해지셨다.
자식 자랑도 끝나고 그리 보여줄 것도 없이 초라해진 그들은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어머니의 자랑스러워하는 목소리를 전화통화를 통해 한참 듣게 되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이제야 행복해하시는 것 같아 자식으로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어제 오랜만에 일찍 잠을 청했다. 당연히 바로 잠을 자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렵게 잠을 든 나는 꿈을 통해 그렇게 싫고 싫은 친척들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잘난 멋에 취해있었던 그들은 꿈에서도 참 초라해 보였다. 어찌나 속 시원한지?
그런데 어쩌다 마흔이 지난 나에게 아직도 어릴 적 큰 상처를 주었던 가족들을 품고 있고 화나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여러 번 놀랐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는데, 안 된 모습에 속 시원하고 고소해하는 내 모습이 그저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들을 용서하는 것보다 잊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보다.
과거의 그들처럼 살기보다 좀 더 사랑해 주시고, 존중해 주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는 철든 생각이 문 듯 들었다.
엄마! 나 솔직히 그분들 때문에 제법 상처도 받아서 한소리 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런데 내가 왜 참았는 줄 알아? 그건 그래도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야. 혹시나 내가 말을 해서 아버지 어머니께 흠이 될까 봐...
참 억울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참은 것 같다. 혹시 모르지 내 앞에서 또다시 그분들을 보게 되었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를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말한 그 자랑이 다 헛된 것이 라는 거.. 그리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자랑하고 싶지 않아서 그때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야! 아마 우리 부모님은 우리 자식이 언제든 역전해서 더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더 그랬을 거야? 그렇지? 내 말이 맞지?
그게 어른이고 부모였던 거야!
18. 온라인의 소통
온라인이든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때이다라는 말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이 말이 현실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들어 많이 바빠졌다. 일도 일이지만 하는 일들이,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져서 참 바쁘게 살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이런 삶을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3년의 고통이 거름이 되어 지금 내가 이런 일들을 신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난다. 무지 신난다.
그래서 신나는 만큼 남들에게 널리 널리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 든다. 나 예전처럼 사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 내들 보다 못난 놈이 아니라고 하면서 당당히 외쳐보고 싶다.
요즘에는 SNS이 일상이 되었고 그저 참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부케 업무까지 연결되곤 한다. 그래서 어쨌든 SNS을 더욱 잘 활용하고 나를 좀 더 알리려고 노력한다.
어느 이는 블로그로, 어느 이는 유투뷰로 각자의 특색에 맞게 자랑하고 알리는데 힘을 쏟곤 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나를 널리 널리 알리려고 노력한다.
‘글 쓰는 김 작가로’
‘벌써 책 5권을 출판하는 김 작가로!’(곧 5권 책이 출간되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있는 것 같다. 자랑하면서 널리 널리 알리면서 기분 좋아지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을...
그런데 그 기분에 한때인 것 같다. 꼭 있는 그대로 비치고 생각하기보다는 왜 이리 삐뚤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렵게 간 직장에서 할 일 없나 보지.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만 열심을 다하네... 그러면서 맨날 바쁘다고만 하고..
사실 그렇지 않은데..
진짜 바쁘고 분주하게 보내는 거 맞는데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다양한 일을 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데... 새벽 6시에 출근하는 것도 다반사고, 한 달 내내 출근한다고 해도 원망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는데.. 묵묵히 일하면서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을 하지?
자기 일에 신경 쓰는 것보다 남들 이야기에 왜 이리 신경을 쓰는 거지? 그런데 나도 참 섬뜩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에 나보다 더 바쁘고 어찌 보면 참 부러울 정도로 참 잘하는 지인이 한 명이 있다. 그를 보면서 나 또한 응원보다는 삐뚤어진 시선으로 분명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일도 안 하나 봐? 잠도 안자나?
사람이라는 것이 나는 잘하는 것이고 남들은 잘못했다고만 생각하니 참 큰 일이다.
어느 한 지인분이 나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SNS를 통해 알리는 것도 중요한데, 내 앞에서는 좋은 이야기를 할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싫은 소리 질투하는 소리를 한다고.. 사람이 다 그런 거라고.. 그래서 더욱 조심하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세상이 참 뿌옇게 보이기만 했고 달리 보이기만 했다.
그리고 내 입부터 틀어막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를 알리고 싶은 게 굴뚝같았지만..
세상이 바뀐 건지... 아님 바보처럼 잊고 살았는지 모르고 살았는지
사실 남들의 시선과 말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섣부른 시선과 판단이 오히려 기가 꺾일까 봐 걱정부터 앞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리면서 나를 무시한 그들을 짓누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섣불리 덤비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성 메시지 일수도..
그렇지만 적당히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너무 알리고 높아지다 보면, 많은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며 찬사를 받는 자리보다는 더 많은 비난의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 있을까? 살다 보면 자랑하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내 자리를 깊이 파서 더 낮아지는 것뿐이다.
내 자랑은 내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남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내가 나를 자랑한다는 거..
무엇보다 내가 나를 자랑하기보다, 그리고 자랑하기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을 발견하고 존중해 가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사람이 나를 이해준 다고? 설마?
저 사람이 나를 칭찬해 준다고? 설마?
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남들의 시선과 판단에 귀한 시간 버리지 말고..
그저 남들의 시선과 판단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길만 굳건히 걸어갑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그것이 자기 다운 삶인 거야!
20. 무책임을 던져버릴 나이가 아닙니다.
사람과의 만남이 언제부터 두렵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보다 상처와 아름이 더 큰 것 같다.
더욱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매우 아쉬울 정도로 사람과의 관계가 썩 좋지는 않다.
호의를 베풀면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보이며, 냉정하게 대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바로 평가해 버리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인 것 같다.
둥글둥글한 지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각자의 모난 가시가 서로를 찌르고 죽이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듯하다.
요즘 들어서 또다시 사람과의 불편함이 생기고 말았다. 작년까지 너무나도 깊게 받았던 상처인지라 되도록 사람과의 불편한 상황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 상황 가운데에 놓여있는 것 같다.
우습게 보는 이들과 열심을 다하는 자들의 기 까지 꺾어버리는 자들의 무례함이
거르지 않으며 무작정 뱉어버리는,
기본예절도 없이 주인 노릇 하는 이들이 오늘따라 참 불쾌하게 만들곤 한다.
휴가조차 눈치 보며 써야 하고, 자기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런 문화조차도
좀 더 힘을 내어 열심을 다하는 것조차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
열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자기 편안대로만 판단하고 자기 것만 챙겨 먹는 이들이
너무나도 보기 싫어졌다.
더욱 이곳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내 생각을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열심을 다하는 것조차 싫은 것인지, 오로지 나쁘게만 보는 것 같아 하루하루 내 마음이 참 많이 불편하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있는 나로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욱 불편한 심정이 더해져만 간다.
자기가 제일 힘들다며 자기중심의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는 그들을 볼 때면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만 더해져만 간다.
처음에는 열심을 다했다. 어느새 내 눈앞에서 펼쳐진 화려한 모습이 걷어지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눈이 멀어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 실제 보게 되니,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순수하지만 생각 없이 다짐했던 것들이 순식간 무너져만 가는데 내가 어찌해야 할지 걱정만 든다. 그냥 포기해 버리면 되지라고 철없이 생각했던 그때처럼 바로 포기하고 버려버릴 일들이 아니다.
이제는 책임지고 좀 더 나아갈 위치에 있는 나이이기에 예전보다 고민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이곳이 인도받은 곳이 맞을까? 의심보다는 힘듦이 점점 더해지다 보니 그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점점 깊어져만 간다.
그래서 더 벗어나고 싶은 것 같다. 이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인 것이다. 이제는 바로바로 포기하고 던져버리는 그런 무책임한 나이가 아닌 것이다.
19. 무책임을 던져버릴 나이가 아닙니다.
사람과의 만남이 언제부터 두렵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보다 상처와 아름이 더 큰 것 같다. 더욱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매우 아쉬울 정도로 사람과의 관계가 썩 좋지는 않다.
호의를 베풀면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보이며, 냉정하게 대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바로 평가해 버리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인 것 같다.
둥글둥글한 지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각자의 모난 가시가 서로를 찌르고 죽이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듯하다.
요즘 들어서 또다시 사람과의 불편함이 생기고 말았다. 작년까지 너무나도 깊게 받았던 상처인지라 되도록 사람과의 불편한 상황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 상황 가운데에 놓여있는 것 같다.
우습게 보는 이들과 열심을 다하는 자들의 기 까지 꺾어버리는 자들의 무례함이
거르지 않으며 무작정 뱉어버리는, 기본예절도 없이 주인노릇하는 이들이 오늘따라 참 불쾌하게 만들곤 한다.
휴가조차 눈치 보며 써야 하고, 자기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런 문화조차도
좀 더 힘을 내어 열심을 다하는 것조차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
열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자기 편안대로만 판단하고 자기 것만 챙겨 먹는 이들이
너무나도 보기 싫어졌다.
더욱 이곳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내 생각을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열심을 다하는 것조차 싫은 것인지, 오로지 나쁘게만 보는 것 같아 하루하루 내 마음이 참 많이 불편하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있는 나로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욱 불편한 심정이 더해져만 간다. 자기가 제일 힘들다며 자기중심의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는 그들을 볼 때면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만 더해져만 간다.
처음에는 열심을 다했다. 어느새 내 눈앞에서 펼쳐진 화려한 모습이 걷어지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눈이 멀어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 실제 보게 되니,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순수하지만 생각 없이 다짐했던 것들이 순식간 무너져만 가는데 내가 어찌해야 할지 걱정만 든다. 그냥 포기해 버리면 되지라고 철없이 생각했던 그때처럼 바로 포기하고 버려버릴 일들이 아니다.
이제는 책임지고 좀 더 나아갈 위치에 있는 나이이기에 예전보다 고민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이곳이 인도받은 곳이 맞을까? 의심보다는 힘듦이 점점 더해지다 보니 그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점점 깊어져만 간다.
그래서 더 벗어나고 싶은 것 같다. 이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인 것이다. 이제는 바로바로 포기하고 던져버리는 그런 무책임한 나이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