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Drive)
'Drive'에는 두 가지 뜻이 공존한다. 하나는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운전'이고, 다른 하나는 '충동'이다. 영화 <드라이브>는 이 두 가지 의미를 한 데 아울러 고독한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를 온갖 똥폼을 다 잡으며 유려하게 그린다.
이름 없는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가 황금빛 전갈이 수놓아진 점퍼를 입고 등장한다. 낮에는 스턴트맨으로, 밤에는 범죄자들의 운전기사로 활동한다. 잠을 자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그는 마치 유령처럼 로스앤젤레스의 낮과 밤을 떠돈다. 무표정의 핏기 없는 얼굴로 시종일관 과묵한 드라이버는 좀처럼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가 생활하는 방은 언제나 정돈된 채로 사람 사는 티가 나지 않고,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는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 여자, 아이린(캐리 멀리건)을 만나며 무채색으로 일관하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루틴에서 벗어나면서 웃음과 더불어 피가 낭자한 색색의 풍경들이 드러난다.
화면은 스타일리시하고 주인공은 갖은 폼을 다 잡으며 음악은 심장 고동에 맞춰 끼를 부린다. <드라이브>는 과도하게 멋을 부리고 지나치게 무게를 잡는다. 내용 전개는 별다를 바 없이 진부하다. 과묵한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온몸을 "멋들어지게" 던지는 이야기. 영화는 이 이야기를 한결같이 아주 진지하게 이어나간다. 그럼에도 이런 개폼, 똥폼이 유치하지 않았던 것은 의외로 그 진부한 스토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드라이버는 사랑을 했는데, 사랑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욕망의 자리에 두고 영원히 그것을 향해 드라이브하는 자로 남길 택했다. 호명을 거부한 채 단지 수행자(performer)로, 즉 욕망을 향해 끊임없이 충동을 부추기는, 그리하여 질서에 구멍을 내고 위태롭게 하는 자리에 서 있기로 한 것이다.
드라이버는 낮이나 밤이나 두 세계의 경계 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낮에는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밤에는 법과 범죄 사이에서. 스턴트맨이라는 그의 존재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의문을 제기케 하고, 범죄자들을 도피시키는 운전기사라는 그의 존재는 현실 세계의 법 체계를 뒤흔든다. 환상 속에서도 속임수는 자행되고, 견고해 보이는 법과 질서에도 실은 수많은 빈틈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을 드라이버는 단지 운전하는 것만으로 폭로한다. 그렇지만 결코 완벽하게 노출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드라이버 자신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지키며 그것을 교묘히 위장하기 때문이다. 그가 대역을 하기에 영화는 영화로 기능하고, 범죄자들을 경찰들로부터 도피시키기에 경찰의 존재가 도리어 공포된다. 그렇게 드라이버는 드라이브[운전]를 통해 자신의 드라이브[충동]를 적당히 만족시켜왔다. 그런데 아이린이라는 대상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전환된다. 충동이 욕망이 될 때, 위장은 더 이상 불가능하고 만족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자취를 감춘다. 추동된 충동은 멈추기를 거부하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하기에 이른다.
아이린을 향한 드라이버의 욕망은 파괴적이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면서 동시에 부드럽고 아낌없으며 한없이 따뜻하다. 욕망은 결핍을 수반하고, 이 결핍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드라이버는 아이린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둔다. 거리를 지키며 다른 남자의 아내로 있기를 원한다. 그렇게 자신의 결핍으로 아이린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드라이버는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린의 남편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주저 없이 돕기로 한다. 그녀의 가족을 지킬 때 그 자신의 욕망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드라이버는 비로소 규칙에서 벗어난 일을 시도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마치 전갈과 개구리 우화에서 전갈이 자신을 등에 업은 개구리에게 독침을 쏘면 함께 물에 가라앉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고 마는 것처럼. 본성(nature)이기에 자신도 어쩔 수 없다. 욕망은 닿을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기로 달려든다. 그리고 이것은 본성이라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다. 이제 드라이버에게 법이나 질서, 환상은 의미를 상실한다. 두 영역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며 오히려 그것의 질서를 지켜왔던 그의 행위는 결을 달리한다. 폭력과 살인은 이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떤 위장이나 가면 없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드라이버는 단호히 질서를 부수고 그 바깥으로 나가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을 위태롭게 하기를 머뭇거리지 않는다.
영화 <드라이버>는 비극적이지도 않고 동화 같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처음 있던 그 자리로 다시 귀결한다. 드라이버는 차를 타고 다시 드라이브한다. 욕망은 여전히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있고, 그가 그 경계를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법과 질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견고하며, 충동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드라이버(driver)로 남는 한, 드라이브(drive)는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 반복 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영화는 우리가 인간인 한 바로 그럴 것이라고 비릿하게 웃으며 조롱한다. 아주 진지하게 개폼을 잡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