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양보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by 수자타


결혼 생활의 전부는 이혼할 때 폭로된다고 한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배우자의 민낯은 헤어질 때, 서로 갈라서기로 한 그 순간에 예고 없이 드러난다던가. 아주 친밀하면서도 더없이 낯선 그 얼굴에 서로가 당황하기 일쑤라고. <결혼 이야기>는 이혼하는 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목 그대로 결혼 이야기를 한다. 내용 역시 진부할 만큼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결혼한 지 10년쯤 되는 부부다. 니콜은 배우이고 찰리는 연극 연출가다. 서로는 첫눈에 반했고 사랑에 빠져 금방 결혼까지 했다. LA 출신인 니콜은 찰리의 커리어를 위해 뉴욕으로 이사해 정착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니콜이 이혼을 결심한다. 그녀가 언제부터 이혼을 고민했는지, 찰리가 어째서 순순히 니콜의 결정에 따랐는지에 대해 영화는 상세히 말하지 않는다. 니콜의 대사로 전달되는 그 내막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얘기다. 잘 나가는 예술가 남편 곁에서 생기와 존재감을 상실한 채 그의 천재성을 북돋아주고 엄마처럼 보듬어주던 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각성을 하고 변화를 결심한다는 클리셰. 이제는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홀로 이혼을 결정하는 아내. 아주 당연하게도 남편은 이혼 직전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눈치 채지 못한다. 아내의 상태도, 이혼 상담을 받는 과정도. 그래서 외도까지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이기심이 분명 그를 예술가로 성공케 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아무것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찰리의 모습은 애처롭고 비참하다. 물론 변호사 노라의 말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니콜의 태도와 결정도 썩 달갑진 않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는 말. 점잖고 신사적인 이혼 과정은 없다는 말. 헤어짐의 순간은 어째서 항상 지저분해지고 못생겨지는지. 특히 법정으로 넘어가면 무조건 추해지는 모양이다. 관계에는 이기고 지는 것으로 판단 내릴 수 없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50:50처럼 수치로 딱 떨어지게 결론지을 수 없는 것도 존재할 것이고. 가령 둘 사이에 생긴 아이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를 동원해 소송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은 사회 구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여자의 어떤 부분을 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어떤 부분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을 유지시키는 틀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뻔하디 뻔한 이 영화가 계속 잔상을 남기며 뒷덜미를 움켜쥔다. 마치 세상이 끝나도 남녀관계는 계속 이어지듯 찐득하고 찝찝하게.


극단 식구들을 가족처럼 잘 챙기고, 아들에게 책 읽어주는 걸 좋아하고, 집 정리나 청소, 요리에도 능한 남자, 찰리. 그는 예술적 능력도 탁월해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저명한 상도 수상했다. 그런 찰리가 전혀 이해하지도, 돌보지 못한 한 대상. 그것이 자신의 아내, 니콜이다. 그는 니콜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다 이혼하는 그 순간에 가서야, 법정에 서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남편의 일을 잘 돕고, 극단에서 그럭저럭 인정받고, 아들에게 훌륭한 엄마인 니콜은 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나.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그녀를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배우로서의 자신을 찾고 싶어졌다. 게다가 남편은 자신의 얘기는 들으려고 하질 않고 바람까지 피운다. 그러니 사실 니콜의 결심은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생겨난 마음이 아니다. 차곡차곡 쌓이고 쌓인 것들이 니콜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이별이라는 결론에 도달케 한 것이다. 나오지 않는 눈물을 끄집어내려는 어두운 극장에서 견디고 견디다 힘겹게 고개 돌린 곳에 출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냥 출구로 나가 떠나면 될 것을 굳이 변호사까지 불러야 했나? 니콜은 찰리와의 대화에 지저분하고 추한 것들을 끼워 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거주지 문제, 양육권 등 법적인 문제와 절차들을 직접 찰리와 해결하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니콜은 자꾸만 찰리에게 그런 법적인 문제들을 각자의 변호사들에게 맡기기를 권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찰리와 둘 사이에 아름다운 것들만 남겨서 이상적인 이별을 하고 싶은 것이지, 추하고 흉한 이혼을 하고 싶은 게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결별을 직면할 자신이 없었던 니콜 역시 찰리만큼이나 비겁하다.


관계는 복잡하다. 특히 부부 관계는 육체와 정신, 감정 등 모든 것이 가장 가깝게 뒤섞여 있기에 더 그럴 것이다. 많이 엉켜 있을수록 푸는 데 드는 시간은 당연히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재단하는 것은 폭력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제대로 풀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칼로 잘라 버리기에 급급하니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정돈되지 않은 것들을 마구잡이로 자르니 남겨진 파편이 많을 수밖에 더 있나.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게 가능했다면 아마도 부부는 이혼까지 가지도 않겠지. 대화가 원활하지 않으니 결국 이혼으로 치닫는 것이고 변호사의 입까지 빌리게 되는 법이라.


우리는 쉽사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가장 잘 안다고 단정한다. 그래서 종종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 친밀함 속에 잠재한 낯섦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 결과 마주하게 된 얼굴은 이미 알고 있어서 너무 익숙하지만 또한 처음 본 것 같은 이질감을 동시에 선사해 당혹스럽다. 법정에서는 이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 패자가 된다. 그래서 찰리는 뉴욕 집의 소파까지 니콜에게 죄다 빼앗긴 루저가 되었다.


단 한 발 양보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찰리가 이 한 발만 양보해서 1년만 니콜의 고향인 LA로 떠나 같이 지내본다거나, 니콜과 함께 공동 연출하는 일을 시도해 본다거나, 하다못해 외도라도 저지르지 않았다면, 아마도 상황은 그렇게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면서도 양보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사랑하지만 결국 떠나야만 하는 것은 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다. 이 모순과 역설이 뒤범벅인 채로 후회라는 흔적을 기어코 남기고 마는 것이 사랑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사랑을 하려면 더럽고 치사하게 이혼할 각오 정도는 감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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