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 로맨스>
사랑은 어떻게 하는 걸까? 관계란 뭘까? 관계 속엔 어쩔 수 없이 늘 알 수 없는 틈이 있기 마련이겠지? <장르만 로맨스>는 "쿨내진동 이혼부부, 일촉즉발 비밀커플, 주객전도 스승제자, 알쏭달쏭 이웃사촌"인 네 커플의 꼬이고 섞인 관계를 통해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단 한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 이후 7년째 차기작 준비 중인 김현(류승룡)의 주변은 매우 어수선하다. 전처와 아들, 친구, 제자 등등이 자신도 모른 채 얽히고설켜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지독히 엉클어진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지만 여전히 물음은 물음인 채로 남는다. 여전히 사랑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고, 관계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커먼 구멍이 메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다. 그럼에도 매듭은 지어지고 여지없이 새로운 관계는 또 생겨난다.
현은 외도 상대(류현경)와 재혼해 살고 있지만 딸의 교육 문제로 현재 기러기 아빠 신세다. 자신의 외도로 이혼한 전처 미애(오나라)와는 아들 성경(성유빈)의 문제로 때때로 연락하고 만난다. (만나서 자고 쿨하게 헤어진다.) 한편 미애는 현의 절친이자 출판사 사장인 순모(김희원)와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현은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학생인 유진(무진성)으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는다. 유진은 현의 동료 작가인 남진(오정세)의 애인이었고, 현은 남진의 책에 대한 서평으로 그를 강제 아웃팅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고등학생인 성경은 임신한 여자 친구로부터 "니 애 아냐"란 말을 듣고 차인 후 질풍노도의 방황기를 겪는다. 그러다 만난 엉뚱하고 친절한 옆집 아줌마 정원(이유영)에게 의지하며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 (당연하게도) 각자가 품은 비밀이 숨기고 싶었던 상대에게 모조리 폭로되면서 관계는 뒤틀리고 믿었던 기반은 무너진다.
관계엔 틈이 있기 마련이고, 사랑이 개입되면 그것이 더 커지는 모양이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오히려 상대의 많은 부분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나 좋을 대로만 바라보고 받아들이기 쉬운 게 사랑일 테니까. 성경이 정원의 친절을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현이 유진의 고백을 단순한 동경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랑은 오해 속에서 발아해 집착이 되기 십상이다. 얻지 못할 마음을 가지기 위해 어리석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분노하고 증오한다. 남진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유진을 향해 쏘아대는 말들과 복수가 딱 그렇다.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바람을 피우고, 적당히 유지하는 거리에 만족하면서도 쓰이는 신경을 거두지 못한다. 순모와의 여행 중에도 전남편 현이 바람피우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골몰하는 미애와 같이. 오해하고 오인하다가 상처 입기도 하고, 자기 멋대로 상대의 마음을 재단해 버리기도 한다. 또 유진처럼 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구애하고, 현처럼 지켜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비밀을 만든다. 왜일까.
누구도 사랑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일 테다. 유진처럼 순애보여야 진정한 사랑인지, 성경처럼 멋도 모르고 일단 덤벼야 사랑인지, 남진의 구애와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건지, 나중에 김현이 유진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은 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가 아는 게 전부일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거의 대부분 자신을 배반한다. 관계란 접촉을 수반하고 접촉은 상처를 전제한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맺고 끊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데도 다 안다고 기만하고 네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고 혹은 내 마음은 사랑이라고 겁 없이 결정 내린다. 그러니 성급한 결정은 증오를 부르거나 집착이 되거나 후회로 남는다. 결국엔 상처투성이인 채로 홀로 남기 일쑤고. 그러나 신기하게도 시간은 이 모든 걸 치유한다. 흉터는 남지만 상처는 아물고, 너는 갔지만 또 다른 네가 다가온다. 하여 온갖 찌질함과 하찮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장르만' 로맨스일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이다. 매번 반복해서. 어차피 사랑이 뭔지는 아무도 모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