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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범규 Dec 12. 2021

좋은 심사역은 나쁜 심사역이다.

심사역과 창업가의 건설적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하여

"말은 다소 거칠어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ㅡ 존 메이너드 케인즈


작년, 벤처 투자 생태계에서는 시끌벅적했던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누구머니(Nugu Money)’ 라는, 스타트업이 익명으로 투자사에 대한 평가와 리뷰를 남길 수 있는 사이트가 등장한 것이다.


이 사이트가 나타난 직후 생성되는 투자사들에 대한 평가는 역시나 칭찬보단 네거티브 리뷰가 상당수를 차지했었다. 그 중 몇몇은 특히나 상세한 내용들이 담겨있었는데, 불성실한 투자심사 태도부터 성차별적 또는 과도한 공격적 피드백 등 투자사를 향한 폭로가 이목을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때의 리뷰들을 계기로 나는 창업팀과의 커뮤니케이션과 피드백 방법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딱딱해진 목의 힘을 빼는 반성이 필요했겠지만, 사실 투자 경험이 엄청나게 많지 않은 주니어 심사역인 나로써는 오히려 지나친 겸손과 회피적 태도를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업무 리소스의 가장 많은 부분을 새로운 창업팀들과 만나는 데에 쓰는 심사역은, 팀들과 미팅을 할 때마다 상당히 자주 ‘착한 심사역’ 과 ‘나쁜 심사역’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곤 한다. 이는 대부분 팀이 펼치는 사업과 성장 계획에 대한 피드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그 핵심은 ‘이 팀의 계획과 주장에 대해 심사역으로서 나름의 생각과 의견을 얼마만큼 솔직하게 전달할 것인가’에 있다.


창업팀이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방법은 너무나 쉽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팀이 듣고싶어하는 얘기가 훤히 보일때가 있고, 팀이 가진 장점 위주의 피드백만 하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 나는 얼마든지 ‘착한 심사역’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피드백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나쁜 심사역’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한다. 나는 이 팀과 오늘 처음 만났지만, 그리고 실제 최전선에서 삶을 걸고 뛰고있는 대표님들만큼 치열하게 그 고민을 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제3자로서 볼 수 있는 팀의 약점과 부족한 부분과 논리적 모순점 들을 적나라하게 건드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나의 둥글둥글한 성격 때문일까, 나의 부족한 전문성과 관계적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내 태도를 겸손과 칭찬이라는 미덕으로 포장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저 ‘착한 심사역’일 뿐, 절대 창업팀에게 그 이상의 무엇은 될 수 없었다. 


결국, 궁극적으로 팀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의 '좋은 심사역'은 만날 때마다 불편한 부분을 꼬집고 쓴 소리를 하는 ‘나쁜 심사역’ 일지도 모른다.


심사역으로서 팀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고, 팀의 성장 파트너로서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피드백이 낳을 수 있는 오해를 뛰어넘어 진심을 전하기 위해 조금은 공격적이 되는 것을 감수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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