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만 너무 놀고 자란거 같아 미안해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지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아침에 눈 뜨면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그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좁은 골목길 나지막한 뒷산 언덕도
매일 새로운 큰 놀이터
개울에 빠져 하나뿐인 옷을 버려도
깔깔 되며 서로 웃었지
어색한 표정에 단체사진 속에는
잊지 못할 내 어린 날 보물들
<자전거 탄 풍경_ 보물>
시험기간인 중1 아들, 숙제하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보고 있으니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4학년 작은 아이네 반은 18명이라는데,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은 한 반에 43명 정도가 있었다. 아이들은 너무 많고 교실은 부족해 학교 수업이 오전반, 오후반이 있었다.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제야 늦은 등교를 했었다. 늦게 끝나는 반이 있으면 복도 창문에 매달려 기다렸던 생각도 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작은아이(소룡이)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듣듯이 귀를 쫑긋 세운다. 분명한 건 국민학교 다닐 때 기억은 대부분 흐릿 하지만, 하루종일 놀았던 기억은 뚜렷하다.
벽돌을 갈아서 고춧가루라며 소꿉놀이를 하고, 분꽃을 따서 꽃받침을 살짝 잡아당겨 귀에 걸고, 귀걸이 놀이하다 한 번씩 꽃받침이 귀로 들어가 애를 먹기도 했다. 사루비아 꿀 따먹고, 해바라기씨를 먹던 시절이 진짜 있었다. 무시무시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무서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도 했다. 구름사다리 건너기를 하며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우리 어렸을 때 뭐 하고 놀았지 하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끝이 없었다. 비석치기, 다방구, 오징어, 돈가스까지 지금 온라인 게임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놀이가 존재했다. 코 찔찔 흘리면서 계절에 상관없이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비염과 축농증에 시달리면서 병원 한번 가지 않고, 너도 나도 코를 닦으며 놀았다.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 같겠지만 놀다 보면 해가 진 줄도 모르고 놀다 저녁 먹자 소리에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약속이나 한 듯 흩어졌다.
초등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교환일기를 쓰거나 몸을 비교적 덜 움직이는 놀이를 하며, 친구네 집에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매일매일 수다를 떨었다. 친구와 헤어지며 이따 통화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국민학교 시절은 지금의 초등학교 때 보다 더 많은 과목을 배우고, 시험도 많았는데 정말 많이 놀았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던 경기도 외곽의 우리 동네는 학원도, 다니는 아이들도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운동장에서 놀았다. 집에서 대충 날림으로 숙제를 하고 몇 시라고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공터에 모여 놀았다. (지금 우리나라에 공터라는 장소가 존재는 할까?) 종일 놀다 들어가 저녁을 먹고, 좋아하는 만화를 실컷보다 잠이 들었다. 요즘 말로 놀먹놀먹하던 시절이 초등학교였다.
중고등 시절부터는 새로운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래방, 삐삐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놀이 문화가 바뀌었다. 하교 후에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노래방에 가거나, 오락실에서 DDR을 했다. 삐삐가 생기면서 쉬는 시간에는 공중전화가 인산인해였다. 담치기를 해서 그 짧은 쉬는 시간에 학교 후문에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도 했다. 물론, 탈이 잘 나던 나는 애석하게도 학교 후문에서 군것질은 거의 못했지만 친구들과 담치기에 가담을 한 적은 더러 있었다. 학창 시절 놀이를 쓰다 보니, 공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냥 학창 시절은 거의 놀이의 연속이었다.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 제목처럼 그 시절은 나에게 소중하고, 영원히 잊지도 뺏앗기기도 싫은 인생의 보물로 남아 있다.
요즘 아이들은 주로 실내놀이터나 동영상을 보며 놀이를 한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친구를 만난다. 우리 때 놀이가 더 좋지, 지금은 그게 노는 것이냐고 말하며, 어떤 놀이가 더 좋은 거라 단정 지을 순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때의 우리가 아니므로 지금 놀이하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문화이다. 조금 아쉬운 것은 영상을 보며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뛰어놀며,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고, 몸으로 부딪히고 생각하며 규칙을 새롭게 만들며 놀이하지 못함에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최근에는 돈가스, 달팽이, 공기놀이, 실뜨기등의 국민학교 시절의 놀이를 초등학교에서 하기도 한다. 과거외 차이점은 달팽이나 1,2,3,4도 학교 바닥에 페인트로 그려져 있고, 공기, 실뜨기도 기성품을 활용하여 놀이하지만 친구끼리 서로 얼굴 보고 웃고 떠들고 놀이하는 것만으로 감사한게 현실이 되었다.
영어학원 한 군데 다니는 둘째 아이는 이제 4학년이 되어가고, 아직까지 영, 수학원으로만 버티고 있는 첫째 아이는 중2가 된다. 학업의 양은 더 많아지고, 다녀야 할 학원은 더 늘어나겠지? 놀이할 시간보다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안타까움은 알고 있지만 계속 놀고만 있으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 내내 놀았던 기억 뿐인 엄마는 옛날 생각에 조금 재밌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이번주에 기말고사가 끝나면 신나게 놀라고, 며칠은 좋아하는 게임만 실컷 하라고 가슴속에서 외치고 있지만,신나게 놀고, 학원은 빠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현실속 엄마인 내 마음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마음을 조금 더 단단히 먹고, 아이들을 오래오래 믿음으로 지켜봐주는 엄마의 모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