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man Sep 03. 2023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6. 다시 회복하기 위한 노력     

예전처럼 그렇게 살지는 못하겠지만 과거의 실수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 아침 새벽부터 애를 쓴다. 비록 피곤한 출근길이지만 다시 회복할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음만은 가볍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친구가 내 꿈에 나타났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친구와 한바탕 싸우다가 일방적으로 맞고 있다가 잠이 깨고 말았다. 그 시간은 새벽 3시 30분 무렵이었다.    

    

그 꿈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 완전 잠에서 깨고 말았고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뒤처졌지만 결국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출근길 내내 그 꿈이 잊히지 않았다. 결국 그 꿈이 왜 갑자기 꾸었는지 생각해 보면서 지난 몇 년간의 삶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일하는 곳이 참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지난 몇 년간의 삶들이 나의 마음을 더욱 어렵게 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로지 억울하게 당하고만 했던 그때가 참 많이 힘들게 했고, 여전히 그곳에서 연락이 와서 내가 있을 때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질타의 소리에 그저 답답하고 힘들기만 했다.       

    

어찌 보면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지 꿈에서 고스란히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표현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몇 달간 내 마음은 늘 부담스럽고 어려우기만 했다.           


그래도 그래도 다시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잘 나갔을 때처럼 다시 회복되기보다는 보다 겸손하게,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한다.          

 

새롭게 일한 곳은 참 좋다. 이렇게 존중받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이런 대접이 다소 의아스럽지만 나를 그대로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하고 싶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다. 이곳에서 예전과 같은 일들이 다시 한번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예전과 다른 업무와 더 많아진 일들이지만 이것조차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지내는 그 모든 분들이 참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저 몸이 불편하여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지만 그의 미소와 순진함은 나를 더욱 몸을 낮추고 감사함이 더해져만 간다.           


출근하는 나에게 먼저 인사해 주며 멋진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분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나에게 물 한잔을 건네는 분들, 기쁜 일이 있을 때 나에게 와서 고스란히 전해주는 이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나에게 와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네주는 이들 모두 나에게는 참 감사한 분들이다.          

 

이런 대접이 참 낯설다. 어찌 보면 내가 더욱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그들의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 덕분이 아닐까 싶다. 더욱 예전 높아지려고만 하고, 자랑하기 바쁘고, 한참 교만했던 나의 모습이 그들의 순수함에 비칠 때에 더욱 부끄러움이 더해져만 간다. 그들의 순수함이 나를 더욱 겸허하게 만든다.      

  

새로운 배려와 사랑이 아직은 참 낯설기는 하지만 온갖 상처받은 내 마음이 조금씩 채워가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처음 맛보는 배려와 사랑이지만 이 사랑이 나를 더욱 부드럽게, 온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함께 해보게 된다.       

    

예전처럼 부정을 저지르고 싶지 않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 좀 더 투명하게 살아야 했고 좀 더 성실하게 살아야만 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시 회복되어 다시 일어서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오랫동안 기다림 가운데 결단을 내리신 그분의 기다림이 참 놀랍기만 하다. 결국 어려움도 있었고 고난의 힘듬도 실제 있었지만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사람다움으로 조금씩 변화되는 내 모습에 놀랍기만 하다. 결국 이것이 은혜요 축복 아니겠는가?


7. 연단의 시간 속에서     

높아지고, 화려할 때는 나의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그저 괜찮다고만 생각했지 곧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동료들보다 더 잘났다. 친구들보다는 더욱 잘났다. 

애써 숨기려고 노력했건만 자연스럽게 나온 나의 모습이 참 그랬나 보다.           

욕심이 많았던 아이였다. 책 보는 것을 좋아했던 것보다는 책을 꾸준히 보며 대학교 교수가 된 작은아버지에 대한 부러움이 컸던 것 같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책을 들고 갔다. 길을 걸을 때에도 책을 보면서 순간순간 넘어지는 위험도 적지 않았다. 어딜 가도, 어디로 여행을 가도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책이었다. 분명 읽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나의 마음을 보다 든든하게 여기게 만든 것이었다.           


책과 한 몸이 된 나의 모습이 비록 낯설지만 남들의 시선 때문인지 맞지도 않는 어색한 모습이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쉬는 날이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거나, 서점을 가서 책을 보는 것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돈이 들지 않는 취미생활인 지라서 오랫동안 유지해 온 나의 취미생활이었지만 어찌 보면 남들의 시선 때문에 그런 삶이 유지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함께 해보게 된다.        


남들의 시선과 칭찬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당연히 남들의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겉모습이 아닌 내 마음과 전체적인 삶 가운데 곪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놀라웠다.   


얼마나 많은 메시지가 있었고 정신 차리라고 했을 텐데 그때는 참 몰랐다. 나답지 않았고 그저 남들의 시선과 판단에 따라 부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하기 일쑤였다.          


그 일이 벌어진 것은 벌써 2년이 다 지나간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시기였지만,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잊고 싶은 경험들이었지만... 어느새 눈을 떠보니 2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 한 기분이 들어서 허무한 기분도 들기는 하지만 더 넘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멋모르고 그저 잘난 멋에 살던 내가 작은 어려움의 시작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진 않았나 싶다. 예전처럼 남들의 시선과 판단에 휘둘리고 싶지 않으며, 하루하루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들이 매번 밀려올 뿐이다.           


부정한 일들을 하면서, 그것이 남들도 다 해왔던 일이라고 변명을 해놓았는데 결국 넘어짐 속에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했던 나를 더 깊이 보게 되었다.           


출근하는 길 가운데, 예전의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얼마나 억울한 마음이 드는지 예전처럼 화도 나고 분노가 가득 넘친다. 어찌 보면 남들이 아직도 나에 대하여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 커서 여전히 마음이 어렵고 힘이 드는가 보다.        

   

그러나 그 분노 속에서 나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

예전처럼 살지 말자라는 다짐을 수백 번 수천번 다시 해보게 된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다른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한다. 힘든 것에만 집중하게 되어서 내가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긴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볼 겨를도 솔직히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한꺼번에 여러 번 일어나 보니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가 버린 듯하다.       


이제야 보게 된 나의 삶을 천천히 돌이켜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된 어려움이고 고난일지라도 그것이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들었고 도리어 나를 연단하여 새로운 소망을 바라보게 되었다.           


늘 매사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했던 내가, 어떻게 하면 잘살고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유치한 질문이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이 참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들이 많이 들게 된다.           


왜 나한테 이런 어려움을 주세요?라고 부르짖은 적이 있었다.      


늦은 밤에 앞날이 두려워 살려달라고 부르짖은 적도 제법 있다.     

 

때 늦은 응답과 시원치 않는 듯한 응답에 하루하루가 참 버거울 뿐이었는데 이제야 돌이켜보니 부르짖기 전부터 그분은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부터 나를 차근차근 다듬고 계셨다. 커다란 역사를 통해 변화되기를 바랐던 나였는데, 천천히 그 일들을 벌써부터 역사하고 계심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더욱 낮아지고 낮아지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라는 고민보다는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참 감사하고, 예전과 다르게 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섬기겠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곳으로 온 것조차 참으로 감사하기에 남들의 시선과 평가는 그리 거슬리게 들리지 않는다. 전에 있었던 어려움에 대한 변명거리가 아니라 부족한 나를 연단하는 그분의 손길이 참 위대하여서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8.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전보다 마음이 참 편안하다. 혹시 몇 개월 뒤 과거와 같은 일들이 또 벌어질까 모르는 걱정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만큼의 고통스러움은 덜 한듯하다.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지만 여전히 그들을 향한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시간은 흐르는데 과거의 그날에 받았던 그 많은 상처들을 온전히 지우지 못한 결과인 것 같다.      


고통스러웠던 그날이 지난 간지 석 달이 지나간다. 여전히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두근두근거릴 만큼 힘이 드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한 이곳에서 덜 채워진 내 마음과 삶 가운데 보다 새로운 것들로 채우려는 그 시간들이 참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고 힘들 때 내 말을 먼저 들어준 사람에 대한 감사는 절대 잊지 못한다.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이들의 상처들도 잊어지지 않겠지만 나를 존중하고 붙들어준 그들의 마음과 손길은 절대 잊지 못한다. 예전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많은 일들을 하게 되어 벅차기보다는 그래도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서, 이제는 나의 삶을 살펴보며 나에게 작은 사랑이라도 줄 수 있는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를 붙들어준 이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매일매일 그 감사함을 되짚어본다. 잊지 않으려는 노력 이외에 내 마음 깊이 새겨놓으려는 그런 감사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예전과 다른 삶 그리고 약간은 버거워도 그 감사함으로 조금씩 지워가며 애써 노력하는 내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여전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에 대한 상처를 절대 지워지지 않았다. 새롭게 경험하는 사람들의 상처가 덮입여져서 또 다른 경험들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      


사실 억울한 마음이 제일 큰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도 억울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벌써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힌 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고 화가 나서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버젓이 일하는 그들과, 나름 살겠다고 억울한 사람 짓눌러 버리고 내쳐버린 그들의 모습이 참 싫어진다.     

 

내 눈에서 아른거리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은데 도리어 나를 향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앞서다 보니 하는 일들마다 오해가 더욱 심해지는 느낌이 든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며, 선을 적당히 지키는 것이 옳지만 너무나도 가까이했거나, 바보처럼 주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오늘따라 참 안쓰러워 보인다.      


매일매일 지나가는 출근길에 그들이 하루하루 바뀌어가며 생각이 난다. 잊으려고 해도 참 잊지 않아 진다. 

그때만 생각하면 이가 갈릴 정도로 억울한 마음이 들게 되면 지나가는 출근길이 참 괴롭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힐 만한데 여전히 깊이깊이 새겨놓는 내 모습이 왜 이런지 도대체 모르겠다.     


그분은 나에게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을 용서하라고 한다. 억울한 것들이 큰데 용서하라고 하니 사람의 의지로는 도대체 할 수 없는 일이다. 


용서해야 하는 이유 등을 생각해 보면, 용서해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과 삶 가운데 분노가 있고 복수가 있다면 내 삶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을 용서할 자신이 없다. 내 의지로는 내 머리로는 절대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들이 잊히기 시작했다. 가끔은 생각도 나고 화도 나기는 하지만 잠시 지나갈 뿐 예전만큼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다. 도리어 그렇게 살지 못했던 부분을 아쉬워하며 지금 내가 만나는 이에게 좀 더 친절하게, 사랑스럽게 대하고자 한다.      


살다 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광야 같은 고달픈 인생이 잠시 머무른다 하여도 그것이 나의 마음을 더욱 촉촉하게 만들거나,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는 것 같다. 어려움을 겪어봐야 어려운 사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고 힘들어봐야 나의 약함을 알면서 보다 낮아질 수 있다.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고 날 죽일 것 같은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결국 그들을 통해, 그 상황과 환경을 통해 나를 더욱 단련하시고자 했던 그분의 큰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더욱 경험하게 된다.      


이제야 내려놓을 수 있고, 이제야 그 사람들을 용서하고 잊을 수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은 쉬어도 용서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고통스러운 삶 고단스러운 삶 덕분에 조금이나마 바뀌어가는 이 삶이 참 행복하기만 하다.    

  

나를 존중해 주고 나를 인정해 준 사람     

나를 붙들어주고 일으켜준 사람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나와 같은 연약한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오로지 사람을 의지하고 바라보기보다는, 연약한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섣불리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기보다는 내가 남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존중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내가 남들에게 작은 상처라도 주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보인다. 


어느새 매서운 추위가 물러갔다. 봄이 언제쯤 올려나 싶은데 어느새 봄날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진다.      

그동안 힘들고 매서운 겨울이었지만, 외롭고 쓸쓸한 긴 겨울 같았지만     


기다리기 않아도 언제든 우리에게 다가오는 봄날처럼 나의 삶과 우리 인생의 따스한 봄날이 오리라 잔뜩 기대해 본다. 


9. 결국 걸렸습니다!     

조심히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말리면서 집에서만 있어라 다그치며 아들을 말리고 말렸지만 결국 우리 아들은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주말 저녁부터 계속 아프다며 칭얼대고 있길래 환절기에 한 번씩 걸리는 감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벌써 첫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우리 아이만 빼고 제법 많은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려 있었고 우리 아이의 앞뒤에 앉아있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벌써 코로나에 걸려 있어서 아직까지 걸리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코로나가 남들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지 점차 나에게도, 나의 가정에 이렇게 가까이 온 것도 모르고 혹여나 코로나에 걸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돌아다니는 몇몇의 무책임한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몸살도 나고, 머리도 아프다고 하더니 결국 목이 너무 아프다고 합니다.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목부터 먼저 건드는 모양입니다.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더니 목 쪽은 40도 가까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해열제라도 먹이면서 잠시 열이 내리곤 했는데 그것도 몇 분 지나 결국 열이 오른곤 했습니다. 목이 아프니 제대로 말할 수도 없고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아이가 아프니 엄마 아빠가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꼭 계획한 것은 아닌데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아이의 몸을 닦아주며 열을 내리려고 했고, 아이의 이마에 온도계를 대며 수시로 아이의 온도를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나도 그놈 덕분에, 코로나 덕분에 출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를 통해 또 다른 일들이 벌어질까 싶고, 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피해가 있을까 싶어 출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장애인 분들 조차 코로나에 노출되게 되면 일반 비장애인들보다 더욱 치명적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내 몸부터 조심해야겠지만 아들 방을 계속 들 나들며 아이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곤 했습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아침에 겨우 잠이 든 아이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안쓰러운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아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열이 오르면 해열재만 줄 수 있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도 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들 스스로 해결하라는 무책임한 모습인 것 같아 그저 마음이 쓰라리고 아플 뿐이었습니다.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밖에는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코로나 확진 후 3일째가 되어갑니다. 혹시나 다른 가족이 코로나에 걸릴까 봐 오늘도 PCR 검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무엇보다 돌이 지난 막내딸이 혹시나 코로나에 걸릴까 봐, 7살 둘째 아이가 코로나에 걸릴까 봐 나보다 더 걱정됩니다.          

 

첫째 아이가 코로나 확진된 날 둘째 아이도 몸이 안 좋았습니다. 첫째 형과 같이 있을 수 없어 다른 방에서 혼자 누워있었고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그저 토만 할 뿐이었습니다.           


둘째 아들도 혹시 코로나인가 싶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첫째 아이의 코로나 확진이라서 걱정될 만큼 아직 어리고 왜소한 아이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더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코로나가 아녔습니다. 그저 장염이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더 다행인 것은 막내딸이 아직까지 코로나 확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갓난아이가 코로나 확진이 되게 되면 정말 답이 없는 노릇입니다. 첫째 아이가 코로나에 걸려 이렇게 갓난아이를 데리고 PCR 검사, 신속항원 감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저 아빠랑 엄마랑 어디 놀러 가는 것 같아 그저 신기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결국 검사를 하며 작은 콧구멍에 긴 막대기를 쑤셔대는 것이 참 죽을 노릇입니다.       

    

오로지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 함께 애쓰는 아내도 결국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지칠 대로 지쳐서 쓰러져 누워있는데 아내는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보며, 살펴보며 아이들을 한 명도 아닌 3명을 함께 돌보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럽습니다.          

 

코로나를 상대하는 우리 식구가 걱정되셨는지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내용은 부모님 2명 모두 코로나 확진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누나 식구들도 코로나 확진이 되어서 난리 났다고 합니다. 나만 우리만 힘든 게 아닌가 봅니다. 결국 지나가야 할 부분이지만 제 곁에 있는 많은 이들이 참 많이 힘들어하고 버거워합니다.           


직장에 몇몇의 동료 직원들도 확진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어머니가 확진되어서 신송 항원검사를 받았는데, 결국 코로나 확진이라고 합니다. 한동안 재택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공백을 다른 누가 채워나가야 합니다. 나까지라도 자리에 있으면 좋으련만 나머지 남게 된 분들이 어찌 되었든 그 일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는 소식에 더 마음이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그런데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겨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치료제도 보이지 않고 운 좋지 않게 걸려버린 이놈의 코로나를 어떻게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저 코로나를 좀 더 일찍 걸리는 것이 더 나은가 싶습니다, 하여튼 이겨내야 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 놈 덕분에 강제 휴식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한 번 더 가족들을 살펴보는 시간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왔던 나로서는 좀 더 여유 있게 준비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가 결국 이 세상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큰 괴물처럼 코로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걸리지 않으면 최고로 좋겠지만 결국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처음이지만 낯설어하지 말고 당황해하지 말고 그저 그렇게 때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지금 나에게, 우리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속 시원하게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날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이것이 나의 일상임을 속 시원하게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시원한 봄바람이 나의 코를 스친다!’     

이전 01화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