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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man Sep 03. 2023

노멀 한 인간, 평범한 인간

노멀 한 인간, 평범한 인간

24.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급히 가다가 문에 새끼발가락을 찌개 되면 며칠간 온몸이 아프다.      

어찌하다 손가락을 베개 되면 정말 며칠간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작게 다치더라도 하루 종일 신경 쓰게 만들며 도리어 일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온통 다친 것을 신경 쓰게 만든다.           

이상하게도 다치면 또 다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픈 새끼발가락을 한 번 더 다치는 경우가 있어 제법 아무를 때쯤 또 다쳐 몸과 마음까지 고생하는 경우도 참 많다.           

인생 또한 이러한 아픔과 상처들이 원치 않게 계속 밀려오곤 한다.     

다친데 또 다치면서, 아무런 곳에 또다시 물집이 잡힐 정도로 계속적인 아픔과 고통은 우리의 인생과도 똑같은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보기 싫은 상사 때문에, 

막말하는 동료들 때문에 아무런 내 마음에 또다시 상처로 덥입힐때가 제법 많았다.           

요즘 들어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물밀듯 감당하지 못할 만큼 밀려온다.     

상처를 주는 것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저 생각나는 데로 이야기하는 듯한 기분이다.      

제일 나쁜 것은 자기를 빛나기 위해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사람들을 짓눌러버리는 것이다.     

아마 자기가 얼마나 나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미칠 노릇이다.           

손발을 맞힌 것이 얼마나 되었나?     

지금도 무단히 맞히려고 노력하는데, 그저 못한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가 참 슬프기만 하다.     

열심을 다하는데,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을 다하는데도 모든 것을 챙겨 먹으려고 하지 말라며 애쓰는 지금 나의 모습에 한 톨도 수고했다 고생했다 염려하는 말을 일체 없다.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사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을 다하는 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과거의 일들이 오늘따라 많이 생각나게 된다. 어찌 보면 그때도 날 힘들게 했는데, 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저 낙심될 뿐이다.           

앞에서 보는 것과 실제와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안쓰러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절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나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를 주고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런데 나 또한 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뿔난 황소를 진정시키지 못했을 거야라며 나름 나를 위로한 적이 있다. 옳은 소리를 하는 자로서 말이다.           

솔직히 직접 당해보고 경험해 보니 나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인생길에 이유 없는 것은 하나도 없듯이 사람과의 어려움 등이 나름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성내는 자도 이유가 있고, 높은 자도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당하는 자도 이유가 있고, 질러대는 자도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서로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양보하고 맞히면 좋으련만 이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 말이 옳다며     

자기가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버리는 황소 같은 그 모습이 참 안쓰럽기만 하다.           

요즘 들어 참 상처가 깊게 베어서 그저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참 크다.     

늘 언제나 이러한 마음의 갈등들이 늘 있었고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노력하지만 깊게 베인 나의 상처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아 힘들게만 느껴질 뿐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사람들에게 위로받으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그 말이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그 상처를 내 마음에서 더 깊게 뿌리내리지 않도록 무단히 노력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문 듯해보게 된다.           

짧은 인생 속에서, 사람들에게 줄기차게 상처를 받는다.     

피하는 것보다 그저 무덤덤히 받아들이기는 것이 나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그리고 그저 피해자라고만 느끼겠지만     

어느 순간 내가 남들에게 지우지 못할 큰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부터 가장 친하고 가까운 가족까지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머뭇거리지 않지만 그래도 조심히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사람들이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하는 것이 때론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든 내 마음 깊이까지 뿌리내리고 파고들지 않도록 나름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살펴보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는 알아줄 날이 있겠지?     

언젠가는 그놈의 상처를 밟고 일어설 날이 있겠지?     

언젠가는 남들의 상처까지 살펴봐주며 치료해 주는 사람으로 되겠지?          

오늘은 그 사람들을 불평하기보다 내게 주어지고 허락된 그 길만 간다. 


25. 노멀 한 인간, 평범한 인간     

새로운 곳에 왔더니 기존 나름 만들어진 문화들이 있다.     

명확하지도 않고 확실치 않아 매일매일 참 혼란스럽게 만들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잘 모를 정도다.           

어느 때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똑같이 그런 모습을 비추게 되면 일하지 않는다는 핀잔을 줄 때가 제법 있다.           

나름 나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망신을 주는 모습이 참 싫다.      

보고라는 말조차 참 권위적인 말이라며 절대 쓰지 말라고 하더니     

결국 말하지 않아 당황해할 때면 왜 이야기하지 않았냐며 왜 맘대로 했냐고 나무라는 그의 모습이 참 싫다.           

바쁜 척하지 말라하고 좀 더 여유 있게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하면서     

일주에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없을 만큼 자지를 자주 비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대로 잘 진행되지 않으면 조급함이 더해져만 가고, 오죽 답답했는지 직접 하게 되면 생각보다 잘 안 되는 모습에 무지 당황스러워한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어떨까? 단지 지금 내가 잘 모른다고 치부해 버리는 모습에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모르겠다. 익숙한 문화 일지는 모르나 내가 보기에는 잘못된 것에 너무 익숙해 있는 그들의 모습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바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절차도 없고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름 잘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다.           

나랑 손발 맞춘 지 얼마나 오래되었다고 예전 사람을 그리워하고 비교하는 모습을 자주 비춰주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손발 맞출 것이 산더미로 쌓여있는데 말이다.           

뱉으면 그만이 아닌데 왜 이리 거르지 않고 뱉어 버리는 걸까?     

그만큼 내가 무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들어보면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닌데 말이다.          

앞서 가는 것 같아, 어설프게 하는 것 같아 무진장 불안하고 걱정하는 눈치다.           

새로운 곳, 최선을 다해 열심을 다하고 있는데 계속적인 이중 메시지가 참 혼란스럽게만 한다.          

어쩔 때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데, 어쩔 때는 또 다른 말로 포장을 하고 있으니 듣는 이들의 참 혼란하게 느끼곤 한다. 정말 그것이 원하는 모습인가? 그리 만족해하는 모습이 무지 당황스럽다.     

내가 무엇을 고칠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어설프고 부족한 이러한 문화에 푹 빠져서 그들과 같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누가 옳고 틀렸다기보다는 나는 그들의 문화에 맞지 않다.           

이렇게 가다 보면 내가 더 많이 힘들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바꾸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다고 무자비하게 칼날로 난도질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천천히 익숙한 것들을 고쳐나가자는 것이다.           

때론 내 생각에 휩싸여 무자비하게 난도질을 할까 봐 조심히 한 분과 진지한 대화를 걸었다.     

깊은 대화는 아니지만 또 다른 자의 생각은 어떤지 그리고 내가 너무 협소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기대하지 않는 만큼 정말 당황스러운 답변이었다.     

공감을 하나 도리어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지금도 별로 좋지 않는데 정말 익숙한 그들이 더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깨려면 희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생각이 깨져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몇십 년 동안 그렇게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데 내가 어찌 바꿀 수 있느겠냐만은 그래도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사실 두려운 부분이다.           

“내 자리가 칭찬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온갖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 길을 걸었다.     

때론 너무 힘들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많이 넘어지기는 했지만 결국 나는 그 길을 걸었다.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아마 당황해할 것이다. 아마 온갖 모함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네가 뭔데 바꾸려고 하는데, 너무 앞서지 말라며 타이를 수도 있다. 그렇지 그런 반응이 제법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고 당황스러운 그런 환경에서 그렇게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무난하게 사는 거? 좋지만 그래도 변화돼야 바뀌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짧은 인생을 살펴보면 이런 일들이 제법 많았다. 사람과 싸우고 조직과 싸우고 환경과 싸웠다.     

할 소리는 하면서 말이다(그러면서 어린 친구들이 옳은 소리를 하면 화내면서 말이다).          

그냥 무난하게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튀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옳은지 모르겠다. 때가 되었을 때 바뀌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무엇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평범하게 사는 11가지 방법          

1.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어라     

2. 권위에 도전하지 마라     

3. 무엇인가를 배우러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니까 가는 것이다     

4. 일주일 40시간 근무 중 10시간만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거다     

5. 해외여행은 일생 동안 한두 번만 가되, 남들 다 가는 안전한 곳으로만 가라     

6. 집은 가능한 대출로 사고 평생 갚아라     

7. 외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지 마라. 결국 모두가 영어를 쓸 테니     

8. 책을 써볼까 생각하지만 절대로 쓰지 않는다     

9. 사업을 할까 생각하지만 절대로 시작하지 않는다     

10. 튀거나 이목을 끌지 마라     

11. 주어진 것만 선택하라     

12. 제대로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이 잠들다     

*출처: https://kickthecompany.com/entry/평범하게-사는-11가지-방법[직장생활연구소:티스토리]          

답답한 세상과 환경이 때론 힘들게 하고 큰 도전거리를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세상을 좀 더 노멀 하게 살려면 사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옳은 길인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 길을 그저 묵묵히 가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튀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때론 이웃들과 그저 연합하여 사는 것, 내가 바꾸려고 악착스럽게 사는 것보다 물 흐르듯 그렇게 사는 것. 절대 바보가 아니라 비겁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 참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26. 선택     

우리는 살면서 수 없이 선택을 한다. 때론 잘못된 선택으로 난감할 때가 제법 있어도 말이다.      

최근 함께 일하는 직원의 실수와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책임자로서 제대로 판단해주지 못한 나의 실수도 제법 크다.      

나의 실수를 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참 어리석은 행동들을 할 때가 있다. 누구를 탓하겠냐만은 나 또한 그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잊고 싶은 실수들이 제법 많았다.      

당장 힘들어서 무작정 선택한 직장생활이 참 지옥 같았다. 

좋다고 해서 무작정 연애를 시작했는데 결국 3개월 만에 헤어짐을 맛보게 되었다. 

한번 해보겠다고 자신 있게 선택했는데 남들이 겪지 못할 개고생을 깊게 맛보게 되었다. 

화를 지르면 안 되고 참아야 하는데 내 감정에 충실해서 화를 질렀더니 큰 상처로 돌아왔다. 

더러워서 그만뒀는데 결국 갈 곳이 없는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화내기 싫고 지적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더니 더 큰 짐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잘못된 직원 그래도 감싸줬는데 결국 돌아온 것은 배신이고 비난뿐이었다.      

늘 후회했다. 아니 지금도 그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할 지경이다. 

그때 한번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해도 늦지 않았는데 왜 그리 바보처럼 급히 판단하고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점차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의 실수보다는 남들의 실수를 덮어주고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었다. 왜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했냐며 불호령을 내리고 싶지만 그도 나와 같이 잘못된 판단으로 호되고 혼쭐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워 그냥 참기만 한다.      

억울한 마음도 들겠고, 화도 나는데 직원들 앞에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참 힘들다.

사람으로서 그런 판단을 했나요라고 따질 법도 한데 그저 내 마음에 깊은 묻어 놓은 한 리더의 모습이 그저 존경스러우면서도 안쓰럽기만 하다. 내 앞에서는 솔직한 마음을 전하며 속상한 마음이 내 마음 깊이 전해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그저 듣기만 할 뿐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보다 그의 말에 그저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나 나름대로의 행동이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위로나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선택의 갈등은 늘 일어나는 것 같다. 알면서도 실수하는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하기만 하다.      

“선택의 갈등은 신경 결정 시스템 간의 충돌”     

스와이스 연구원은 “이 같은 과업들은 한 손에는 실제로 원하는 것을 갖고 있고, 다른 손에는 그보다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갈등 아래에 놓여있는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나타낸다”라고 말했다.

(츨차: https://www.sciencetimes.co.kr, 2018.07.16. 잘못된 선택에 집착하는 이유)

아마도 결정을 하는 순간 아마 여러 과업들이 나타났고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빠른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모하지만 최고의 결정을 나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람이 어째 그런 행동을?”     

이런 논리로 모든 실수를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실수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는 시간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너무나도 신중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아마도 우리 안에 실패하는 나름 두려움이 가득 차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과감하게 결정하고 나름의 스타일로 나가면 되겠지만 인생이 꼭 그렇게 흘러가지 않으니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결정은 마지막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좋은 결정과 나쁜 결정이라는 기준은 결정 이후에 좌우되며, 결정 이후 결정을 자신의 것으로 이끄는 것이 결정 자체보다 중요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잘모소딘 선택을 성공으로 만드는 법칙 ‘당신의 결절은 언제나 옳다’)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그런 선택도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만 그 영역은 그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이 든다. 보여주지 않고 내다볼 수 없게 한 이유는 바로 내다보는 그것이 도리어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좋으면 모르겠지만 인생이 그리 평탄하거나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선택이 곧 후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힘을 쓰며 애써 그 일들을 이루어나가고자 한다. 지금도 아마 최선이고 최고의 자리가 아닐지는 모르나 그래도 이 자리가 아마 나를 회복시키고 더욱 나아지게 만드는 그 어떠한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하루마다 지금의 선택을 후회한다. 그러면서 어쨌든 깊은 후회로 남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을 다한다. 때론 바로 포기하지 못하는 못난 내 모습을 도리어 후회하기도 하지만, 지금보다는 더 좋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채워가지만 그래도 지금 내 자리에 최선을 다한다.                                                        


27. 해프닝     

몸이 좋지 않았다.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아픈 것 같아서 자가 키트 검사(신속항원검사)를 했다. 1줄이라는 음성 판정을 받고 몸살이 났나, 체했나 싶었다. 다행히 코로나가 아니었음을 안심하면서 말이다.           

아무 일 없겠지라는 생각에 자가 키트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내일 행사 준비에 바빴다.          

내일 행사 준비로 정신없이 보내다가 잠시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오전에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자가키트가 2 줄 된 것을 확인한 순간 당황스러웠다.      

오전에는 한 줄이었는데 점심에 갑자기 2줄이 되어버렸을까?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당황도 잠시 부리나케 몸을 움직여 양성이라는 것을 직원들에게 알렸다. 갑자기 들은 소식에 놀랐는지 많은 이들이 놀라면서도 또 코로나 걸렸냐며 핀잔과 눈치를 주는 모습이었다.           

‘내가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닌데?’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이 아닌데, 꼭 저렇게 이야기를 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속상한 마음,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몇 개월 동안 평가 준비하랴, 코로나 코호트 판정 때문에 참 정신없이 보냈다.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피곤해도 피곤한 척하지 못했다. 3월에 코로나가 처음 걸리고 두 번째로 걸려서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정신없이 자리를 정리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이번 격리는 어떻게 처리하실 거예요? 병가예요? 연차예요?”     

당황스러우면서 몸이 아픈 나에게 꼭 저렇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무례한 이들의 말이 참 화나게 만들기도 했다.                     

어쨌든 양성반응이 나왔으니 어쩌겠나? 함께 사는 가족들 걱정만 들었다. 오늘 아침 너무 이뻐서 아이들을 수백 번 뽀뽀도 해줬는데... 이걸 어째?          

더 확실한 결과를 알기 위해서 보건소에 잠시 들려 pcr검사를 했다. 정말 많은 이들이 아직도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고 하는데 평일 낮에 왜 그리 사람이 많은지?          

집에 오자마자 입었던 옷은 세탁을 하고, 온몸을 정성껏 참 오랫동안 목욕을 했다.      

그리고 자는 방에 깊이 들어가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격리를 다시 시작하였다.           

코로나 결과가 아직 확실히 나오지 않았는데, 신속항원검사 결과 두줄이 나왔기에 나는 코로나 확진을 확신했다. 그래서 신속히 격리를 시작했고 누구와의 만남을 일제 차단해 버렸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잠도 많이 오기도 하지만 온몸이 쑤신 것 같아 이번 코로나도 그냥 넘기지 않겠구나 며칠간 고생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시간이 되면 아내가 평소와 다르게 먹을 음식과 간식을 챙겨주었다. 먹고 싶은 게 뭔지, 부족하지 않은지 참 친절하게 물어보면서 말이다.           

이러한 황제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격리된 나를 돌보면서 딸린 3 아이도 함께 돌보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매우 컸다.           

이른 저녁 8시부터 잠을 청했다. 몸이 여전히 좋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잠을 청하게 되었다.      

밤새 온몸이 쑤셔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아파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다음날 아침 코로나 검사 결과를 나온다고 하니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다. 확진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혹시나 해서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다. 8시가 지나서 한통의 문자가 왔다. 전산 오류로 인하여 12경에 다시 결과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확진을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늦게 알려주는 건가? 갑자기 전산오류는 뭐여?          

12시까지 시간이 참 길게만 느껴졌다. 코로나가 맞냐 않맞냐라는 사실만 알면 되는 일인데 괜히 늦는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이 더욱 들었다.           

12시가 지나도 연락이 없길래 직접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를 알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내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말한 이야기     

“네~확인되었고요 코로나 음성입니다”     

“아니 어제 신속항원검사를 받아서 2줄 나왔는데 왜 코로나 음성일까요?”          

엄청난 충격과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따질 수 없는 노릇이라서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회사에 신속히 알렸다. 음성의 소식을 알리면서 말이다.           

아마 몇 달 동안 평가 준비하랴, 코로나 막으랴, 논문 준비하랴 등등 너무나도 피곤해서 몸살감기가 걸렸고 그것이 자가 키트로 양성으로 판정되었나 보다.       

삶을 살다 보면 이해되지 못하는 해프닝이 참 많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 무엇보다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해프닝이 수없이 찾아온다.           

해프닝, happening     

우연히 일어난 일. 또는, 우발적인 사건. 순화어는 `웃음거리', `우발 사건'.          

중요한 것은 이런 해프닝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이다. 나는 이런 해프닝이 참 편치 않다.      

자주 해프닝이 일어나는 것 같아 삶 전체가 꾸준히 나아가는 것보다 끊어지는 것 같아 불쾌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가득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을 많이 겪게 된다. 한 번의 해프닝이라고 하면 그냥 웃어넘길만한 한데 자주 일어나는 해프닝은 솔직히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왜 나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거냐며 한탄하기 일쑤이다.           

해프닝은 바삐 살아가는 삶을 잠시 멈출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된다.      

왜 나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함께 해보게 된다.           

**하인리히의 법칙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또는 1:29:300의 법칙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으로,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살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잘못된 점을 시정하면 대형사고 또는 실패를 방지할 수 있지만, 징후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로 말하자면, 소 한 마리를 잃었을 때 외양간을 고치면 그나마 남은 소들이라도 지킬 수 있지만, 소들을 다 잃어버린 뒤에는 어떤 짓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인리히 법칙은 현장에서의 재해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나 재난, 또는 사회적·경제적·개인적 위기나 실패와 관련된 법칙으로 확장되어 해석되고 있다.     

(참고: https://namu.wiki/w/하인리히의 법칙)          

또한 해프닝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 해프닝을 웃어넘길 법도 한데 너무나도 깊이 생각하는 것도 참 문제인 듯싶다. 자주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너무나도 깊게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너무 아무런 일 없듯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해프닝은 삶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드는 웃지 못할 일들인 것 같다. 고르지 못한 삶에서 해프닝을 통해 좀 더 나아지고 수정된다면 꼭 해프닝이 안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찌 보면 이런 해프닝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일부라고 생각된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삶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하여튼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출근을 안 해도 되는데 다시 출근해야 하니 그것도 참 씁쓸하다.


28. 첫인상과 오해 풀기     

요즘은 PR시대라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찌 되었든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자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잘 몰라서 그렇지 각양각색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것을 보면 참 놀랍기도 하다.           

나름 나도 SNS을 통해 나를 소개하고 안내하고 있다. 나름 나의 자랑을 다소 섞어가면서 나를 사용해 달라고 이리저리 소개하고 알리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반응은 썩 좋지 않다. 나 또한 이런 방식들이 썩 자연스럽지 않아서 썩 내키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들을 포함한 지인들의 반응 또한 썩 좋지 만은 않다. 도리어 친분이 있다고 해서 못할 말까지 스스럼없이 내뱉는 모습이 제법 많은 상처를 받곤 하였다.           

내가 그렇게 자랑했나? 싶을 정도로 지인들의 반응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 새롭게 옮긴 직장 내에서도 썩 좋지 않은 반응이었다. 당연히 업무 외 시간에, 주말이나 퇴근 이후 저녁에 힘썼던 일들인데도 나의 이야기가 썩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현재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적인 일들에만 집중하냐며 비아냥거리는 것에 무지 화가 나기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칭찬을 못할지언정 비아냥거리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물어보지도 않고 그저 판단해 버린 지인들이 참 섭섭했다.          

그런데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커디 교수가 이야기한 것이 나의 마음을 다소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첫 만남에서 따뜻함과 유능함으로 상대 발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더 중요하고 우선하는 것은 따뜻함이고, 따뜻함으로 먼저 신뢰를 얻어야 비로소 유능함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신뢰관계가 형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능력을 뽐내면 도리어 역효과를 불어올 수 있다. 타인의 능력은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참고: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웅진 지식하우스)          

아마 나는 친하다고 생각했고 신뢰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혼자만의 착각이었나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래서 나를 좀 더 알리기보다 나의 주변에 있는 이들과 신뢰감을 쌓기 위해 무단히 노력 중에 있다. 신뢰감을 쌓기 위한 노력이 쉽지는 않은데 말이다.           

어느 날 주말 저녁 한 지인이 전화가 왔다. 걱정스러운 말투로,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반갑게 받은 전화가 도리어 마음이 참 불편했다.           

“SNS를 하지 말아라!”     

“좋게 생각하지 않으니 SNS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아끼고 있으니 절대 SNS를 하지 말고, 너의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해 가만히 있어라!” 이런 이야기였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싶을 정도로 지인의 말의 모두가 내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해할 정도로 SNS에 사진을 올렸나? 나의 개인적 영역인데도 남들 눈치 보며 멈춰야 하는 것인지 제안한 것이 정말 옳은 방법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몇 개의 게시물이 남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이야기한 지인의 SNS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들이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왜 남들의 이야기에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할 소리는 다하는 이중적인 그들의 모습이 참 이상하게만 보인다.           

나 또한 완벽한 사람이 아닌지라 실수할 수도 있는데 실수와 부족함을 왜 이리 탓하는 것일까?     

자기 삶에 대한 집중보다는 남들의 인생에 훈수만 두려는 무례한 이들의 모습이 참 안쓰럽기만 하다.           

많은 SNS 친구 중에 나름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의 다하는 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때론 부럽기도 하면서 그들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구나라는 씁쓸한 마음도 들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자랑이 나한테도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첫마디부터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응원하기보다는 그저 비아냥거리는 나의 모습도 보게 된다. 나 또한 나를 비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제법 많이 놀라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말을 줄이기로 했고, 알리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다.      

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의 삶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다. 괜한 구설수와 원치 않는 비판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간은 평소답지 않아서 어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제하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한순간에 바뀌지 않겠지만 점차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불필요한 것에 집중했던 것을 지우고 정말 필요한 것 나의 삶에 좀 더 관심 있게 살펴볼 수 있어서 지금의 삶이 전보다 후련하다.      

사실 나를 모르면 어떡하지? 내가 알려지지 않아서 사용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러한 쓸데없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남들의 인정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들 속에 최선을 다했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남들이 자연스럽게 말해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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