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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심어볼까?

#시험관 시술  #난임일기

by 유예지 Jan 23. 2024



신혼생활을 이제 갓 2년 넘긴 우리 부부는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했다. 연애기간이 짧은 탓에 첫 1년은 신혼생활을 맘껏 즐기자! 하는 마음으로 피임을 했고 그다음 1년은 피임 없이 아기를 가져보려고 배란 초음파도 보고 보건소에서 산전검사를 받기도 했었다. 몇 달은 마음을 편하게 가지자며 건너뛰기도 했고 조급한 마음에 알아보다 나팔관 조영술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난임 판정을 받은 것은 2023년 11월, 아기방을 위해 이사를 막 마쳤을 무렵이었다.


'내가 난임이라니..!'


적지 않은 나이이고 요새 워낙 흔하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땅땅땅! 판정을 받고 나니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울적하고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보건소 연계병원에서 남편이 받은 검사는 70년대식 엉망인 수치로 정자왕이라 자부했었는데 재검 후 정상정자 1%로 공식적인 난임 부부가 되었다. 인공수정도 무의미하고 만약 임신이 되었더라도 건강하게 출산할 확률이 아주 낮았다 하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신경 쓸 것도 일도 많았던 연말을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새해맞이 건강관리와 시험관 시술을 위한 준비 겸 해서 우리 부부가 사랑했던 화려한 음주생활을 청산하고 건강한 식단과 운동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잘 지켜지고 있는 듯하다! 부부 공통의 취미(?)가 사라져서 아쉬운 마음에 화분을 사다 씨앗을 심었다. 이제 4일 정도밖에 안 돼서 아무 변화가 없는 게 당연한데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른 흙에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새싹이 움트기를 기다리는 행위가 꼭 시험관을 시작하는 우리 같아서.


씨앗을 심어둔 화분에 빼곡하게 새싹이 자라나서 놀라고 신나는 꿈을 꿨다. 꿈자리가 좋은 건가.. 지난주에 생리 유도 주사를 맞고 몇 달 동안 불안정했던 생리가 터졌다. 시험관은 생리 시작 2,3일 차에 시작되는데 오늘로 드디어 시술 시작이다! 시작 전에 너무 많이 알아보면 지레 겁먹을까 봐 참고 참다가 불안한 마음에 어제는 못 참고 밤늦게까지 맘카페 글 읽다 잠들어서 피곤한 상태로 기상했다. 아니면 몇 달 만에 생리량이 너무 많아서 피곤했을 수도. 어쩐지 기록도 잘해두고 싶어서(맘카페에서 복수 찬다는 글 읽고 잔뜩 쫄았다) 배 까고 동영상도 찍어두었다. 늑장 부리다 서둘러 뛰쳐나갔는데 생전 하지 않는 차 키 집에 두고 오기 실수 x 출근시간 차 막힘 콤보로 결국 예약시간보다 십 분이나 늦어버렸다.


병원 도착해서는 접수하고 약간 대기 후 초음파부터 보고 원장님과 간단하게 상담했다. 나는  AMH 수치가 9점대로 매우 높기 때문에 주사약을 마일드하게 쓰고 삼 일 후 경과를 보기로 했다. 보통은 약 용량을 늘리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약을 적게 쓰려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잘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불순한 의도로 빡세게 운동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무조건 근력운동 열심히 하라고 하신다. 피곤해도 운동 빼먹지 말아야지!


다음 내원 예약 잡고 나와서는 피검사부터 했다. 주삿바늘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질끈 감은 눈으로 고개 돌리고 손가락 만 한 채혈통 네 개 완료했는데 마지막 통 채울 땐 팔을 부들부들 떨어서 간호사님이 꽉 잡아주셨다. 창피하고 감사합니다! 그다음엔 주사약 받고 시술 설명이랑 동의서에 사인하고 배에 스스로 주사 놓는 방법 배웠는데 너무 무서워서 앞에 내용은 다 까먹어 버렸다. '주사는 정말 무서워~ 그러니까 남편한테 놔달라고 해야지~' 하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호르몬에 영향이 가는 주사라 매일 같은 시간에 병원에 내원하는 시간, 시술하게 될 시간이랑 맞추는 게 좋다고 하셔서 꼼짝없이 스스로 놓게 생겼다. 잘할 수 있겠지..? 주사는 냉장보관 해야 해서 보냉백에 잘 담아주셨다. 보건소에서 미리 준비해 간 난임시술지원서 제출하니 자기 부담금은 칠천 몇백 몇십 원 정도. 오오. 좋구만.


출근해서 밥도 야무지게 잘 챙겨 먹었다. 이렇게 매일 일기 쓰면서 담담히 지나가기를. 거실에 곧 트일 새싹처럼 내게도 아기 새싹이 자라나기를. 그저 건강하게 찾아와 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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