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1.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울창한 나무를 보면 참으로 멋있어 보여서...
왠지 그 옆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길 한가운데 양 옆으로 세워져 있는 나무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후련하다.
다들 내 마음과 동일한지 나무 곁에서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곤 한다. 이용료 없이 그냥 내어준 울창한 나무들은 그 품위가 참 대단하게 느껴지곤 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후 봄부터 텃밭 가꾸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능숙하지 못하고 어설픈 솜씨로 땅을 일구며, 옹기종기 식물들을 땅에 심는다. 언젠가는 자라겠지라는 생각에 아들들에게도 잘 전해주지 못했던 정성들을 이놈들에게 쏟고 있다.
아침저녁 이놈들의 형편을 살펴보면서 목마른 것 같아 물을 듬뿍 주고, 축 내려앉는 것 같으면 기둥에 그들을 묶어 다시 살아있게 만들곤 했다. 따스한 햇빛보다 강렬한 태양 빛에 혹여나 타 죽지 않을까 싶어 한창 더운 여름날은 아침저녁 이상으로 관찰하고 신경을 더 써주었다.
어느덧 봄이 왔는데 어느새 여름이 왔고 가을이 지나 성큼 다가온 겨울이 온 것 같은 요즘에...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벌써 그들이 하고자 했던 것들은 다 끝난 바람에, 말년의 한 남자의 모습처럼 약간의 초라함이 풍겨져 있었다. 물을 줘도 먹지 않는 것 같고 이제 나 좀 정리해 달라고 몇 번이나 울부짖는 것은 소리가 들린 듯하다.
진짜 그들을 정리해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나의 텃밭을 좀 더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서 비싼 돈을 들여 대추나무 몇 그루를 사버렸다. 너무 커서 집 전체를 다 가리면 어떡하냐고 아내의 잔소리가 조금은 있었지만 그래도 울창한 것들을 기대하며 거금을 써버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크지 않는 몇 그루의 대추나무는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자라지 않아 아내 말대로 괜한 비싼 돈을 들었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크게 느껴졌다.
뿌리가 깊게 내려야 한다며 땅도 보다 깊게 팠고, 그놈들보다 더 많은 물을 주면서 하루하루 지극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좀 더 울창하길 바랐던 나무들은 제법 잘 자라지 않았다.
옆에 싶은 방울토마토나 오이 등은 따먹기 바쁘게 또 자라나고 있는데, 나무들은 자라는 것인지 아니면 죽은 건지 모를 정도로 하나도 바뀌지 않는 채 그냥 처음 본 그대로였다.
내 나무만 이런 건지, 하필 집 근처에 무럭무럭 자라난 울창한 나무들을 보면 나의 나무들은 그저 초라하기만 했다.
그저 더디게 자라는 나무인 것 같아 내심 속상하기만 하다.
텃밭에 자라나고 끝난 식물들의 화려함은 잠시 뿐이었다. 잠깐의 화려함이기는 하지만, 제법 나에게 준 것들이 제법 많아서 그런지 조금은 더 애정이 있었지만 금방 끝나고 말았다. 그 화려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들의 몰골은 참 불쌍하기만 하다. 죽기만 바라는 그들의 초라한 모습은 곧 쓰레기봉투로 가게 될 것이다.
나무가 높게 높게 자라려면 뿌리가 깊게 내려야 한다. 식물들은 약간의 뿌리를 내리고 그에 맞는 열매들을 나에게 줄 수 있지만 영원히 주지 못하며, 화려한 것 같은데 그것도 금방 끝난다. 혹여나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게 될 경우에는 화려한 것들조차 허무하게 없어져버린다.
나무는 그래서, 오랫동안 더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며 그래야 버티고 이길 수 있으며, 화려하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짧은 인생이지만 나 또한 많은 모진 어려움들이 있었다.
누구랑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왜 나만 힘든 것일까라는 생각에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르겠다. 죽을 것만 같았고 포기도 수 백번, 수 천 번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무럭무럭 자란 든든한 나무를 보면서 아마 나의 지금 어려움이 나무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뜻 들었다.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지만 모진 풍파와 어려움 때문에 힘들고 어렵지만 그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지금의 모진 고통이 곧 나를 든든한 나무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은 참 초라한 식물이고 죽을 것 같은 모습일지는 몰라도...
모진 어려움과 억울함 그리고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곧 나는 나무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쉼을 주고, 도움을 주며, 내 곁에 와서 사진을 찍는 그날이 꼭 오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당장 해결되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꼭 인생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직 때가 이르고, 좀 더 채워야 하겠지만 나 또한 울창한 나무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임을 믿는다.
그 높은 나무들도 그렇게 자라기 위해서 모진 풍파를 이겨냈고 더욱 많은 시간이 걸렸듯이 나 또한 높이 서있는 나무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걷고 있음을 나 또한 믿는다.
지금 당장 화려함을 보여주지 않아도 좋다. 지금 당장 무엇인가 만들어내지 않아도 좋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울창한 그런 나무가 될 것이기에 오늘도 내일도 버티고 이겨낸다.
2. 씁쓸한 뒷맛이 가득한 자몽의 매력
과일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자몽이다.
여름철에는 특히 찾아서 일부러 먹을 정도로 내 입맛을 사로잡은 과일이다.
인생 가운데 처음 만나본 자몽은 다른 과일에 비해 비쌌고 평소 먹지 않았던 낯선 과일이었기에 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과일이었다.
정말 우연히 먹게 된 자몽은 그리 달콤하거나 맛나지는 않았었다. 그저 씁쓸한 맛이 더욱 강해서 그런지 왜 이런 쓴 과일을 비싼 돈을 들여 사 먹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번 먹고 두 번 먹고 보니 처음과는 다르게 쓴맛보다는,
쓴 맛 뒤에 있는 달달한 맛이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말로 형용할 수는 없겠지만 묘한 그 맛이 참 특별했고 신기하기만 했고 기억하게 만들었다.
카페를 가서 음료를 시킬 때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몽주스나 자몽에이드 중심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었고, 내가 자몽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는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자몽에이드를 제법 많이 얻어먹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고되고 어려움이 이제야 끝이 나고 말았다. 아니 또 다른,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만 같아 조금은 불안하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끝나고 말았다. 너무나도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는지 전과 다르게 후유증이 제법 오래가는 듯하다. 다 내려놓고 잠을 청할 때에도 꿈에서 나오는 그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해서 저녁 밤과 새벽 밤이 너무나도 두렵기만 하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었어도 나부터는 바뀔 것이라는 어떠한 기대감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얼떨결에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한 얼떨결 한 시작이 곧 고통이요, 지옥 같을 것이라는 사실을 꿈에서라도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염려도 해주셨지만 이놈의 자신감은 그런 걱정과 염려들을 귀담아듣지도 못했다. 그때 그들의 충고들을 잘 듣고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야 후회하고 원망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때가 아직까지 후회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비판을 받을 줄, 이렇게 나쁜 사람이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 톨의 변명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악법을 저질러버린 그런 사람으로 낙인 시켜버렸다. 그래서 더 많이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 때론 분노의 마음이 가득한 것 같다.
그들은 내가 정말 잘못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겠고 그렇게 결론을 내려버린 그들의 모습이 내 눈앞에 아른거리게 되니,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불가능했다.
어느 누구 말대로 나는 너무나도 온실 가운데 자란 식물 같았다.
잔잔한 어려움 이외는 이렇게 쓰나미 같은 어려움과 고통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처음 맛본 이 어려움은 쓴 것도 쓴 것이지만 입으로 뱁지도 못하고 속만 쓰리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고 더욱 깊게 느껴지지 않지만 지금의 고통스러운 쓴 맛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몇 년 동안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지만, 씁쓸한 인생의 뒷맛이지만 제대로 된 인생의 길을 걷기 위한 또 다른 과정임을 나는 믿는다.
먼저 맛보는 것이 더욱 괜찮고 좋다. 고난도 없고 어려움 없이 평범하게 살다가 더욱 나이가 들어 갑작스럽게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보다는 좀 씁쓸하지만 지금이 더욱 낮다.
어찌 보면 지금에서야 인생의 쓴맛을 맛보고 있지만 나중에 더욱 나이가 들어서 더 해야 할 일들이 많기에 더욱 나아지고 성숙하기 위해 지금에서야 남들보다 먼저 그런 인생의 쓴맛을 맛보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함께 해보기도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러한 고난과 어려움, 인생의 쓴맛이 참 귀하다.
어느 이들보다 먼저 맛보게 된 것이 오늘따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기 전에, 스스로가 너무나도 견고화 되어 어느 정도의 충격도 끄덕하지 않고 변화조차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전에, 남들의 말도 듣지 않고 오로지 똥고집으로 살기 전에, 소소하지만 깊은 어려움 등으로 조금씩 변화되는 이 과정이 씁쓸하지만 인생의 단맛을 이제야 느끼고 경험하는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고난과 어려움이 없으면 좋은 것들에만 취해 낮음의 소중함을 느낄 수가 없다.
고난과 어려움으로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충분히 느껴보면서 좀 더 겸손해진다.
고난과 어려움이 없었다면 나와 동일하게 힘든 이들의 마음과 사정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의 쓴맛이 없었다면 그저 내 중심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함께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인생의 쓴맛이 없었다면 나의 부족함을 알 수 없게 되며, 발전하거나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없다.
자몽의 매력처럼 지금의 어려움이 참 많이 씁쓸하겠지만 그 언제인가 내가 변화되고 씁쓸한 맛 가운데 달콤한 맛을 내는 그런 참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계속 씹고 있는 씁쓸한 자몽을 목으로 넘기면서 또 다른 어려움의 가운데 허락된 선물들을 충분히 느껴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3. 영광의 상처
어릴 적 수돗가가 있는 집에서 살았다. 그렇다고 잘 사는 집은 아니었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허름한 집 한가운데에 수돗가가 당당히 자리 잡아 있었다.
어릴 적 그 수돗가에서 장난을 치며 놀게 되었는데, 실수로 수돗가에서 넘어져서 뾰족하게 솟아오른 철근에 무릎을 크게 찍여 평생 남을 영광의 흉터를 가지게 되었다.
나이를 먹어서도 변화되지 않는 무릎에 고스란히 남겨진 영광의 흉터는 어릴 적 참 장난스러웠던 어릴 적 때가 순간순간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심하게 장난을 쳐서 남겨진 작은 흉터 하나로 삶의 인생을 걸을 때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몸가짐을 좀 더 조심해야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몸에 남은 흉터는 다시는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일깨워 주기 위한 영광의 상처임을 이제야 깊게 깨닫게 된다. 더욱 나는 이런저런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그리고 흉터를 글로 남김으로써 또다시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수백 번, 수천번 다짐을 하곤 했다.
살다 보면 제법 많은 상처를 받는다. 꼭 나만 상처를 받는 것처럼, 나만 제일 많은 상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느 이들은 그것들을 털어내고 만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어느 이들은 상처를 털어내기보다는 더욱 숙성시키고 만다. 작은 상처가 점점 크게 만들어지게 돼서 복잡한 감정을 띠는 ‘흉터’가 결국 우리 마음 깊이 새겨지곤 한다.
흉터들은 치유되지 않으면 장벽이 쌓이고, 안전은 하겠지만 반면, 매우 제한된 공간에 스스로를 가둬 버릴 수 있다.(인생 전환의 심리학 수업, 2021, 미디어 숲)
30년 이상이 되고 묵은지가 되어버린 상처 그리고 흉터를 아직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하던지 그때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 때가 있다.
황 시투 안은 우선 마음속 흉터를 치유하고 안전을 위해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흉터는 잠재의식이 주는 일종의 깨우침이자 보호라고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없애려면 오직 그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인생 전환의 심리학 수업, 2021, 미디어 숲).
과거의 그 어떠한 상처와 흉터라고 이야기하여도 그것은 곧 과거의 일일 뿐이다.
지금 애쓴다고 해도 과거는 돌아오지 않으며 결국 또다시 상처를 더욱 받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래서 하루빨리 내려놓고 털어놓아야 한다.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서둘러야만 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외형적인 사건도, 그 누군가도 아닌,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만났던 사람에 대한 해석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그것은 때론 자신을 감옥에 가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를 설득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설득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 과거의 잘못이나 상처에만 매달려서는 우리 인생이 길게 갈 수 없다. 안타깝고 미안할수록 우리 인생에 늘 악몽이 된다. 이미 지나간 일을 우리는 바꾸지 못함으로 과거의 상처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배우며, 빛을 향해 나가 가며, 열심히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고 권한다(인생 전환의 심리학 수업, 2021, 미디어 숲).
40년 전부터 받아온 상처들은 참 많다. 정도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어찌 보면 나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참 바보처럼 아직도 그 상처들을 흉터로 만들어버렸고, 흉터가 없어질 때쯤 또다시 생각하여 더 깊고 회복하지 못하도록 영광의 상처를 만들어놓곤 했다.
1. 나를 왕따 시켜놓았던 친구들
2. 나를 못나게 보셨는지 늘 무시하셨던 담임선생님
3. 훈계 차원으로 매를 드셨던 선생님들
4. 오로지 무시하고 막말을 일삼았던 선후배들
5. 인정조차 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되었을 때 던져버렸던 상사들
6. 속상하다며 우정 따윈 없이 그저 단절했던 베스트 프렌드
7. 무례하게 대답하고 결국 문제를 일으켰던 몇몇의 직원들
8. 자기들의 실수는 모른 채 오로지 몰아세웠던 그 사람들
9. 함께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결국 뒤통수를 제대로 쳐버린 사람들
10. 능력 없다며 무시했던 사람들
11. 오로지 갈구기만 했던 군대 선임들
12. 괴롭힘으로 일자리에서 나가게 만들었던 사람들
13. 나를 향해 뒷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직원들
14.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오로지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렇게 아직도 기억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이렇게 적고 나니 참 바보처럼 아직도 마음뿐만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로 인해 제법 많은 상처를 받았다. 사실 남들에게 상처 준 것은 모른 채 내 상처만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실상 세상 사람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제일 많이 받은 것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보다 쉽게 상처받는 것이 일상일 텐데 내가 직접 받고 보니 상처의 크기가 깊고 매우 크다. 그러나 누구나 일상적으로 받은 상처라면 깊은 상처라고 할지라도 너무 오랫동안 그 상처에 매달리고 있는 것조차 곧 나에게 더 큰 상처와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살려면 그 영광의 상처를 없애는 것밖에는 없다!"
일상의 상처라면, 보다 쿨하게 넘어가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상처와 흉터가 남았다면 분명 이유가 있다고 본다.
흉터를 보면서 다시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만 끝나는 것이 좋지 상처와 흉터를 계속 묻어놓고 있다가 때에 따라 다시 꺼내어 또다시 상처를 받는 것은 몹쓸 짓인 것 같다.
사람은 분명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다. 그래서 상처와 흉터를 남길 수 있지만 그것의 영광으로만 남기지 오랫동안 품어야 하는 가치는 분명 없어 보인다.
최근 받은 제법 큰 상처와 흉터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벗어날 수 있었고 해결되었다고 믿는다면 이제는 그 상처와 흉터를 다시 꺼낼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나의 발목을 사로잡는 것보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더욱 집중하면서 사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와 같이 동일한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을 향해 원망하지 않는 것이다.
4. 내 마음에서 발견한 것
2020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수많은 오해와 어려움으로 때로는 무너지는 일들이 많았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서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점점 쌓이고 내 의지로 컨트롤 못할 만큼 선을 넘었을 때는 할 수 없이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시작이,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었을 때가 바로 2020년이었던 것 같다. 큰 어려움 없이 살았던 내가 온갖 오해로 인해, 내쳐 버린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나의 모든 것을 잃은 냥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점과 철저히 무너졌던 나의 모습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목회자의 신분으로서 부끄러운 짓을 일삼고 결국 나를 밖으로 내쫓아버린 그 사람 덕분에 의도하지 않게 오랫동안 쉬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오로지 집에서 지내야만 했던 그때 그 시절.
어렵게 들어간 곳이었지만 처음부터 감시하는 눈빛과 함께, 나의 작은 자존심마저 밟아버린 못난 그들 때문에 내 마음은 곪아 터져 버리고 말았다.
힘들었어도 참아냈다. 참아내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결국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일하곤 했다. 스스로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나 보다.
아니 최근 몇 년 동안 겪게 되는 그 모든 일들로 인해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내 안이 썩고 썩게 돼버렸다. 예전 같으면 며칠째 몸살감기처럼 여기고 보다 쉽게 털어놓았었는데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무기력하기도 하고 새롭게 해야 하는 일조차 자신이 없으며, 하루하루가 우울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혹여나 극단적인 쪽으로 생각할까 싶어 하루하루가 참 두렵고 어려웠다. 지인분들 조차도 과거의 일이니 털어놓으라고 염려해 주셨지만 마음같이 쉽게 털어내지 못했다.
아내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 주었던 아내는 내가 제법 걱정이 들었나 보다. 권유하는 아내의 말 가운데 심히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면서도 혹여나 나의 지금의 갈등이 아내까지 전도되지 않을까 싶어 심히 걱정되곤 했다.
휴가를 내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평소 어렵게 살고 힘들게 살던 이들을 돕는 데에 상담을 연결해 준 적은 있어도 내가 직접 상담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2020년 너무나도 힘들어서 정신과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내가 원했던 상담보다는 불면증이라며 일방적으로 수면 약을 처방해 주었던 그 의사 덕분에 더욱 누구한테 상담을 받는 것조차 꺼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너무나도 힘들었는지 나의 발걸음은 상담소로 향했다. 나의 마음을 잘 만져줄 것 같다는 작은 기대감과 함께 도리어 예전처럼 더 큰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싶어 발걸음 자체가 그리 가볍지는 않았었다.
상담하는 곳은 제법 한 사해 보였다. 안내하는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있지 않아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벌써 상담소 안에 마련된 상담실에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내한 상담실에 들어가 처음 본 상담사를 만났다. 제법 애 떼 보이는 그 상담사의 모습이 그저 낯설어 보이기만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담 전 미리 체크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미리 조사한 상담 내용은 사실 진실되고 솔직하게 작성해서 그런지 상담사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곧 나의 이야기였고, 상담사에게 나의 마음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나 내 마음과 맞는지 놀랍기도 하면서도 창피한 마음이 함께 공존했다.
나는 많지 않은 나이이지만 오랫동안 직장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적지 않는 마찰과 어려움이 있었다. 일로서 어려움을 겪은 것보다는 사람들과 어려움이 많았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로부터 절교 선언을 받았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직원조차 무시하며 힘들게만 했던 상사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고, 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던 직장 동료 때문에 제법 많이 힘들어서 다투기도 했고, 무례한 직원 덕분에 힘들었고, 리더의 모습보다는 결국 자기 사람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내쫓아버린 이사장 더분에 참 많이 힘들었고, 업무를 임의대로 배제하고 무례한 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다가 결국 그만두게 되었고, 옳은 일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판단하여 옳지 않은 일을 강요하고 밤낮 괴롭혔던 그 회장 덕분에 그만두게 되었고, 믿었던 이들 그리고 함께 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결국 뒤통수를 제대로 맞아 힘들었던 일들, 앞에서는 잘한 척 밝은 척하면서 결국 뒷이야기를 꺼냈던 그들... 내 머리에는 나를 힘들게만 했던 그들의 말과 행동들이 수차례 스쳐 지나간다. 평생 억울한 일들만 있는 것처럼 억울한 마음과 분노의 마음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텼다. 지금 현재 힘든 것도 모른 채 그저 숨기고 누른 상태에서 아무렇지 살아왔다. 그래서 결국 내 마음이 폭발했던 것 같다. 바보처럼 말이다.
일이 힘들기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었다. 대부분 사람들과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나름 마음에 품기보다는 벗어내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그저 누르기만 했다. 혹여나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숨기면서 큰 힘으로 눌러버리기만 했다.
개인적인 성격이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계속 안으로 숨기기만 했었다. 더욱 사람과의 어려움 때문인지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풀어가는 것보다는 더욱 그들을 경계하고 숨기만 더했었다.
오랫동안 내 안에 숨겨왔던 그 모든 일들을 상담사에게 들킨 것 같아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런데 내 마음을 직면하게 되니 도리어 희망을 찾게 되었다.
그저 숨기고 싶었던 그것들을 밖으로 나오게 됨으로써 또다시 희망과 기대를 해본다.
지금 막상 해야 할 일은 잘 알지 못하지만, 나의 모습을 직면함으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하면 좀 더 회복할 수 있을지라는 어느 정도의 방향과 방법들이 보여서 나름 만족된 상담이었다.
상담 내내 마음으로 눈물이 났다. 상담 과정에 혹여나 눈물을 흘리고 울컥할까 봐 제법 조심을 다했지만, 도와달라는 나의 마음의 울림이 더욱 울컥하게 하였다.
나는 왜 이리 마음의 울림을 듣지 않으려고만 했을까?
도와달라고, 만져달라고 수차례 이야기를 했건만 나는 왜 이리 무시하고 그저 직 누르기만 했을까? 그래서 미안했다. 남들의 시선에만 신경을 썼지 나의 울림에 신경 쓰지 못했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나의 마음에 더욱 가까이 가서 울림에 반응하고 좀 더 안아줄 생각이다. 남들의 판단과 시선 모두 다 필요가 없다. 곪아 터져 버린 나의 마음을 먼저 읽고 만져줘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살고 가족들이 산다.
5. 조심히 걷는 발걸음 속에서
그 험한 폭풍을 지난 지 2달 정도 지나갔다. 그날을 잊고 싶을 정도로 아직도 그날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 놀라기 일쑤다. 어찌나 밉고 화가 나는지 바보처럼 그들을 시원하게 버리지를 못한다.
나만 힘든 일이라고 생각이 더욱 들어서 그런지 예전의 일들이 더욱 커 보이거나, 더욱 악화된 것처럼 느껴져서 보다 쉽게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런데 그때처럼 살아가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 그리고 다짐을 수천번 반복하게 된다. 어찌 보면 그들을 향한 분노가 수그러질 때쯤 몇 번이나 다짐을 하곤 한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그들처럼 하지 말아야지, 다시 한번 그러한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지 작은 다이어리에 수천 번 적어가며 그 다짐을 되짚어본다.
다짐도 다짐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불쑥불쑥 생각되는 안일한 생각들 그리고 여전히 나타나는 분노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사람과 함께하는 일들이기에 만나는 이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경험과 경력을 가지고 왜 이리 사람들을 보다 쉽게 판단하고 평가를 하는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그들도 오래된 경력을 가지고도 아직도 변화지 않는 나를 향해 비난의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겠다.
밤 새 눈이 온 적이 있다. 잠을 잘 때 언제 이렇게 많이 왔는지 싶을 정도로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어느 누구도 밟지 않아서 발걸음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은 채 온통 하얗게 수놓은 전경이 참 아름답기만 하다.
어릴 적 아무도 밟지 않는 눈밭에 내 또래의 친구들은 자기만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나 또한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지금 새롭게 온 이곳에서 어찌 보면 하얗게 수놓은 이곳이 참 거룩하게 느껴져서 나 만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혹여나 잘못 남겨진 흔적 그리고 발자국이 남들에게는 상처이고 어려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걸음걸음 하나가 참 조심스러워진다.
몸을 사리게 된다.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싶은데 혹여나 오해가 되고, 거절될 것 같아 쉽사리 손을 내밀지 못한다. 더욱 잘못된 소문이 그들에게 전해졌을까 봐 나의 진심을 숨기기에 바쁘기도 하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잘못된 소문이라고 변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나 자신이 참 구차하게 느껴질 뿐이다.
다짐이 다짐이지만, 한껏 소심해진 내 모습이 참 부끄럽기만 하다.
하루하루 수천번 다짐을 해보곤 하는데, 한껏 소심해져 버린 내 모습 때문에 예전같이 않는 내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나서는 내 앞길이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아직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 내 마음이 문제인 듯싶다.
많은 이들도 나와 같이 고난의 연속으로 그저 그렇게 아님 예전의 것들에 붙들려서 살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참 바보처럼 말이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법이다. 완벽하면 인간이 아니다. 실수도 하고 넘어지면서 단련되고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아직도 그것 때문에 넘어지고 실수를 하지만 마음만큼은, 내 마음 안에는 그전에 느끼고 경험한 불안한 마음과 분노의 마음들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나 또한 변한다. 더 좋게 변화된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여전히 안 좋은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나의 삶을 천천히 걷는 데 있어서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실수를 했어도, 여전히 넘어져도 내 마음에는 좋은 것, 기쁜 것, 행복한 것들만 채우자. 어느새 할퀴고 단단히 상처받은 내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해 보자.
새롭게 온 이곳에서 어떻게 지낼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그리고 영원히 일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의 발걸음은 참 조심스럽다. 천천히 갈지라도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함께 하는 이들과 함께 행복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나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