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문명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

by 수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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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삼손(로완 맥나마라)과 소녀 데릴라(마리사 깁슨)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좋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서로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다.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삼손과 데릴라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일컫는 '대화'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삼손은 슈퍼마켓 앞에서 데릴라를 불러 세우기 위해 그녀의 등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녀는 돌아보았고 삼손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기만 했다. 그 눈빛이 짜증의 눈빛이었는지, 의문의 눈빛이었는지, 애정의 눈빛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섞여있었을지도. 삼손도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는 처음으로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들이 행한 최초의 소통 방법은 원시적이고 극단적이다. 돌을 던지는 행위로 대상에게 충격을 가하고, 그 충격을 통해 마주한 두 인간이 직접적으로 충돌함으로써 소통의 계기를 마련했다.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언어를 통해 전달하지 않고 직접 행동함으로써 '대화'했다. 마치 '동물'처럼.


사람들은 종종 인간은 당연히 동물과 다르며 나아가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체계적인 언어를 통해 '말'을 함으로써 동물과는 다르다며 그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삼손과 데릴라는 마치 '동물'처럼 소통했다. 그들이 한 소통은 원시적이고 미개하며 비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그러나 도대체 원시적이고 미개한 것은 무엇이고, 문명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인간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란 무엇인가?』(배영란 역, 2009)에서 파스칼 피크는 사람의 기초를 세우는 표준들에 대해 열거했다. 직립보행, 도구 사용, 전쟁, 성적 금기(근친상간), 사회생활, 성생활, 정치/도덕/거짓말, 공격과 화해, 상징적 의사소통, 자의식, 웃음과 울음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혹은 원숭이와 다른 점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조건들과 일치한다. 파스칼 피크는 실상 이 모든 조건들이 대형 유인원, 특히 침팬지나 보노보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위의 조건들이 오로지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상징적 의사소통, 곧 체계화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인간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 속 삼손과 데릴라가 했던 소통 방법을 단정적으로 원시적이고 미개하며 비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 판단 내릴 수 있을까?


데릴라는 할머니 외의 사람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삼손은 일체 타인과 말을 섞지 않았다. 삼손은 단 한 단어만 입 속에서 끄집어냈다. 도시에서 만난 노숙자가 아저씨가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다그쳤을 때, 그는 토해내듯 더듬거리며 그의 이름을 뱉어냈을 뿐이었다.


삼손과 데릴라 외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떠들었다. 도시 속 백인들도 그랬고, 노숙자 아저씨도 그랬고, 심지어 소년이 훔친 차의 주인인 마을의 아줌마도, 매일매일 같은 노래만 반복하는 삼손의 형도 그 노래를 통해 지속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그렇게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삼손과 데릴라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눈에 보이는 폭력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까지. 삼손과 데릴라는 점점 망가져 갔다. 몸과 마음 모두.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은 말없이 서로를 보듬어주는 눈빛과 무례하게 다가오는 따뜻한 손길이다. 이런 그들의 소통 방식이 진정 원시적이고 미개하며 비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인가? 사람들이 말하는 문명과 인간적이라는 것이 실은 폭력적인 것과 상통하는 것은 아닐런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정말 인간의 삶의 윤택하게 했나? 수많은 언어가, 지금 나조차도 쏟아내고 있는 이 언어가 '나'를, '너'를 진정 행복하나? 진보와 발전이라 불리는 문명이 인간을 정말 진보시켰나? 어쩌면 지금 우리들은 삼손이 코끝에 끊임없이 석유 냄새를 가져다 대고 있는 것처럼, 문명이라는 냄새를 향기라고 세뇌시키며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삼손이 석유 냄새에 중독되어 망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점점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마지막에서 데릴라는 처음으로 할머니가 아닌 대상과 '말'을 한다. 계속해서 울리긴 했지만 누구도 받지 않았던 공중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새로운 소통의 시작. 데릴라의 따뜻한 눈빛이 비로소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순간. 진짜 언어란 머리에서 명령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울려 퍼져야 할 따름이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좀먹는 냄새를 향기라 착각하고 세뇌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더 망가지기 전에. 삼손처럼 석유를 온몸에 뒤집어쓰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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