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4일 화요일 이야기
며칠 전, 회사의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뭔가 괴상한 선물을 지급했다. 리걸 패드가 들어가는 업무용 파우치다. 거기에 펜 두 자루 넣고, 명함 한 장 끼워 넣고 나면 기껏해야 서류 몇 장 욱여넣을 공간이 나오는 정도다. 이런 종류의 물건을 결재판 외에 써 본 적이 없어서 사실 좀 난감했다.
이 물건을 어디다 쓸 것인지 한참 고민하다, 몇 년 전 하다가 말았던 업무일지를 쓰는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뭐, 업무일지라는 것 자체를 처음 적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런 것을 만들 때 정형화된 양식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고, 그 덕분에 일지를 써 놓고도 내가 일전에 어떤 용어를 썼는지를 살피기 위해 뒤로 돌아가기 일쑤다. 자연스럽게 귀찮은 일이 되고, 업무 일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대략 6월 말부터 업무일지를 적고 있다. 그렇긴 한데, 일단 적어놓고 나서 뒤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냥 용어가 틀린 게 있으면 두 줄 직직 그은 뒤 맞는 단어로 나중에 고치는 정도랄까. 그냥 오전과 오후로 나누고, 각각 무슨 일을 했는지 빠짐없이(뭐 아주 사소한 것들은 제외하지만) 적어 내린다. 그리고 특이사항이 있다면 당구장 표시와 함께 기재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 간단한 방식의 업무일지가 나에게는 제법 맞는 모양이다. 용케 하루도 안 빼먹고 적고 있으니까. 뭐, 일전에도 업무일지를 적긴 했는데, 그 업무일지는 나와 도무지 맞지 않는 상사를 저격하는 용도로 썼던 거다 보니, 그 상사와의 작별 이후 자연스럽게 열정이 쇠해서 쓰는 데에도 소홀해졌었다. 이렇게 꼬박꼬박 내 업무를 정리하는 것은 입사 이래 처음인 것 같다.
일지를 이렇게 기록하며, 내가 이만큼의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가진다. 그리고 내가 단순 실무자를 넘어서, 중간관리자로 변화하고 있음 역시 깨닫는다. 점점 내가 무언가를 해치운 것보다, 내가 무언가를 감독한 기록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시간의 흐름은 그대로인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는, 그런 낯선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