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하늘
20. 겉만 보면 안 되는 일
평소 알고 지냈을 때와의 전혀 다른 모습이 참 당황스럽기만 하다.
한주 내내 자리에 있는 것도 보지 못했다. 바쁘다는 이유라고 하지만 한 사람이 자리에 없어 보이니 매우 혼란스럽기만 하다.
며칠 전에 정말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힘들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들은 것과 다르게 행동한 그의 모습이 정말 가증스러웠다. 더욱 그를 경계하는 자의 모습도 함께 보여서, 자기도 그러한 실수를 하고 있었는데 남들의 실수가 더 커 보였는지 그의 실수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말조차 이해되거나 들을 수가 없었다.
안 그럴 것이라 믿지만 그래도 알려야 될 것 같아서, 리더에게 조심히 알렸다.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고 사람말만 믿고 판단하는 것 같아 마음이 꽤 불편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이야기를 꺼냈다.
나 또한 그럴 것이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중요한 핵심만을 이야기하고자 했으나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돌보면서 화날 수 있고 때릴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참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예전 돌보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말이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중요한 부분을 흐리는 다른 이야기를 건네었다는 것이다.
리더는 다 챙겨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 따져가면서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에 코로나 코호트로 인하여 한 달 동안 계속 출근을 했다. 출근을 했으니 출근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발단이 되었나 보다. 한 달 뒤 그 모든 노력을 보상받은 듯 전과 다르게 시간 외 수당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수당을 받은 것보다 열심히 일했던 모습을 지지해 주기는커녕 다 받아 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 많이 힘들었다.
최고의 리더가 그것도 다른 직원, 함께 일하는 자녀한테 들은 하소연으로 어처구니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자기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아서 그런가? 아직도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건가? 수고했다고 말해도 될 일인데도 수고했다고 말하기보다 더 많은 챙겨 먹었다는 이야기가 참 많이 힘들게 한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왜 있어야 하는지 점점 힘들게 만든다.
쉼도 없고, 가족과의 시간도 없이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니 참 어렵기만 하다.
팀장들에게도 시간 외 수당과 관련하여 논의를 했다. 참 조심히 말이다.
결과는 미리 예상한 것에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난리가 났다. 싸늘한 반응이 너무나도 좋지 않다.
그런데 내가 바보 같았다. 바보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최고의 리더의 생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리더의 지시사항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중간에서 조율하는 차원으로 필요성만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나의 의견이라고 느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하고 있는 도중 한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휴가도 제대로 못쓰고 시간 외 보상휴가만 쓰게 된다며, 월 몇 시간 초과 정도를 정했으면 하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났었던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나?라는 것이었다. 불쑥 들어와 정의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직장생활에서 절차가 맞는 것인지 참 의문이 갔다. 중간의 팀장은 절대 모르는 이야기이다. 당황해하는 팀장이 참 안쓰럽기만 했다.
검토해 보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최고의 리더에게 흘러들어 갔나 보다.
아니, 직접 이야기를 했나 보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면서 무작정 이야기를 전한 직원의 모습 또한 참 안쓰럽기만 하다. 절차도 없이 귄위조차 무시해 버린 그 직원이 참 안쓰럽다.
문제의 심각성도 전혀 알지 못한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리더의 모습도 참 당황스럽다.
그렇지? 참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주말까지 출근해서 퇴근하려고 하는데 두 분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참 궁금하기도 해서 그 자리에 앉았더니 꽤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이야기는 전에 리더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황했던 것은 왜 그런 부분을 그 직원과 그 자녀와 논의를 하는 것이었다. 매우 민감한 부분인데 인식하지 못했나 보다. 그저 가볍게 생각하는 이야깃거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리에 앉았더니 매우 당황해하면서, 빨리 퇴근하라고 한다. 주말에 출근해서 피곤하니 빨리 퇴근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부리나케 정리하고자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정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더 이상 계속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바지 사장 같은 것 같기도 하지만 배울만한 곳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 매우 중요한 문제 등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곳이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답이 없다. 그리고 갈 곳이 없다.
과거 이때쯤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생각나면서 내 마음조차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또 일어나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내 마음이 참 많이 무너진다.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고, 잘못된 것을 말 못 하는 지금 내 모습이 참 초라하기만 하다.
21. 장마철
지난 며칠 전부터 비가 계속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더욱 웅장하게 소리를 내듯 천둥과 번개가 함께 하모니를 이룬다.
어느 이는 비가 오는 것이 참 좋다고 하고, 나이를 먹으면 비가 오는 것이 참 좋다고 이야기하던데 나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비가 오는 것이 참 싫다. 꿉꿉한 느낌이 싫고, 비로 인해 온몸이 젓는 것이 싫다.
밤새 비 맞을 우리 식구들이 걱정이 들었다. 혹시나 어디로 튕겨 나가지 않았을까 싶어, 흙에서 튀어나왔을까 싶어, 잘 자라고 있는 잎에 괜한 상처가 났을까 싶어 아침 일찍 밤새 잘 지냈는지 확인해 본다.
이맘때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며칠간 비가 오는 장마철이 돌아온다.
며칠 전만 해도 햇볕이 매우 따가워 조금의 물도 참 소중하게 느낄 정도로 목말랐는데, 넘치도록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우리들의 온몸과 세상을 덮어버린 듯하다.
어느 이는 비가 오는 것이 반가울 것이며, 어느 이는 나와 같이 걱정스러움으로 지켜만 보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문 듯 들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가 벌써 1년이 넘었다. 평소 잘 가꾸지 못했던 내가 아침마다 저녁마다 키우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참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며칠간 신경 쓰고 물도 충분히 주었다고 하는데 집 앞마당 잔디가 시원치 않다. 꼭 죽은 것 같다는 생각에 매일매일마다 속상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똑같이 물을 주고 정성스럽게 보살펴주는데 어느 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어느 이는 죽은 듯이 풀 죽어 있어 보여 어찌나 속상한지 모르겠다. 물이라도 충분히 주면 살 것 같아서 충분히 물을 주게 되었는데 너무 많이 주었는지 다시 뱉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땅에 물이 한가득이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살 수 없는 것 같아 그저 다른 놈으로 바꿔버려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할 무렵 우리 집을 지어준 대표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살 기색이 보이지 않네요! 다른 놈으로 바꿔주세요”
잘 관리하지 못한 내 탓을 하기보다는 잘못된 것을 심어준 대표가 문제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대표는 내 말을 듣기는커녕 앞에만 물을 주지 말고, 뿌리까지 느낄 수 있도록 물을 충분히 주라는 것이었다.
‘흥건한 것 이상 넘치도록 주었는데 무슨 이야기야?’
서투른 나의 모습 때문에 괜한 미안함이 들어 어느 때부터인가 아침저녁으로 물을 흥건하게 준다. 이번 장마철로 인해서 이놈들에게 공짜로 실컷 물을 주고 있다. 그런데 혹여나 과하게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거칠게 주는 것 같아 제법 매일매일 신경이 더 많이 쓰이게 된다.
이런 시련과 아픔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열매를 맺곤 한다. 이놈이 잘 자랄 수 있을까 싶은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큰 위대한 힘이 이들에게 있는 듯하다.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받으면서 견디고 견디면서 결국 큰 열매를 맺는 이들의 참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한다. 매일매일 전쟁터 같은 삶인 것 같고, 그저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줄곧 숨어있기만 했는데 이놈들의 위대함이 나에게는 전혀 없는 것 같다.
아픔과 고통이 없다면
끝이 없어 보이는 장마철에서도 굳건히 지켜내지 못한다면 내가 결국 이길 수 있을까? 언제까지 피하면서 숨어있기만 할 것인가?
20년 전인 것 같다. 고등학교 친구가 비가 오면 옷이 젖든 간에 그렇게 밖으로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곤 했다. 미친놈처럼 보였던 친구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친구는 직접 비를 온몸으로 맞음으로 즐기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통이, 아픔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그런데 부르지도 않았던 장마가 늘 이때쯤 오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하고 피하기만 하기보다는 온몸으로 맞으며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온몸으로 맞아야 내 깊은 곳까지 스며들 수 있다. 그래야 내 안에 있는 몹쓸 것들이 씻겨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움 때문에 보이지 않는 영양분을 하늘을 통해 받지 않겠는가?
그분께서 나에게 왜 고통을 주시는 걸까?라는 생각에 깊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장시키려면, 그리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의도치 않는 고통과 아픔이 허락되어야 한다. 적은 비는 때론 내 몸과 마음을 찝찝하게 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내리는 비는 내 마음 깊이까지 흥건하게 적셔 줄 수 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장대비가 때론 나에게는 큰 힘이 된다. 그래도 그렇게 무섭게 내리는 비는 언젠가 끝 치기 마련이다.
장맛비가 오는 이유
무거운 하늘 위의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서, 보다 가볍게 하기 위해서 내려지는 장맛비
부족하고 메마른 땅에게 주는 선물 같은 장맛비
비바람을 통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장맛비
즉 위에든 아래 부분이든 어느 곳이나 유익한 것이며, 위와 아래가 조화롭게 하기 위한 그분의 선한 은혜임을 더욱 깨닫게 된다.
22. 구멍 뚫린 하늘
장마철이라고 하지만 작년과 다르게 비가 참 억수같이 내린다.
이 정도까지 내리면 온 세상이 무너질 듯한 기세가 참 크게만 느껴진다.
아들과 열심히 만들었던 창고가 망가졌다.
다행히 옆으로 천장이 떨어져서 옆에 집까지 피예가 없었는데, 그래도 밤새 만들었던 창고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니 씁쓸하기만 했다. 더욱 창고 안에 얌전히 쌓아놓았던 짐들이 원치 않게 모두 젓게 되어서 버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은 심각하다.
매일매일 물을 주는데, 며칠 간 물을 주지 않아도 될 만큼 하늘에서 참 풍성하게 물을 내려주었다. 그래도 잔잔한 비는 그들에게 참 고마운 선물이고 양식일지 모르나 과하게 내린 비는 도리어 곧게 서버린 이 놈들의 머리까지 꺾어버리고 말았다.
살려달라는 부르짖음도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늘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잘 버텨야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었다.
그 여석들은 얼마나 주인을 향해 원망하고 힘들어했을까?
목소리를 내는 소리조차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 같아 배신감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데, 주인이 허락한 배려였는데 말인데 그 여석들의 원망은 크게만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그 여석들의 뿌리는 멀쩡하였다.
옆으로 쓰러져있고 뒤로 넘어지는 것 같은데 결국 뿌리만큼은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것 같아 참 대견스럽기만 하다. 하늘도 그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뿌리만큼은 건들지 않은 것 같다.
하늘의 위대한 배려와 섭리가 참 놀랍기만 하다.
나 또한 얼마나 하늘을 향해 원망 불평했는가?
잘되고, 아무런 일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도 그 여석들과 마찬가지고 원망하고 바꿔달라고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이놈들아 조금만 기다려봐 그것이 곧 너를 성장시키는 것들이란다!”
아프면, 고통스러우면 좋은 이야기도, 귀한 음악 소리도 그렇게만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그저 고통에 크게 휩 쌓여 있어서 그렇게 은혜롭게 들은만한, 여유롭게 볼 만한 상황을 만들지 못한다. 그저 고통스럽고 괴로울 뿐이다.
무너진 천장을 보면서 속상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겉으로는 멀쩡하다고 생각했다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보다 지금처럼 처음부터 무너지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돈 들여 만든 창고이지만 점차 조금씩 무너져서 손도 못될 정도로 와르르 무너지는 것보다는 처음에, 초반에 일찌감치 나타난 것이 나에게는 훨씬 좋은 징조인 것 같다.
큰 사고를 일으키기 전에 여러 징조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런 징조들을 느끼거나 경험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평상시처럼 산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몇 번이나 지나가고 나면 전혀 손도 못 될 정도로 인생의 큰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마, 지금의 어려움이 과거 어느 날 여러 번 징조들이 있었을 텐데
그리고 미리 경고의 메시지가 울렸을 텐데 바보처럼 무디게 살면 시 이제야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 나중 더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나타난 경고성 메시지는 아닐까 싶다.
그냥 시간 지나면 물 흐르듯이 지나쳐 버리지 말고 하늘이 나에게 준 귀한 메시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이라는 것이 참 순탄하지는 않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하여 더 좋은 자리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때 여전히 예상하지 못하게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다. 직장생활이 사회생활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편하고 행복한 그런 곳은 아니지만 바보처럼 지금보다 더 낳겠지라는 그런 착각을 나부터 하지 않았나 싶다.
늘 그랬다. 처음에는 참 편하고 여기가 그분이 인도한 길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본채를 직접 보는 순간 기존 기대했고 경험했던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질 때 이곳도 직장생활을 하는 곳, 지옥 같은 사회생활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편한 곳은 없다. 나를 위한 천국 같은 곳은 없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소화시키는 것이 이런 지옥 같은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은 나름 비결이고 방법인 것 같다. 사람들이 상처를 주고, 생각보다 흘러가지 않는 이곳에서 살아남고 나름 버티고 살려면 뚫린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크고 작던 그대로 맞는 것이 그대로 수용하며 사는 것이 방법인 것 같다.
일들마다 헛된 것은 없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 가운데에서 헛되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인생을 살면서 헛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이 내 목을 감 쌓지만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는 일들인 것이다.
아픔을,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분은 작은 고통을 통해 나를 단련시킨다. 그러나 정말 넘어지는 뿌리는 건들지 않는다. 뿌리만 제대로 서 있다면 고통스럽고 사나운 장맛비가 도리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단비가 될 줄 믿는다.
23. 갈 곳 없는 은혜
생각대로 될 때는 몰랐으나 생각보다는 의도치 않게 흘러가는 것이 참 많이 힘들게 한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꼭 그렇게 흘러가기보다는 의도치 않는 길로 인해 참 난간 하고 힘들 때가 참 많다.
새로운 곳에 온 지도 1년 가까이 가고 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을 정도다
그만큼 최선을 다하였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갈등과 어려움이 있다. 처음과 다른 모습으로 인한 실망감, 해도 해결되지 않아 보이는 환경, 무례한 사람들 덕분에 매일매일 포기하려고 하고 내려놓으려는 내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내 모습이 참 우습게 느끼도 할 만큼 순간순간 내 마음에 깊은 갈등이 여전히 있는 듯하다.
내가 새롭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다시 회복하고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마땅히 용기 있게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적지 않는 나이인지라 용기 있게 박차고 나갈 그곳이 지금은 없다. 가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어릴 적에는 어쩜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날 불러줄 곳이 없겠어? 손만 빨고 살겠어? 내가 얼마나 유익한 사람인데 나를 잡지 않네? 나중에 후회하는 날이 있을 거야?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고, 미래가 없는 무책임한 용기였는지 지금에서야 뼈절히 느끼게 된다.
이런 사실을 더 깊이 느끼지만 마땅히 용기 있게 갈 수 없고, 딸린 자식과 또 다른 환경 때문에 섣불리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졌다.
그저 자존심 버리고 버티고 참는 것이 가장 옳은 길이라는 나름 나를 위로하며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시기 질투가 장난이 아니다. 자기 잘못 보다는 남들의 실수와 부족함에 어찌나 관심이 큰지? 끊임없는 비난과 비판이 나를 더욱 위축되게 하고, 힘 빠지게 해서 더욱 그만두고 싶은 더욱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는 듯하다.
그런데 마땅히 갈 곳이 없고, 지금 이곳에서 버티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어찌나 답답하고 힘이 드는지, 왜 이런 일들이 나한테만 허락되는지 그저 불평만 하게 되다.
늘 그런 불만이 가득했다. 어찌 보면 내가 잘난 것에 대한 무책임한 자신감과 용기가 아닐까 싶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모습 때문인지 가족들이 제법 힘들어 보인다. 특별히 아내가 참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아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 무책임하게 보이는 나의 못난 모습이 참 안타깝게 생각된다.
밤 낮 부르짖기 시작했다. 작년 이 맘 때쯤 힘들어서 얼마나 부르짖었던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하나도 변해버리지 않는 듯한 환경이 더욱 답답하게 만들곤 한다.
어쩔 수 없이 남게 되고, 머무르게 되는 지금 이 상황이 참 많이 힘들다.
하루빨리 벗어난다면 무엇인가 해결되고, 더 멋진 삶이 되지 않을까? 더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낮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인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왜? 왜?
무슨 이유 때문에 이렇게 반복하며 지치게 만드시는 걸까?
작은 텃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미물의 토마토도 때가 이르러서 귀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나의 삶도 그때가 아직 이르지 못해 온갖 어려움과 힘듦이 있지 않나 싶다.
살다 보면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때가 당장 오지 않겠지만 결국 그때가 오게 되며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 참 바보처럼 평범하지만 깊은 진리를 잊고 사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른 새로운 곳을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내가 할 수 없고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시간들이겠지만 이 시간이 어찌 보면 나를 한 번 더 살펴볼 수 있고 평소 하지 못했던 깊은 성찰을 이 시간을 통해 얻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나, 섣불리 판단하여 뛰쳐나가서 고생하기보다 그래도 내 미래를 생각하고 내 앞날을 생각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참 귀하다. ‘’
평소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나처럼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이들도 참 많고
나에 대해, 각자의 삶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수 있었던 지금 이런 귀한 시간이 전혀 없이 살아가는 마흔의 남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도 생각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마흔의 길을 걷는 나에게는 얼마나 축복이요 은혜가 아니겠는가?
나름 바쁘게 살았을 때는 보지도 못했고 더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그분도 이 시간들을 통해 좀 더 생각하고 점검해 보라고 하시는 은혜의 시간을 나한테 허락하시지 않았을까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갈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나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큰 거름이 될 줄 믿는다.
당장 바뀌지 않고, 변화되지 않겠지만 나에게 허락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