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5일 일요일 이야기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는 매 주말마다 부서원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선다. 뭐, 당직이라고 해도 하루종일 회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 정도에 퇴근하는 정도? 아, 주말에 그 시간 정도면 하루종일 지키고 있는 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오늘의 당번은 나다. 여지없이 여섯 시에 일어났고, 재활용을 마친 뒤 출근 준비를 갖춘다. 샤워를 하고, 그루밍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거리로 나선다. 역시 한산하다. 평소 같으면 한 정거장을 거슬러 가서 버스에 오른다. 그래야 앉아서 출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집 앞 정류장에서도 충분히 앉을 수 있다.
한참을 흔들리는 출근 버스, 하지만 주말의 출근 버스는 다르다. 평소의 반 정도만에 출근 버스가 회사에 닿는다. 출입증을 찍는 곳에는 평소 소지품을 검사하는 투사대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레 가방을 메고서 회사에 발을 들인다. 이제 일을 할 시간이다.
사실, 그렇게 할 일이 많지는 않다. 주말에도 업무 자체는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업무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직을 서는 거니까. 평소라면 바쁜 전화와 외침으로 가득할 건물이 생경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조용히 사무실을 한 바퀴 돈다. 주말 당직 때에 내가 가지는 일종의 루틴이다. 물론 부서원들의 책상을 살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바퀴를 조용히 돌뿐이다.
화이트보드 위에 기재한다. 당직 시작. 이제 5시까지 8시간 남았다. 8시간 동안 무얼 할까 생각한다. 당장 일이 떨어지고 그런 상태는 아니니까. 우선 서류함을 연다. 말만 서류함이지, 사실 잡화함이다. 온갖 것들이 튀어나온다. 무엇을 버릴까 고민하다 이미 몇 년이 지난 청첩장을 버린다. 이 중에는 이미 이혼한 사람도 있다. 시간의 흐름이란 것이 참 빠르다.
업무 일지를 적기 시작한다. 날짜, 오전과 오후, 그리고 특이사항까지. 사실 별 것은 없다. 내가 자체적으로 쓰는 업무 일지니까. 정확히는, 새로이 쓰기 시작했다. 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해야지 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 드디어 오늘 실천에 옮긴다. 회사에서 보내는 매일이 여기 기록될 것이다.
펜이 종이 위를 가로지르는 촉감을 즐기며 글이 쭉 이어진다.
점심,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장이나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회사 앞에는 노브랜드 매장이 있으니까. 하지만 아뿔싸, 오늘은 25일 일요일, 주변의 마트가 닫는 날이다. 회사 앞의 노브랜드 매장조차도 여기에 해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결국 장은 보지도 못한 채 한참을 뺑뺑 걷다 돌아간다. 걸음 수는 7천 걸음. 뭘 하느라 이렇게 걸었나 생각해 보니 이게 가장 컸다. 오는 길에 대충 빵을 하나 사서 뜯는다. 점심은 부서 카드로 하건, 내 개인이 하건 알아서 해결하게 되어 있으니까. 당연하겠지만, 구내의 식당도 영업을 하지 않는다.
빵을 씹으며 한참을 걸어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다. 휴, 운동한 기분이다. 물을 삼키며 자리에 앉아 땀을 식힌다.
잠깐의 폭풍이 지난다.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온다. 하지만 처리 못할 일은 아니다. 가벼이 일들을 처리하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가계부를 연다. 이리저리 정리하고 흐름을 본다. 우상향이다. 승진의 결과라고 할까. 10년 후 나의 자산을 계산한다. 그리고 10년 뒤의 꿈에 빠진다. 그 꿈속에서 한참을 허우적댄다.
다섯 시, 퇴근할 시간이다. 오늘 내 배우자는 나를 데리러 온다. 무더위 속에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배우자와 함께 집에 들어오고, 저녁을 먹는다. 목욕을 하고, 잠시 쉬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