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넋두리
오늘은 미국의 큰 명절인 땡스기빙이다. 이런 날은 일도 쉬고, 모든 상점들도 다 닫아서 집콕을 해도 용서받는 날인데 영락없이 꼭두새벽부터 잠이 깬다. 평소 일하는 날은 여덟 시간, 아홉 시간을 자도 피곤한데, 쉬는 날은 꼭 다섯 시간도 못 자고 잠이 홀딱 깨버린다.
몇 달 전부터 남편과 나는 땡스기빙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주제가 화두가 되었다. 미국을 온 지 열여덟 해가 되었는데 매년 땡스기빙에 무엇을 할 것인지 딱히 계획을 세우지 않아 낭패를 본 적이 많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이한 땡스기빙 날, 고픈 배를 안고 동네 식당을 찾았지만, 맥도널드 외엔 아무 데도 열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미국 땡스기빙의 잔인함을 경험했다. 모든 먹거리 상점들도 오늘은 다 닫는 줄 착각하고(적어도 마트는 짧게 영업함)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날 하루를 거의 냉장고 파먹듯 하다 냉장고 대청소로 쓸쓸한 추석을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는데 애꿎은 땡스기빙을 탓하며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하고 나서 이제는 미리 장을 봐 놓고 냉장고든 음식 창고든 그득그득 채워 놓는다. 음식 문제야 그렇다 치지만, 나이가 들고 삶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니 이렇게 미국 추석이 되면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미국에 가까운 가족이 단 한 명도 없다. 초대도 없는 명절만 되면 텅 빈 마음으로 깜깜한 우주에 홀로만 덩그러니 남겨진 듯하다.
한국의 추석은 미국에서도 우리가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부모님이 서운해하는 그런 날이고, 반대로 미국 추석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아 우리에게 전화를 주는 사람도 없고 우리가 전화를 해도 시큰둥한 그런 날이다.
이런 날은 연락 없는 전화통을 바라보며 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서운하다. 우리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명절이 되면 괜스레 사람 관계에 더 서운함을 느낀다. 이렇게 사람 좋아하는 내외가 아이도 없이 미국에 단 둘이 덩그러니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운함은 서운함으로 남겨두고, 남편과 나는 어젯밤, ‘우리 내일 뭐할까?’하며 서로 눈만 멀뚱하니 바라보다 답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마음이 공허하니 잠도 금세 깨어 버렸나 보다.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게 놔두느니 바쁘게 몸을 움직여 털어 버리는 게 낫겠다. 날 밝으면 동네 요가원에서 핫요가나 해야겠다. 다행히 거기는 열였다. 하하!
*외로운 미국 추석을 보내는 분들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우리도 외로워요. 그냥 같이 외롭게 보내요. :)